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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mme soupe Jan 04. 2023

잠깐 죽는 것.






에쿠니 가오리는 산책을 두고 잠깐 죽는 것이라고 썼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일상이 거기에서 뚝 끊겨 시간이 정체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월요일부터 아팠다. 열이 끓는 큰 아이가 누워있는 작은 방 한 칸이 그랬는데 이틀 후에는 집 전체가 작은 병원이 되고 말았다. 큰 아이의 밥을 만들어 방으로 나르고 방에서 나오는 것들을 닦고 치웠다. 아픈 것은 그 방을 출입하는 나뿐이면 했는데 다른 이들이 다른 병으로 아프기 시작해서 나는 전장에 홀로 남은 간호사처럼 집을 돌보았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나는 앓아누웠다. 

목 쓰는 일을 오래 한 후부터 가장 약하고 날긋한 부분이 되었는지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질병은 목으로 온다. 대개는 목이 퉁퉁 붓는 것부터가 시작인데 이번에는 그 단계마저 사치스러웠는지 에는 듯한 통증과 함께 목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코가 모두 막혀 입으로 숨을 쉴 수밖에 없고 목으로 숨을 쉬면 자꾸만 기침이 났다. 기침을 하며 아주 오래간만에 내 몸의 뼈와 근육이 어디에 붙어있는 지를 깨쳤다. 기침을 하고 나면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약을 먹으면 녹듯이 잠이 드는데 숨 쉬는 것이 너무 불편하니 자주 깼다. 잠을 자다가 깨면 차라리 잠을 참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

내가 아픈 동안 여태껏 간호를 받아만 본 이들은 나를 간호할 줄 몰라 그저 내버려 두는 것으로 간호를 했다. 먼 언젠가에 지나치듯 말했던 음식을 배달해서 나를 먹이는 것이 남편이 내게 해주는 유일한 간호였다. 끙끙 앓다가 약먹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식탁에 나와 앉았을 때 봉지에서 끌른 내 팔꿈치뼈 만한 족발을 보고 실소가 터졌다. 

얼마 전 티브이에서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고산병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리가 무거운 것이라고 했는데 내 침대에 누워 히말라야 등반의 기분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작은 위로가 되었다. 기침은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숨을 쉬는 것이 완전히 편안하지 않다. 


어제는 아주 오래간만에 머리의 무게를 덜어낸 것 같아 집안의 먼지를 털고 수북하게 쌓인 빨래를 돌렸다. 저녁을 지어먹고 붓고 불어난 몸을 가볍게 만들고 싶어 산책을 나섰다. 얼마나 추운지 걷는 동안 볼이 꽁꽁 얼었다. 그래도 눕지 않고 걷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코는 여전히 막혀있지만 차가운 공기를 마시니 숨을 쉬는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잠깐 앓았다. 역시 무리였지. 그래도 좋았다 잠깐 죽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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