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도연 Sep 16. 2024

겜알못의 게임로그 #13: <데드 스페이스>

Dead Space (2023)

|타이틀| 데드 스페이스 (Dead Space)

|최초출시일| 2023년 1월 27일

|개발사| Motive Studio

|유통사| Electronic Arts

|구입처| 엑스박스 게임패스(구독)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A12Z 아이패드 프로/아이폰 13 프로,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백본 원 컨트롤러

|기타|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 이용


<데드 스페이스>


얼마 전 <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 2024)>를 봤습니다. 예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만큼 저는 에이리언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안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 게임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Alien: Isolation, 2014)>을 플레이해 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영화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제작 소식이었기 때문에 더욱 남다른 심정이었지요.

왼쪽: <에이리언: 로물루스>에서 곳곳에 등장하는 비상전화. 가운데: 페데 알베레즈 감독이 직접 설명해 주는 비상전화의 의미. 오른쪽: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속 비상전화.

영화는 아주 훌륭했습니다. 기존 에이리언 시리즈에 대한 연계고리와 오마주를 가득 품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오아시스이자 경고였던 비상전화기도 있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본 다른 이들의 영화 감상 중에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외에 다른 게임이 하나 더 언급되고 있었습니다. 바로 <데드 스페이스 (2023)>였죠.


<데드 스페이스>는 끔찍한 괴물로 가득 차버린 거대 우주선 USG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를 담은 SF호러 게임입니다. 단순한 생존 외에도 제법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데다 게임 자체도 평가가 괜찮았다고 하네요. 2023년에 나온 <데드 스페이스>는 2008년에 나온 <데드 스페이스>의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은 3편까지 나오고 외전 게임과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까지 나왔는데 마지막에 나온 <데드 스페이스 3 (Dead Space 3, 2013)>이 혹평을 받으며 시리즈가 끊겼는데, 이후 10년 만에 원점이었던 1편의 리메이크가 나온 겁니다.


<데드 스페이스> 리메이크는 이미 몇 번 추천을 받아서 언젠가 해 볼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맥용이 따로 없었지요. 지포스 나우에도 없었고요. 맥이나 아이패드에서 <데드 스페이스>를 플레이할 유일한 방법은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이었습니다.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은 지포스나우와 비슷한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인데, 구독형 게임 서비스인 게임패스 요금제 중 가장 비싼 게임패스 얼티밋에만 포함된 기능이었지요. 지포스나우와는 달리 게임패스는 게임을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지만, 클라우드 게이밍이 포함된 게임패스 얼티밋은 한 달 동안 소유권도 없는 게임 하나만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가격이기도 했습니다(1만 6천 원). 절대적인 가격이 부담스러웠다기보다는 PC와 콘솔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 중 오직 클라우드 게이밍으로 하나의 게임만 하겠다고 모든 가격을 지불하기에는 좀 아쉬운 느낌이 있었어요. 또 지난 7월에 가격이 올라서 살짝 분한 기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그동안 계속 미루고만 있었지요.


그렇게 미루고 있다가 잠시 잊고 있던 중에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통해 다시 한번 <데드 스페이스>가 제 눈앞에 나타난 거죠. 그래서 해보기로 했어요. 엑스박스 게임박스 얼티밋은 결국 중고장터에서 1만 원에 구입했고요.


시작
공간
적, 네크로모프
플레이
무기
이야기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Xbox Cloud Gaming
다음 게임?


시작

첫인상은 아주 좋았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공간을 비추는 나약한 빛줄기와 정교하고 묵직한 기계들이 맞물리는 소리들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세바스토폴 무서울 만큼 조용하고 건조한 느낌의 우주정거장이었다면 <데드 스페이스>의 USG 이시무라는 시종일관 기괴한 노이즈로 가득하고 습기와 기름기가 가득한 거대 우주선이었습니다. 특히 세이브 스테이션과 상점을 이용할 때 볼 수 있는 기계적인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기름 칠 잘 된 금속 톱니바퀴와 체인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빠르고 매끄러운 움직임 때문에 처음엔 별 이유 없이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해보기도 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 속 세이브 스테이션(왼쪽)과 상점(오른쪽).


