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왜 그렇게 여행을 자주 다녀?”
친한 동생이 물었던 적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스튜어디스였던 엄마 때문인지, 휴양지를 좋아했던 아빠 때문인지 여행을 자주 다녔다. 4살 무렵의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갔던 외국은 괌이었고 겨울엔 방콕, 세부, 필리핀과 같은 따뜻한 곳들. 좀 더 커서 욕심을 부려 떠난 유럽 한 달, 하와이 일주일 등은 나에게 큼직한 추억거리를 만들어줬다.
여행이 익숙했고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스무 살이 되고서 친구 한 두 명과 멀리 또 가까이 떠났다. 국내 1박부터 긴 휴가로 며칠 씩 낯선 지역에 머무르고. 일본 오키나와, 오스트리아, 미국 포틀랜드까지 족히 스무 번은 자발적으로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그러니 나에게 궁금해할 만도 했다. 왜 그렇게 여행에 열심인 건지. 얼마 전에 갔었는데 왜 또 가고 싶은 건지. 그때 나도 처음 생각해보았다. 내 대답은 이랬다. “나는 여행을 가는 게 특정한 그곳에 가고 싶어서였던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 그냥 내가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점’처럼 기억할 수 있는 또렷한 기억들을 많이 갖고 싶은 것 같아. 아 이때 여기 가서 이렇게 사진 찍었지. 여기 맛있고 좋았었는데. 여행 자체보다는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게 나에겐 소중해서. 그렇게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점들을 계속 만들고 싶은가 봐.”
그렇게 대답한 이후에도 나의 자발적 여행은 계속 이어졌다. 특별히 유명한 스팟을 가고 싶었거나 그 음식을 먹어야겠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단지, 내 인생에 이벤트를 만들고 싶었다.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나의 제안에 따라준 친구들, 동생들 참 고맙네. 그들과 함께 해서 나의 추억이 더 추억다워졌으니까. 그러고 보니 혼자서 떠난 여행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에겐 돌아보고 싶은 추억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열심을 들였는지, 함께 추억을 만드는 일이 왜 그리 좋았는지. 지금껏 여러 모양으로 부지런히 다녔다.
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19 상황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상황으로 여행뿐만 아니라 이동조차도 많이 제한되었다. 2019년엔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미국 포틀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지금 떠날 수 없는 상황에 아쉽거나 답답하거나 한이 맺히진 않았다. 다시 한번, 그때 다녀올 수 있던 모든 상황과 여건에 감사하다.
하지만 아쉬움은 다른 모양으로 찾아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좋아하는 것들(주로 하늘, 푸른 나무들, 바다, 고요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 떠났던 많은 여행들이 내 인생의 이벤트로만 갇혀있다는 게 아쉬웠다. 내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서울은 단순한 거주지였다. 대단한 꿈이나 목표를 위해, 커리어를 위해서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러하다면. 이제 막 서른이 된 나의 인생에 새로운 변화를 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 모두가 여행하러 가는 그곳에서 내가 살아보는 거야! 어쩌면 더 자주 행복한 매일을 만들 수 있진 않을까?
물론, 지금 내 삶에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점’을 찍으며 함께 했던 시간을 돌아보기 원했던 내가. 이제 매일이 ‘점’들로 가득해 하나의 진한 선을 그을 수 있는 삶을 산다면 어떨까. 나 답지 않게 이거 왠지 꽤 즐거울 것 같다. 정말 많은 준비와 도전이 필요할 테지만. 어차피 예측 불가한 우리 인생, 언젠가 다가올 특별한 추억만 기다리지 말고 용기 내서 뛰어볼까 하는 겁 없는 생각이 불쑥 든다. 워낙 이런 위험한(?) 생각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 나인데.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