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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별빛 Mar 14. 2023

'사진 신부를 아시나요'

<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일제강점기이던 1903년, 최초의 이민자로 기록된

파인애플 농장 노동자들이 있었다.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 남성들은 결혼 적령기를 넘기자

고국에서 배우자를 찾았다. 입담 좋은 중매쟁이의

거짓 정보에 홀려 사진 한 장에 의지해 하와이로

온 여성들을 '사진 신부'라 불렀다.


각기 다양한 꿈을 품은 채 설렘을 안고 머나먼 타국에

도착한 그녀들은 그곳이 낙원이 아님을 곧 알게 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들은

사진에 속아 흰머리 성성한 영감들을

남편으로 맞이해야 하는 현실에 몇 날 밤을 통곡한다


연고도 없는 그곳에 뿌리내린 그녀들의 거칠고

힘든 삶은 100여 년 전 여자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며

억척스럽게 일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열정을 보태는지

보여준다.


이름조차 없이 누구의 엄마로 불렸던 그녀들은

남성 못지않은 선구자이며 개척자였다.


나는 다시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대 어머니라는

이름 안에서 그녀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그 고난 한 세월을 버티며 또다시 일어나

부서진 파도 앞에서 꿋꿋해졌는지 가늠해 본다.


또한 한 고향에서 온 사진 신부 버들과 홍주, 송화

가족을 대신해야 했던 동기간의 연대가 얼마나 강하고

단단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남편의 빈자리를 서로 보듬고 채워가며 함께 자식을

부양한다. 그렇게 그녀들은 서로 한 몸이 되어

한 시대를 버티고 일궈 다음 세대가 뿌리내릴

토양을 일군다. ​


< 출처- 이민 역사박물관 하와이 '사진신부' >

버들의 딸 펄은 자신의 나이였던 엄마의 사진을 본다.

하와이로 오기 전 배를 기다리던 일본에서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다.


가난에 팔려오거나 일본 없는 세상에서 남편 잘 만나

팔자 한번 펴보자고 온 게 아니라 공부하고 싶어 왔다는

엄마 버들도 자신처럼 꿈 많던 소녀 시절이 있었음을

펄은 알까.


억척스러운 삶이 얼굴 곳곳 검은 주름으로 남은

지금의 버들에게서 그 어린 소녀 버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무용과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딸을 이해 못 하는

엄마만 있다. 안정적인 교사가 되어 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 가는 게 버들의 바람이자 꿈인 것이다.


엄마와 은 크게 싸운다. 

소통이 막혀버린 이민 가정의 세대갈등은

암세포처럼 퍼져 문화, 언어, 가치관 여러곳에서

가족의 분열을 이끈다.


팽팽한 감정의 끈을 느슨하게 할수 있는  현답은  어쩌면

나의 과거 안에 있는지도 모른다. ​ 버들은 사진 신부였던

어린 자신을 빗대어  딸을 이해한다.

편안하고 환한 얼굴로 딸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인자는 니가 꿈꾸는 시상 찾아가
내보다 멀리 훨훨 날아가그레이.
암만 멀리 가도 여가 니 집인 걸
잊어 삐리지능 말고


사진 신부들이 몇 달의 향해 끝에 도착한 하와이에서
제일 먼저 꽃 선물을 받았다.
환대와 사랑의 의미로 손님 목에 걸어주는 '레이'는
하와이의 상징이자 섬이 주는 따뜻함이 녹아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은 천사와 함께 온다던데
하와이 사람들은 그 오래전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낯선 이민자들을 향한 환대가 사랑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레이' 라니 더 놀랍다

하나로 연결된 꽃목걸이처럼 조선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그들이 다음 세대의 이민자들에게 '레이'를 건네며

환대하는 선순환의 뿌리가 단단하게 이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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