공간의 매력에 빠지다

정원, 그 아름다운 공간의 매력에 대하여 with France

by Presentkim

프랑스에 온 후로 정원, 공원, 광장 등에 갈 일이 많아졌다. 아니 거의 일상이 되었다. 어딜 가나 마을에 하나씩은 존재하는 아름다운 정원은 여유로운 쉼터고, 초록을 품은 공원은 숨이 턱까지 막힌 현실 속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과 역동감을 가진 동상이나 기념비가 세워진 넓은 광장은 약속 장소이자 문화 이벤트와 거리 예술가들의 무대가 된다. 이 공간들은 매일매일 나에게 “여기 잠시 들렸다 가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삶에 녹아들었다.

사실 한국에선 정원과 공원, 광장이란 공간들이 나와 밀접한 곳은 아니었다. 주로 산책로나 놀이터가 익숙했고, 공원은 좀 멀리 나가야 하는 장소였다.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나는 이런 공간에 대한 특별한 추억거리가 없었으므로 갈 때마다 조금은 씁쓸한 감정이 들곤 했다.


프랑스에 와서 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새로운 공간들. 많고 많은 곳 중 매력적인 장소를 하나 뽑으라면 주저 없이 Giverny 정원(지베르니, 파리 시내에서 30분 떨어진 도시. 인상파의 대표자 Claude Monnet의 생가가 있는 곳)을 선택하겠다. 혹시 파리를 방문한다면 모두가 순례지처럼 가는 루브르 박물관보다 Musée de l’Orangerie(뮈제 드 로항줴리, 오랑제리 박물관)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물론 개인 의견이다.) 왜냐하면 이 곳은 Claude Monnet의 수련 연작이 작은 공간 속 모든 벽을 덮고 있어, 수련의 매력에 고요히 흠뻑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이 된 곳이 바로 Giverny 정원이다.

L1030109.JPG Giverny 정원 중

이곳은 나에게 ‘공간의 매력’을 가르쳐준 곳으로 한 편의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영화 <Midnight in Paris>에도 고스란히 담겨 그 매력을 뽐낸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파리(Paris) 곳곳의 배경들은 이미 ‘가고 싶다’라는 소망을 품게 해 주며 설렘을 증폭시킨다. 그중에서도 물 여기저기가 톡톡 튀며 살아 숨 쉬는 듯한 연못, 나무와 꽃들을 잔잔히 비추는 수면의 풍경이 한 편의 수채화 같은 곳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이 지베르니 정원이다. 첫눈에 깊은 인상을 남긴 이 공간은 한 편의 수채화였고 예술작품이었다. 마치 상상 속에 존재하던 꿈의 정원 같은 이곳은 끌로드 모네가 애정 하던 정원이기도 하다.

직접 가보면 지베르니 정원만의 멋과 매력에 인간의 말이 갖는 한계를 느끼게 된다. ‘아름답다’와 ‘예쁘다’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한, 영화의 장면들로만 접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햇빛을 품은 형형색색의 초록물결과 작약, 튤립, 팬지, 아네모네, 살비아, 카네이션, 탠지, 칸나, 디기탈리스, 헬리 옵시스, 블루 수국 등 수많은 꽃들과 나무들이 생기와 활기를 불어넣는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면 나라도 명작이 나올 정도(?)로, 나도 감히 끌로드 모네와 같은 명성 있는 미술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행복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감과 감성을 주는 곳이다.