작업복 혹은 전투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수트의 디자인도 훌륭했어요. 수트가 바뀔 때마다 일부러 가까운 곳에서 잘 보이는 위치로 조정한 다음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했고요. 처음엔 이 수트를 RIG(Resource Integration Gear)라고 부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RIG은 등에 달린 컴퓨터를 말하는 거였고 수트의 나머지 부분은 일종의 악세서리 같은 느낌이더군요. 그래도 게임 속 세계에서도 통상적으로 수트 전체를 RIG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또 RIG를 사용할 때마다 전면에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라요. 플레이어를 위한 화면이라기보다는 주인공이 보고 있는 컴퓨터의 UI를 플레이어에게도 보여주는 느낌이었고 이것도 나름 신선했습니다. 가슴 부위에 달린 프로젝터가 비추고 있는 것 같던데 재미있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게임 플레이 중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RIG 수트. 왼쪽부터 레벨1부터 레벨5까지.


소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주선 곳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가 벽을 두드리며 뭐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리고요. 멀리서 비명이 들려오기도 합니다. 주인을 잃고 목적 없이 움직이는 기계 소리도 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환청처럼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는 음침한 노랫소리도 흘러오기도 하고요. 소리를 통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방법이 아주 멋졌습니다. 진공 상태로 나갔을 때, 혹은 연출적으로 필요할 때 찾아오는 완전한 정적도 좋았고요.


주요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괴물 '네크로모프(Necromorph)'은 가끔 벽이나 천장에 있는 환풍구에서 튀어나오는데, 이런 환풍구는 우주선 곳곳에 있어요. 그런데 모든 환풍구에서 네크로모프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환풍구가 터지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환풍구를 볼 때마다 긴장감이 고조되었어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에서는 환풍구가 소중한 피난처였다면, <데드 스페이스>에서는 조심하라는 경고의 표시로 작동했습니다.


공간

USG 이시무라에 들어간 이후, 처음에는 비슷비슷한 장소가 많아 돌아다니는 재미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부 경치도 잘 보이지 않고요. 하지만 게임이 진행되면서 디자인 언어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목적에 맞게 설계된 다양한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다양한 실험실과 식당, 숙소, 격납고, 공장, 터널을 돌아다니고,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 소행성 표면을 지나가거나 하고 다른 우주선에도 올라타기도 했고요. 괴물에게 쫓기지만 않았다면 좀 더 천천히 살펴보고 싶은 공간들이 많았습니다. 중반부쯤에는 너무 많은 공간들이 등장해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였어요. 또 USG 이시무라 곳곳에는 SF 속 우주선과 기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선을 뗄 수 없는 다양한 거대 기계 장치들이 가득해서 눈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챕터에 가게 되는 외계행성 이지스VII은 시각적으로는 좀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마커가 일으키는 분위기가 독특해서 좋았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속 다양한 분위기의 공간 중 일부

비슷한 공간이라도 무중력 상태가 되는 순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무중력 공간에서의 이동은 <옵저베이션 (Observation, 2019)>에서도 즐겨봤지만 그때는 작은 부유형 로봇이었다 보니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던 반면, 이번엔 사람의 몸을 조작해야 하다 보니 굉장히 새롭고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조작의 불편함은 긴장감을 적당히 향상해 줬고, 무중력 공간에서 적이 나타날 때만의 스릴도 남달랐어요.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보며 <데드 스페이스>를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게 바로 이 무중력 공간이었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주인공 레인과 앤디가 중력 발생 장치를 끄고 나서 제노모프와 산성피, 장애물을 헤치고 나가는 장면이 <데드 스페이스>의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가 무중력 공간에서 네크로모프와 파편을 헤치고 나가는 장면의 느낌과 유사했던 거죠. 무중력 공간을 묘사하는 영화는 많지만, 무중력 공간에서 우주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담아낸 영화나 게임은 (아마도)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무중력 공간에서의 사투가 두 작품을 이어주는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된 것 같네요.

왼쪽: <에이리언: 로물루스> 속 무중력 장면. 오른쪽: <데드 스페이스> 속 무중력 장면



적, 네크로모프

주요 적으로 등장하는 네크로모프는 시체가 변형을 일으키며 탄생한 괴물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날카롭고 징그럽게 생긴 괴물 정도로만 보여서 조금 심심했는데요, 하지만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고 종류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는 점차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USG 이시무라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네크로모프

네크로모프를 제압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사지를 자르는 겁니다. 머리를 쏘거나 몸을 공격해도 잠시 경직이 될 뿐 큰 대미지는 줄 수 없어요. 반면 팔과 다리를 자르면 금방 무력화됩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는 플라즈마 커터는 이름 그래도 무언가를 자르는데 특화되어 있고요.


