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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나 Feb 27. 2022

01. 부캐 부자 이선영, 필명은 쓰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도망가겠습니다] 이선영

‘대한민국에 부캐 열풍이 분 지도 거의 2년이 되어 가는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찾아보니 유산슬이 트로트를 부른 것이 2019년 말 쯤이라고 한다. 그러면 햇수로는 벌써 4년이나 되었겠다. 먼저 떠오르기로는 김신영의 다비 이모, 싹쓰리, 환불원정대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도 더 생각해보면 유튜버들도 자신의 출신지, 나이, 직업 등을 임의로 설정하여 다양한 부캐로 활동하고 컨텐츠를 제작하고 했던 걸 종종 봤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부캐 열풍 훨씬도 전인 2015년에 인생의 동반자 ‘써니’를 만났다.


‘써니’는 내가 초등학생 때 참여했던 영어캠프에서 얻은 영어이름이다. 당시에 꼬꼬마 이선영은 영어이름이 없었는데 영어캠프 선생님이 영어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하셨다. 사실 요즘이라면 딱히 영어이름을 정하지 않고 그냥 한국어 이름을 사용하거나 ‘이’, ‘선’, ‘영’같은 한국이름의 한 글자 정도 따오거나 했을 거 같은데 그 때는 또 학교마다, 학원마다 영어이름 정하기가 유행이었다.

영어이름이 없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SUNYEONG’에서 따와서 ‘Sunny’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또 내가 항상 웃고 있으니까 그 말뜻과도 잘 맞을 것 같다고. 나는 그 이름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단어가 가지고 있는 그 분위기가 예쁘다. 봄날의 우유 한 스푼 끼얹은 여린 잎에 내려앉은 따스한 햇살 같기도 하고, 온 세상이 궁금하고 그저 신나는데 따스한 날엔 더 행복한 새끼 강아지의 걸음 같기도 하다.

이름에 ‘선’이 들어가는 많은 한국인 여자들이 ‘Sunny’라는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다. 그래도 그 사실과 무관하게 나는 이 이름이 좋다. 가끔씩 또 다른 써니를 만나면 이선영표 호들갑을 떨면서 말 한마디 붙일 수 있는 것도 좋다.   

- 혹시 이름에 ‘선’이 들어가시나요!?!

하면서!



그냥 그저 그렇게 있을 뿐이었던 영어이름 써니가 나의 공식적인 첫 번째 부캐가 된 것은 내가 이태원의 한 펍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다. 그건 2015년 스무살의 봄에 일어난 일이었다. 부처님오신날이 조금 지난 늦은 봄에. 그곳에서는 점장님, 매니저님, 언니, 오빠같은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영어이름을 사용한다고 했다. 사실 다른 이름을 사용해도 됐었을 것 같은데 그냥 어릴 때 가지게 된 영어이름 써니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 때의 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이선영이기도, 이태원의 펍에서 일하는 써니이기도 했다. 써니로 지낸 그 시간은 진심으로 즐거웠다. 지금도 언제든 다시 되돌아봐도 들뜬 기분으로 떠올릴만큼 즐거웠다.


이선영은 ‘그래야 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수많은 생각들에 얽매여 있는 사람이다. 그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은데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런 내가 틀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세상이 너무 애틋하다. 어디 한 번 떳떳하게 볕 아래 꺼내 놓은 적 없는 그것이 너무나 소중하고 짠해서 눈물 어릴 듯이 애틋하다. 나의 세상이 무너지지 않게, 나의 세상이 사라지지 않게 꼭 안아줘야 했기에 나에게는 써니라는 자아가 필요했다. 써니는 그 어떤 생각에도 얽매이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한없이 넓고 뜨거운 가슴으로 나의 세상을 그렇게 꼭 끌어 안아줄 수 있었다.

이선영은 허울 좋은 말들로 ‘이선영의 세상 지키기’라는 미션을 써니에게 떠넘겼다. 써니는 내가 온 마음을 써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말을 하고 사람들을 만났다. 그 때 나는 써니로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들을 받았다. 당시 자주 듣던 말들로는 손님들에게 ‘오늘 써니 출근 안 하나요?’, 다른 가게 사장님들에게 ‘우리 가게에서 일해볼 생각 없어요?’, 다른 지점 점장님들에게 ‘써니처럼만 해라.’ 등등이 있다. 즐거운 써니 생활을 만들어주신 많은 분들에게는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표하며 그 때의 써니에 대해서는 언젠가 마음이 내키면 더 많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봐야겠다.