IMG_2445.jpg Giverny 정원 중

자연의 모든 아름다움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듯한 공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욕망과 욕구. 세속의 그림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절대권력과 함께 유럽 문화의 주도권을 쥐게 된 태양왕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된 정원이란 공간은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정원 개발을 통해 전성기를 맞이하고 유럽 전 지역에 영향을 끼쳤다. 당시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는 가치관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는 정원과 공원을 조성하는데 근본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르사유 궁전이다. 프랑스 사회주의의 선구자라 불리는 Saint Simon(생 시몽)은 권위적인 대칭축과 엄격한 기하학으로 조성된 그 궁전을 가리켜 ‘자연에 대한 폭거’라고 혹평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너무 강하게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절대왕권과 가문의 힘을 과시하고자 하는 전통으로부터 시작된 정원은 이후 유럽의 타문화(ex. 이탈리아 로마) 양식도 조합돼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DSC_0949.JPG 베르사유궁전의 정원 모습

정원과 관련된 가장 기억에 남고 이색적이었던 것은 수영복 차림으로 선탠을 하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물론 여름을 기준으로 본 것이다.) ‘가림의 미학=정조’만을 보아오던 내게 이러한 노출은 당연히 이색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여자는 등을 다 드러낸 채 누워있었다. ‘해변=비키니’라는 좁은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겐 굉장히 색다른, 흔한 말로 '쇼킹'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차츰 나도 그런 충격으로부터 익숙해지는 것인지 어느새 그런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원에서 보이는 시각적인 모습보다 그 공간에서 누리는 여유와 자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옷을 걸치던 아니던, 와인이나 커피 한잔을 들고 한가롭게 책을 읽거나 선탠을 즐기는 사람들, 심지어 강아지와 반려동물들의 모습까지, 특별한 놀이거린 없지만, 돗자리와 간단한 음료와 음식이면 충분히 즐겁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 거창한 준비물도 필요 없이 가고자 하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정원이었다. 그래서 나는 풍경이든 사람이든 눈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즐기느냐가 더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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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곳 주변으로도 인상적인 공간이 많다. Le Jardin Serge Gainsbourg(르 쟈르당 세르쥬 겡스부르, 세르쥬 겡스부르 정원) 정원은 우리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정원으로 조깅을 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특히 내가 아는 프랑스 유명인 중 몇 안 되는 인물의 이름을 딴 정원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우리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이 정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프랑스 음악의 한 획을 그은 Serge Gainsbourg라는 프랑스 시인이자 뮤지션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장소다. 가수의 이름을 딴 파리의 첫 정원이자 그의 첫 번째 성공작이었던 샹송 Le Poinçonneur des Lilas(르 뿌앙쏘뇌희 데 릴라, Lilas(19구에 있는 지역)의 개찰원이란 뜻)에 따라 이 장소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의 와이프는 여자들이라면 환호할 만한 명품 H사의 버킨백의 시초로 영국 배우 Jane Birkine(제인 버킨)이다. 더욱이 그의 딸은 Charlotte Gainsbourg(샤흘롯 겡스부르)로 아주 유명한 프랑스 배우라고 하니 부정할 수 없는 아티스트 가문이라 할 수 있겠다.

유명세만큼 그의 기념비적인 공간에 무언가가 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들어갔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입구엔 그저 노숙자 아저씨가 나무 그늘 아래 잠을 청하고 있을 뿐. 우물로 보이는 곳은 썩은 물 같지만 물고기가 가끔 입으로 뻥긋 거리는 모습으로 보아 물 관리가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였다. 조깅을 하기엔 루트도 길지 않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지만 안타깝게도 상당히 구석진 곳을 많아 노숙인과 대마초를 하는 젊은이들이 밤에 많다. 그래서 밤엔 가지 않는 공간이다.


또 다른 곳은 Parc des Buttes-chaumont(빠크 데 뷧 쇼몽, 뷧쇼몽 공원)이다. 내가 가장 애정 하는 공원이다. 나폴레옹 3세의 시대(1867)에 만들어진 이 곳은, 25 헥타(1 헥타=3025평=10000㎡)의 광활한 공간 속 풀밭과 오래된 나무, 그리고 공원의 중앙은 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된 나이테를 품은 나무들과 꽃들, 넓은 풀밭 덕분인지, 햇빛이 비추는 날이면 추운 겨울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들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아마 이 여유로운 시간 사용법을 배우고자 내가 프랑스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는 걸 수도 있겠다. 강 가운데 솟은 돌 산 꼭대기에서 보면 저 멀리 몽마르트르 언덕 위 Sacré-Coeur(사크레 꾀흐)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다. 탁 트인 전망과 나무들, 넓은 공간과 호수를 품은 이 공간은 가도 가도 질리지 않는다.