사지를 자르는 게 기본이기는 하지만 모든 네크로모프가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그때 다른 무기와 다른 전략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같은 종류라도 하나가 나올 때와 여럿이 나올 때도 적절한 무기와 전략이 다르고요. 여러 종류가 한꺼번에 등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강한 무기로 잘 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상황에 따라 전략과 무기를 바꿔가며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갑자기 여러 적들이 등장해 결국 죽었을 때는 어떤 적이 등장했는지를 떠올리며 무기를 재정비하고 전략을 생각하며 재시도를 했습니다. 약간 시간여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게임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지만요.


가끔 어떤 공간이 갑자기 격리될 때가 있는데요, 그러면 여러 종류의 네크로모프가 한꺼번에 등장해 이들을 모두 없애기 전까지는 격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덕분에 격리가 시작되면 일단 잔뜩 긴장하고 탄약을 채우며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데, 도망갈 곳이 없다는 사실이 즐거운 압박을 줬던 것 같습니다.


모든 네크로모프들이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헌터'입니다. 헌터는 시체가 변이한 다른 네크로모프와는 달리, 실험을 통해 살아있는 인간을 직접 네크로모프로 변형한 건데요, 재생 능력을 갖고 있어서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죽일 수가 없습니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제노모프, <바이오하자드 RE:2>의 타이런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알치나 드미트리스쿠 같은 추격자 역할입니다. 제노모프는 만나거나 들키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었다 보니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무서웠고, 타이런트와 알치나는 비교적 이동이 느렸다 보니 무섭다기보다는 귀찮은 존재였지만, 헌터는 만나면 일단 도망치면서 어떻게든 잠시나마 제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보니 '추격자'의 역할로는 존재감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게다가 사이드 미션 '계획된 의료 과실'을 완료하다 보면 주인공 아이작은 환자 브랜트 해리스가 광신도 과학자 챌러스 머서에 의해 네크로모프 '헌터'로 변해가는 과정을 비디오 로그를 통해 목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네크로모프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고요. 게임의 막바지에 이르러 헌터를 이윽고 제거할 때 아이작이 브랜트에게 보낸 "편히 쉬어, 해리스. 이젠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Rest now, Harris. He can't hurt you anymore.)"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사이드 미션 '계획된 의료 과실'을 어디까지 수행했느냐에 따라 이 장면의 대사가 조금씩 달라진다고 하네요.

게임 속 다양한 네크로모프 중 일부. 헌터(The Hunter)는 윗줄 제일 오른쪽.


개인적으로 가장 버거웠던 적은 중간보스라고 할 수 있는 리바이어던(The Leviathan)이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커다란 촉수를 휘두르며 폭발성 물질을 뱉어내는 거대한 크기의 네크로모프인데요, 적당한 대응 방법을 발견하기까지 YYY에게 참 여러 번 죽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한 번 물리치고 나서 나중에 다른 곳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거기서도 역시 익숙해지기 전까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여담으로 쓰러진 적을 강하게 짓밟을 수도 있는데요, 이게 아주 짜릿했습니다. 타격감도 묵직한 데다 좋은 의미로 지긋지긋했던 녀석들을 짓밟으며 터뜨리는 쾌감이 상당했어요. 아이작도 쌓인 게 있다 보니 이미 죽은 적을 여러 번 밟으면 아이작이 욕설을 뱉기도 하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플레이