겉으로 보기에 모든 게 완벽하게 즐거워만 보였던 써니에게는 정말 큰 문제가 있었다. 써니라는 자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이선영이라는 자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우리 부모님께. 써니라는 나의 면은 누구의 선택도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안온한 그늘 아래서 만들어졌을텐데, 그런 면이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결코 그 모습을 그 사실을 감사하다고 말씀조차 드리지 못할 것이 슬펐다. 사실 일을 하면서 흘리지 못할 눈물을 삼킨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세상을 지키는 방법이 고작 거짓말이라니 겁 많은 비겁함인 줄을 알았기에 끔찍하게 싫었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나의 써니를 드러내 보이는 것으로 인해 받아야 할 미움과 슬픔이 무서워서 한 쪽 편으로 미뤄놓고만 있다.



두 번째 부캐는 사실 이선영의 부캐가 아니라 이선영의 부캐인 써니의 부캐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맥주 에디터 ‘맥주마시는써니’다. 나는 진짜 진짜 진짜로 맥주에 진지하다. 이태원 펍에서 일을 하면서 크래프트 비어, 수제 맥주를 팔고 소개하면서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을 사모으고 맥주를 기록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에 맥주를 컨텐츠로 삼아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프로젝트팀을 알게 되었고 나는 무작정 메세지를 보냈다. 에디터를 혹시 구하지는 않으시냐고. ‘저는 이런 식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냈다. 그렇게 나는 ‘그래서, 맥주’라는 공간에서 ‘맥주마시는써니’라는 이름으로 맥주에 관한 글을 쓰게 됐다.



처음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나는 ‘맥주마시는써니’처럼 필명을 쓰려고 했다. 자신이 없었다. 이선영이라는 내 이름으로는 내 마음에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 털어내 보이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쓰는 글이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조금 쑥스러운 것 같기는 하다. 감성충, 진지충, TMI충 같은 말들이 넘쳐나는 요즈음인데 사실 수필은 감성적이기도, 진지하기도, 누군가는 관심도 없을 쓸데없는 얘기들을 쏟아 내기도 한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건 아닌데 글을 쓰는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수필의 힘이다. 수필은 수필가를 바람을 세차게 불어서 글 쓰게 하는 대신 저 은하수 너머에서 뜨거운 빛을 보내 글 쓰게 한다. 그 앞에서는 그게 참, 어쩔 수 없다. 꽁꽁 여미고 있던 옷 자락을 절로 놓게 되고 나라는 사람이 글에 오롯히 담기는 것은 그저 순리다. 이선영이 이선영으로 쓰는 글이 그 순리를 거스르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내가 이선영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을 떠올려 보면 죄다 사소하게 라도, 위선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엄마아빠가 볼 것을 알기에, 써니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지워야 됐기 때문에 내가 내가 아닌 것만 같은 글이 튀어나왔다. 내가 쓴 나의 글이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참 낯설었다. ‘온나’라는 공간에서는 그런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써니의 힘을 빌린 것처럼 다시 한 번 필명의 힘을 빌리고 싶었다.


아주 예전부터 내가 글을 쓴다면 ‘이해’라는 필명을 써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이선영으로서의 정체성은 가족 성에 남겨 놓고 싶었다.  ‘이해’라는 필명으로 나를 한꺼풀 덮으려고 했으면서도 또 이선영을 알아 달라고 외치는 알량함이었다. ‘이’는 그렇게 가져왔다. 그런데 또 어쩌면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한국인이어서 못 떼다 버린 거일 수도 있다. 보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가족과 집안을 조금 더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가 하면 ‘해’는 써니를 위한 자리다. Sunny하니까 Sun, 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따왔다. ‘온나’라는 공간에서 반은 이선영에게 줬다면 공평하게 써니에게도 반을 주고 싶어서.

그렇게 합쳐 놓고 보니 ‘이해’라는 단어가 갖는 멋이 있어 꽤 맘에 들었다. 내가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남에게 나를 이해받고 싶은 마음과 내가 타인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과 그런 마음들이 고여들었다.

이 이름을 나의 공식적인 세 번째 부캐로 삼아야겠다, 마음 먹었고 김새봄에게 얘기를 했다. 나는 필명을 쓸 거고, 그 필명은 ‘이해’라고 말했다. 김새봄은 ‘이해’라는 단어가 좋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필명까지 정했고 글만 쓰면 되겠구나 하던 중에 어떤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직은 펼쳐낼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 글로 쓸 준비는 되지 않았다. 요컨대 나는 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해서 나에 대한 불확실성을 가득 안고 있다는 심리적 소견을 들은 것이었다.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뭉쳐졌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써니라는 부캐를 만들어서 나를 숨기고 드러내왔다. 그것이 주는 알량한 안정감을 금방 흩어져버릴 손 안의 모래알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른 척 하고 싶었고 애써 모른 척 해왔는데 갑작스럽게 들켜버린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훔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선영의 글을 써야겠구나.]


이 공간에서 맘껏 도망치고 도망의 이야기를 하기로 했지만, 필명 뒤로 도망가지는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이선영으로 글을 쓰기로 했다.



두 번째 프롤로그같은 이선영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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