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나만의 질문지 만들기
어른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내 의지대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른이 되고 나서의 단점은 되려 나조차도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를 때,
그 중심을 잡아가는 것 또한 나 자신에게 달렸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올해로 어느덧 7년 차 브랜드 마케터가 되었다.
한 회사에서만 벌써 만 6년을 꽉 채운 나는 어느새 뼛속까지 직장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 나에게 올 연초 불현듯 찾아온 이직에 대한 고민은 앞서 언급한 ‘어른의 단점’과 사뭇 비슷한 결이었다. 웬만한 건 바로 실행에 옮길 줄 아는 나에게도 이번 고민은 무엇이 옳은지 도저히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섣불리 행동으로 옮기기엔 내 발목을 잡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보다 더 잘 맞는 포지션이 있을까란 고민부터 시작해서 오래도록 합을 맞춘 팀을 떠나 과연 새로운 시작을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다시 0부터 쌓아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계속해서 내 발목을 붙잡았다.
지금의 회사에서 적당히 했으면 오히려 당시의 고민이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기어코 나는 온 열정을 다해 지금의 일에 꽤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이곳에서 쏟은 시간과 노력들을 등지기엔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무엇이 옳은지 도무지 잘 모를 때, 나만의 중심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나만의 질문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밖에 없는 질문 리스트를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첫째, (유능감) 지금 이 일을 잘하며 인정받고 있는가?
둘째, (자율성) 지금 이 일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는가?
셋째, (연결성) 지금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나?
넷째, (유의미) 지금 이 일이 중요한가?
좋은 질문이 좋은 인생을 만든다
좋은 질문은 항상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막연하게 고민만 할 때보다 좋은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내리다 보면 내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진다. 주변 지인들의 조언으로도 내 안의 고민점들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좋은 질문지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나에게 딱 맞는 온라인 라이브 강연을 찾았고, 다행히도 나를 위한 좋은 질문지를 얻을 수 있었다. 상단의 4가지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달고나니, 지금 당장 ‘이제는 이직할 시기’라는 사회가 만들어 낸 이유만으로 현재 내 일터를 떠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첫 번째부터 마지막 질문까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모두 ‘예’라고 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보다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라는 질문을 추가로 던져보니 내 안의 답은 더욱 명확해졌다.
얼마 전, 연봉협상을 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올랐을 때가 한 번에 600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올랐다. 더 많이 올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임원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뼛속까지 자본주의 인간이로군’. 그간의 고민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릴 때쯤 찾아온 만족할만한 연봉협상은 몇 달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지난 시간들이 조금은 무색해질 만큼 깔끔하게 고민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게 나는 마스크 뒤에 숨어 자본주의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넘어야 할 첫걸음
주변에서 말하는 이러쿵저러쿵 조언들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중심점을 찾는 것. 그리고 그대로 묵묵히 살아갈 줄 아는 용기를 가지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어른이라면 꼭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3년 후, 5년 후의 내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나는 꽤나 만족스러운 서울 시티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10년 전,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어갈 때, 막연하게 꿈꾸던 인생의 황금기가 어쩌면 지금이 아닐까. 초겨울 동안 잠시 시달렸던 내 안의 실타래를 지나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부는 5월이 오고 나니, 내 안에도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듯하다.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했어서 잠시 글과 멀어졌었는데, 이제야 글이 좀 써지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