게임의 진행은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A를 하려고 하다가 막혀서 이걸 해결하기 위해 B를 했고, 다시 A를 하려고 하니 이제 A가 무의미해지거나 아예 불가능해져서 이번엔 다른 대안으로 C를 하려고 하는데 이게 또다시 막히거나 갑자기 새로운 생황이 생겨 D를 해야 하고……, 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들이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보다는 조금 더 납득이 갔습니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에서는 상황이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후반부에 가서는 억지로 분량을 늘려놓은 것 같은 인상이 제법 있었던 반면, <데드 스페이스>에서는 USG 이시무라에서 벌어진 사건의 배경이 조금씩 드러나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은 다른 무엇보다 '생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아무래도 좀 단조로울 수밖에 없었고, <데드 스페이스>는 생존이나 탈출과는 별개로 '마커'라는 물체를 둘러싼 비밀과 대응이 이야기의 큰 축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보니 조금 더 밀도 높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사실 큰 틀에서 보면 게임의 진행 외에도 <에리리언: 아이솔레이션>과 비슷한 부분이 제법 있었습니다.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는 아만다 리플리, 아이작이 찾고 싶어 하는 연인 니콜은 어머니 엘렌 리플리, 정체불명의 존재 네크로모프와 마커는 제노모프, USG 켈리온은 토렌스 호, USG 이시무라는 세바스토폴 정거장으로 치환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진행 방법도 제법 비슷했고요. 하지만 분명한 차별점도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들 대부분이겠지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에서는 제노모프가 결코 죽일 수 없는 존재로 등장하는 대신 거의 항상 한 마리만 나오는 반면, <데드 스페이스>의 네크로모프들은 분명 죽일 수는 있지만 아무리 죽여도 언제든 또 우르르 몰려올 수 있다는 게 또 다른 차이인데, 이게 제법 비슷한 구성 속에서도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비교하자면 제대로 된 무기 없이 제노모프 한 마리를 상대해야 했던 <에이리언> 1편과 무기를 잔뜩 갖췄지만 그만큼 수많은 제노모프를 상대해야 했던 <에이리언 2>의 관계와 비슷하겠네요. 물론 결말이나 세부적인 설정들은 전혀 다르지만요.


난이도는 '스토리', '쉬움', '보통', '어려움', '불가능'이 있습니다. 평소였다면 가장 쉬운 '스토리'를 골랐겠지만, '스토리'에서는 <데드 스페이스>의 특징 중 하나인 '사지를 잘라야 무력화되는 적'이라는 요소가 사라져 전략적 재미가 크게 줄어든다고 해서 '쉬움'을 골랐습니다. 제게는 적당한 난이도였어요. 체력과 탄약 모두 적당히 아쉬울 만큼 부족해 긴장감을 잘 유지해 줬습니다. 전략을 잘못 짜거나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시행착오를 겪으며(끔찍하게 죽으며) 상황을 헤쳐나가는 재미도 있었고요. 경우에 따라선 바닥난 체력을 갖고 거의 일방적으로 도망치기만 하기도 했습니다. 2회차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보통'으로 해봐야겠습니다.


적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 전략을 다르게 짜야한다는 것도 중요한 재미 요소였습니다. 무기마다 장단점이 명확했고 적의 특징에 따라 다른 무기를 다른 방법으로 써야 했어요. 또 같은 적 같은 무기라도 무중력 상태에서는 전략이 달라져야 했고요.


전략적 재미를 가장 많이 키워준 건 스테이시스와 키네시스라는 기능이었습니다. 스테이시스를 쏘면 그걸 맞은 대상 주변의 시간이 느려져요. 적들의 속도가 대부분 빠른 편이다 보니 사지를 자르려고 해도 조준이 쉽지 않은데요, 스테이시스를 쓰면 적들의 동작이 느려지기 때문에 사지를 자르기가 좀 더 수월해집니다. 너무 많은 적들이 습격해 왔을 때도 유용하게 쓸 수 있고요. 빠르게 움직이는 장애물을 통과할 때도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무한정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틈틈이 충전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역시 전략적 재미를 더해 줬습니다. 어떤 적은 스테이시스를 써야만 쓰러뜨릴 수 있기도 했고요.

적이나 사물의 속도를 늦춰주는 스테이시스

키네시스는 주변에 있는 물체를 원격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능입니다. 장애물을 치울 때도 쓸 수 있고 적에게 물건을 집어던질 때도 쓸 수 있어요. 폭발성 물질을 폭탄처럼 쓸 수도 있고, 심지어는 죽은 네크로모프의 파편을 다른 네크로모프에게도 던질 수 있어요. 그래서 탄약이 부족할 때 제법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또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템을 일일이 주우러 가지 않고 키네시스로 가져올 수도 있어서 시간을 절약해 주기도 했고요.


사실 게임 초반에는 스테이스와 키네시스를 잘 활용하지 못했어요. 중반부 정도에 접어 들어서 조금씩 이 두 기능을 활용하는데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회차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가장 고마웠던 특징 중 하나는 내비게이션입니다. 대부분의 게임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는데, <데드 스페이스>에는 목적과 함께 가야 할 방향을 빛나는 선으로 알려주는 기능이 있어서 길을 잃을 걱정은 없었습니다. 대신 내비게이션을 쓰기 위해서는 일단 멈춰야 했고 안내선도 금방 사라지기는 했지만요. 덕분에 길을 헤매느라 시간을 낭비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은 거의 없어서 좋았습니다.