1429735768931.jpeg Parc des Buttes-chaumont(빠크 데 뷧 쇼몽, 뷧쇼몽 공원)
1429735836941.jpeg Parc des Buttes-chaumont(빠크 데 뷧 쇼몽, 뷧쇼몽 공원)

이 외에도 매력적이 장소는 곳곳에 존재한다. 25 헥타의 넓은 면적, 앙리 4세의 왕비 ‘Marie de Medici(마리 드 메디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뤽상부르 궁이 있는 Jardin de Luxembourg(쟈르당 드 룩셈부르)는 106개의 동상, 메디치 분수, the Pavillon Davioud(양봉학교) 등이 있고 릴케, 보들레르가 즐겨 찾던 정원이었다. 주변엔 소르본 대학과 Panthéon(팡테온, 국립묘지로 마리 퀴리,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루소, 볼테르 등이 묻혀있다.) 등 유명 관광지가 있다. 개방형이고 대중적이며 상원 건물이 있는 이 곳은 파리에 오면 관광객들이 꼭 즐겨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반대로 복잡한 중심가 속 조용한 공간도 있다. 마레 지구의 골목으로 들어가다 보면 Place des Voges(쁠라스 데 보죠) 광장을 발견할 수 있다. 정사각형의 모양으로 갖춰진 이 공간은 1번째 유럽 Royal City 프로그램의 계획으로 헨리 4세 때 만들어진 공간이다. 빅토르 위고가 거주했던 건물 등이 이 사각형의 공간을 둘러싸고 있으며, 후에 이 공간은 프랑스의 귀족문화를 대표하는 장소가 되었다. 주변으로 건물이 둘러싸고 있어 고립된 포근함을 받을 수 있다.

Musée de la vie romantique(뮈제 드 라 비 호망띠끄, Museum of Romantic life) 또한 그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1811년 프랑스에 도착한 Ary Scheffer(네덜란드 화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공간은 후에 미술, 정치, 문학의 활발한 활동의 중요 장소가 되었다. 이름조차 달콤한 이 곳에는 집 정면으로 유리로 된 두 개의 아뜰리에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작업을 위한 공간, 하나는 사교를 위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넝쿨과 등나무, 꽃들로 조경된 정원이 Salon de Thé(살롱 드 떼, 차 마시는 공간)로 꾸며져, 작품을 관람하고 커피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자연 숲이 되었다. 대문이 있는 입구를 들어가야 볼 수 있어 역시 고립된 포근한 느낌을 준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정원들이 있지만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것 같아 이쯤에서 멈춰야 할 것 같다.(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으로 선택한 곳들임을 참고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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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으로부터 시작돼 공간의 매력을 느낀 후부터, 날씨가 좋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이면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나만의 공간을 찾는다. 벤치에 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커피와 함께 바닥에 앉아 잠시 누워있기도 한다. 간단히 먹을 간식, 커피나 마실 것을 가지고 가면 더 좋다.(물론 쓰레기는 최소화한다.) 이 곳을 걸을 때면, 나무나 풀, 꽃이 주는 위로 속에 여유의 순간을 느끼고 즐길 수 있게 된다. 풀 밭을 가르는 수많은 길들을 정처 없이 걷다 보면 뒤죽박죽이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상쾌한 공기 속에 복잡한 머릿속은 한결 상쾌해지며 꽉 막힌 코가 시원하게 뚫린다. 다리는 한 결 가벼워지고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공간이 좁든 넓든, 역사가 있든 없든, 햇빛이 내리쬐든 비가 내리든 배경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곳이 주는 분위기가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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