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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Apr 12. 2021

인도여행이 물었다 "Are you happy?"

좀처럼 예능에서 보기 힘든 여배우들이 동유럽 곳곳을
여행하는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가 있었다.

윤여정을 비롯해 김희애, 이미연까지 출연해 소탈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줬다.


여행이 한창 무르익던 어느 날,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어떤 한국인 관광객이 던진 한마디에

이미연은 왈칵 눈물을 쏟는다. 늘 씩씩하고  잘 웃던 그녀였기에 그 잔상은 꽤 오래 남았다.

제작진도 어쩔 줄 몰라 당황했다. 흔들리는 카메라가 먼발치에서 흐느껴 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기쁘고 행복하세요"


그 말에 그녀는 왜 와락 무너졌을까


너무 흔한 단어,  행복!

고름처럼 부풀어 오른 감정의 무게가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토닥임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일까. 




16년 전 , 갠지스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가트에서

나도 그 질문을 받았다. 자기가 류시화 작가의 친구라며 자랑을 늘어놓던 여덟 살 남짓의 엽서 파는 꼬마였다.

남루한 옷, 시커먼 발등에 힘없이 휘어진 쪼리를 싣고

한 손엔 갠지스강이 프린트된 엽서를 한 뭉치 들고 있었다.

한 장에 1달러,  꼬마는 매일같이 와서 엽서를 내밀었다.


한날,  꼬마는 내게 물었다


 " Are you happy? "


학교도 가지 못하고  엽서를 파는 꼬마가 세상 천진한 표정으로 내 행복을 묻고 있었다.


훅 들어온 질문에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누가 봐도 그 꼬마보다 넉넉한 내가 행복의 우위에

있을 것 같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었다.

내 속을 다 들킨 것처럼 나는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꼬마는 내 답을  잠시 기다리다  행복하길 바란다며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사라졌다.

핏빛으로 물든 해가 갠지스강 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스물여덟 청춘이던 나는 어느덧 마흔넷 되었다.

그리고 아이 둘을 키우며 호주에 살고 있다.

수없이 연결된 인생의 고리처럼 나는 그때 말하지 못했던 행복에 대한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넌 지금 행복하니?"


행복을 가진 자만이 가볍게 툭 던질 수 있는 질문 같았다.

낮은 신분으로 태어나 찢어지는 가난을 등에 얹고 살아가지만 그 꼬마의 미소에 행복이 있었다.


그때 그 엽서 파는 꼬마처럼...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적당히 힘을 뺀 채 살아가는 의연함이 내겐 없었다.


젊었을 때 나는 행복을 일에서 찾으려고 나를 부단히 몰아세웠다.
꼭대기를 노려보며 더 빨리 오르지 못하는 나의 능력을 호되게 채근했다.  마른 힘을 쥐어짜면 그 반동으로 나는 다시 튕겨져 올랐다. 그러다 보면 세상 다 가진 듯한 기쁜 날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행복감은 세게 한두 번 나를 강타하고 금세 사그라졌다.  

다시 행복이 찾아오기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


호주에서 산 지 15년.
그동안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 되었다.
내 보폭으로 천천히 걷는 동안 놓쳤던 많은 것을 둘러보게 되었다.  쏟아져 내리는 아침햇살이나 까르르 뛰노는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를 탁탁 털어 건조대에 널어놓는 그 작은 순간에도 기쁨이 있다.  

참 좋다. 이쁘다. 감사하다 라는 마음이 별반 다를 거 없는 평이한 내 일상으로 훅 밀려들어온다.


행복은 추구하는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은 아닐까
소소하고 작은 것으로 채워진 기쁨이
나를 더 미소짓게 하는 이유다.
이제,다시 그  질문에 답할 차례다.

"Are you happy?"

"Yes.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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