목적과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안내선


무기

무기 종류가 지나치게 많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전부 일곱 종류가 있는데 한 번에 네 종류를 장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상황에 따라 무기를 미리 조정해 둬야 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적 모두 각각의 특징이 있어서 어떤 무기를 골라두느냐를 고민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플라즈마 커터는 가장 다양하게 쓸 수 있지만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조준을 잘해야 하고, 펄스건은 타격감은 좋지만 화력이 약하고, 포스 건은 여러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 유용하고 보스전 때 잡몹을 쫓아내기에는 좋지만 탄약이 비싼 데다 단거리에서만 쓸 수 있고, 컨택트 빔은 가장 강력하고 보스 전 때 유용하지만 발사에 시간이 걸리는 등등. 덕분에 다른 게임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 한 두 개를 계속 쓸 때가 많았는데 <데드 스페이스>에서는 거의 모든 무기를 고루 돌려가며 썼어요.

<데드 스페이스>의 무기들

다만 좀 아쉬웠던 건 2차 발사를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플라즈마 커터를 제외한 모든 무기가 2차 발사라는 걸 갖고 있는데요, 탄약집을 수류탄처럼 쓴다거나, 연료통을 불폭탄처럼 쓰고, 설치형 함정을 만들거나, 블랙홀처럼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거나 하는 등입니다. 이것들도 전략적으로 잘 쓰면 좋았을 건데 탄약 소비가 심하다는 것 때문에 좀 주저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2차 발사의 존재를 자꾸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래서 2차 발사 역시 2회차 플레이를 해보고 싶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사이드 미션

다른 게임 로그에서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는 메인 스토리 진행과 무관한 사이드 미션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메인 스토리에 대한 몰입감이 깨지는 게 주요 원인이었지요. 주로 <툼 레이더> 시리즈에서 그랬고요.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에서는 메인 미션과 사이드 미션의 관리와 구분이 쉬웠습니다. 가슴에 달란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서 진행 가능한 미션들을 볼 수 있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지정도 가능했어요.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사이드 미션이었다 보니 동기도 충분했습니다. 동료가 위험에 빠진 상황에서 뜬금없이 무덤 도굴을 하거나 마을 주민 분쟁을 해결해 주던 <툼 레이더> 시리즈와는 달랐지요. 그래서 사이드 미션을 진행하면서도 몰입감이 깨질 일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사이드 미션이 세 개만 있는 것도 좋았어요. 딱 적당했죠.


과학적 방법: 아이작의 연인이자 선임의무관인 니콜이 이시무라에서의 감염 사태 속에서 어떻게 대응을 했었는가를 추적합니다.

권한 없음: 이시무라에 있는 여러 보안 시설에 접근하기 위해 승무원들의 보안 장치를 수집합니다.

계획된 의료 과실: 이시무라의 과학사관이 헌터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헌터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추적합니다.


사이드 미션을 진행하다 보면 이미 자나 갔던 곳에 다시 돌아갈 때가 있는데, 그렇게 가보면 처음 방문했을 때와 분위기가 달라져 있거나 습격받았을 때의 처참한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있기도 해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어요. 게다가 이미 지나온 곳이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적이 새롭게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이드 미션을 진행할 때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

주인공 아이작 클라크는 CEC라는 우주채굴 기업의 엔지니어입니다. CEC의 가장 거대한 행성 채굴선이자 연인 니콜 브래넌이 타고 있는 USG 이시무라의 구조신호를 받고 구조팀에 자원해 소형 구난함인 USG 켈리온을 타고 이시무라로 향하지요. 그곳에서 네크로모프의 습격을 받고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연인 니콜을 찾고 이시무라를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다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마커'를 안전한 곳에 옮기도 하고요.


마커라는 정체불명의 물체는 주변에 있는 지성체들을 광기로 몰아가 서로를 해치게 만들고, 그렇게 생겨난 시체를 네크로모프로 만들어 상황을 지옥으로 몰아갑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이 마커라는 물체에 숨겨진 여러 가지 점차 비밀이 드러나고요. 이 마커가 일으킨 재난 속에서 그저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마커를 원래 위치로 되돌려 재난을 수습하려는 사람들, 마커를 통해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람들, 마커를 지구로 회수해 가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얽히며 여러 가지 굴곡과 반전을 만들어냅니다.


주인공 아이작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 상당수가 크고 작은 반전 요소를 갖고 있어 이야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게임에 대해 미리 알아보던 중에 우연히 중요한 반전 일부를 알아버리기는 했지만 그 반전은 결말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내가 반전을 잘못 알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잘 연출되어 있었고요. 인물들을 입체적이고 각자의 개성과 매력을 갖게 해주기도 하는데 게임의 반전과 직결된 부분이 많아서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훌륭한 SF호러였어요. '마커' 같은 초월적 물체가 인간을 광기로 몰아가는 건 그리 드문 설정이 아닙니다. SF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하지만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세계관 속에서 이 물체를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와 사건들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왜 아직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담아내야 하는 정보량이 많다 보니 2시간 남짓의 영화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과감한 감독과 뛰어난 각본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에서 발견된 최초의 마커인 블랙 마커와 이를 복제한 레드 마커, 여기서 탄생해 퍼져나간 신흥종교 유니톨로지의 이야기까지 해야 하니까요. 게임에서는 다양한 로그를 통해 전달할 수 있었지만, 이건 영화적 방법은 아니지요. 관심을 보이는 감독은 있다는데 언젠가 영화로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

클리어하는데 보통 10시간에서 12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저는 20시간 정도 걸렸네요. 게임 흙손이니 어쩔 수 없지요.


게임은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적과 상황에 따라 무기와 대응법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고 섬세하게 설계된 우주선과 끔찍한 네크로모프들의 모습은 시각적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야기 측면에서는 매력적이라기보다는 흥미로웠던 것 같네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건 <바이오하자드 빌리지>가 있었는데, <데드 스페이스>는 여름 블록버스터 같은 느낌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짜릿한 SF 영화 혹은 소설을 한 편 즐긴 것 같은 기분이네요.


시리즈의 다른 게임도 해보고 싶은데 2편과 3편은 아쉽게도 리메이크가 나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합니다. 원작을 해봐도 되겠지만 최근에 나온 리메이크의 최신 그래픽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구작을 잘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외전격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도 있는데 찾아보니 한국어판이 있었습니다. 읽어볼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Xbox Cloud Gaming

게임패스 얼티밋의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은 스트리밍 영상의 질은 지포스 나우보다 좋은 것 같았지만, 대신 더 자주 끊어지거나 딜레이가 발생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지포스 나우는 딜레이가 좀 발생하더라도 금방 다시 돌아오고는 했는데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은 다시 끊어졌다가 회복하거나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전에는 회복되지가 않았어요. 물론 이건 네트워크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저는 집에서는 와이파이 메시 바로 옆에서 했고 집 밖에서 할 때는 LTE로 했는데 크게 차이는 없었던 것 같네요. 기분 탓이겠지만 적이 접근해 와서 빠른 조작이 필요할 때 더 자주 버벅거리는 느낌이라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플레이 경험은 신기할 만큼 훌륭했습니다. 인터넷 연결에 스트리밍만으로도 이 정도가 가능하구나 싶을 정도로요. 데이터 걱정만 없다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 연결만으로 AAA급 게임을 할 수 있다니. 게다가 노트북이든 태블릿이든 스마트폰이든 가리지 않고.

엑스박스 클라이드 게이밍으로 플레이하는 <데드 스페이스>

참고로 아이패드 프로에서 LTE로 한 시간 정도 플레이했더니 3GB 정도의 용량을 쓰더군요. 공유 데이터에는 제한이 있으니 마음 편하게 쓰기는 어렵겠지만 가끔 30분이나 한 시간 정도 해보기에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플레이한 게임들


다음 게임?

일이 좀 많이 밀려있다 보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바이오쇼크 (Bioshock, 2007/2016)>를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중에 <컨트롤 (Control, 2019/2020)>이 맥용으로 나온다면 그것도 해보고 싶고요. 아마 올해 남은 기간 중에는 이 둘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또 맥용으로 다시 나온다는 <바이오하자드 RE:2 (Resident Evil 2, 2019)>가 제때 나온다면 2회차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요.

왼쪽: <바이오 쇼크>, 가운데: <컨트롤>, 오른쪽: <바이오하자드 RE:2>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겜알못의 게임로그 #12: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