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s of Rose (2022)>
|타이틀| 섀도즈 오브 로즈 (Shadows of Rose)
|최초출시일| 2022년 10월 28일
|개발사| Capcom
|유통사| Capcom
|구입처| App Store (Mac)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첫 글에서 이야기한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DLC는 아직 해보지 않았어요. 원작 영화 1편의 주인공이 되어서 노스트로모 호를 돌아다니는 내용인 만큼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지만 본편과는 직접적인 연결이 없고 일종의 팬 서비스에 가까운 내용이다 보니 당장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거든요. 일단 본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위압적인 긴장감으로 넘치는 데다 볼륨도 제법 많았다 보니 시간을 좀 두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DLC인 <섀도즈 오브 로즈(Shadows of Rose, 2021)>은 본편이 끝나자마자 얼른 해보고 싶었습니다. 주인공이 무려 본편에서 에단 윈터스가 지켜낸 딸 로즈메리 윈터스(Rosemary Winters)라고 하니까요. 게임 자체는 그리 길지 않았어요. 알아보니 3시간 전후면 끝난다고 하더군요. 마침 부산까지 출장이 있어서 KTX를 왕복 4시간을 타야 하다 보니 이때 해보기로 했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KTX에서 노트북과 컨트롤러를 꺼내 AAA게임을 해보는 것도 나름 신선했어요.
안타깝게도 16살의 로즈는 그리 편하게 살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태생적으로 다른 이들과 달랐던 체질과 능력 덕분에 학교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어요. 심지어 선생님도 그런 로즈를 방치했고요. 로즈의 보호자가 다름 아닌 바이오테러 전투 베테랑인 근육 고릴라 크리스 레드필드인걸 생각하면 참 대담한 아이들과 선생님이다 싶었지만, 일단 그런 설정이었습니다.
10대 소녀로서는 고민이 많았겠지요. 그래서 로즈는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크리스의 동료 중 한 명이 로즈에게 찾아와 말합니다. 그 힘을 없앨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로즈는 그의 말을 따라 조금 위험한 시도를 해보려다가 정말 위험한 상황에 빠져버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요 배경으로는 본편에 나왔던 드미트리스쿠 성과 도나 베네비엔토의 집이 조금 변형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는데, 실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의식 세계 속에 구현된 공간입니다. 같은 공간을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재미를 뽑아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비주얼과 분위기는 본편보다도 더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웠습니다.
주인공 로즈와 똑같은 얼굴을 한 또 다른 로즈가 위기에 빠진 진짜 로즈를 구해 준 뒤, 자신을 로즈라고 무덤덤하게 소개하는 장면은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로즈의 복제품들이 괴물에게 쫓기다가 희생당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는 경악했고요. 복제품 로즈들은 불완전한 존재라서 감정이 거의 없는데 유독 공포감만큼은 느끼다 보니 에단이 목숨 걸고 구한 로즈와 똑같은 얼굴을 한 그들이 두려움에 떨며 비명을 지를 때는 정말 안쓰러울 정도였어요.
복제품 로즈들을 괴롭히는 건 가면을 쓴 듀크입니다. 가면을 썼다는 것 말고는 본편에서 나온 상인 듀크와 똑같이 생겼지만 가면 듀크는 <섀도 오브 로즈>의 실질적 배경인 '균근 속 의식의 세계(Realm of Consciousness in Megamycete)'에서 재창조된 별개의 존재입니다. 본작의 상인 듀크가 비밀은 많지만 은근히 자상하고 친절했던 반면 가면 듀크는 기억이 없다는 상실감을 가학적 본능으로 푸는 악랄한 캐릭터입니다. 가면 듀크는 제법 도망을 잘 친 복제품 로즈들의 마지막 순간을 박제처럼 굳혀서는 성의 복도에 장식품처럼 걸어두고 있는데 정말 이만한 악취미를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끔찍했습니다. 가면 듀크를 몇 대 패주고 싶을 정도였는데 아쉽게도 드미트리스쿠 성에서의 중간 보스전은 듀크가 불러낸 괴물과의 싸움이었어요. 본편의 진짜 듀크도 여기에 나온 가면 듀크도 결국 끝까지 자기 의자에서 한 발자국도 내리지 않네요.
도나 베네비엔토의 집은 이번에도 역시 인형의 집 컨셉이었는데요, 하지만 본편 속 같은 공간보다 훨씬, 그리고 압도적으로 공포스러운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본편에서는 그저 간단한 퍼즐의 대상이었을 뿐이던 미아 윈터스 마네킹이 눈을 번쩍이며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의 압박감과 긴장감은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에서 제노모프의 발자국이 들렸을 때의 그것과 비슷했어요. 본편의 그 유명한 베이비는 이 ‘미아 마네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이후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수많은 인형을 피해 다니는 것도 긴박감이 넘쳤고요. 본편 속 베네비엔토의 집은 공포감은 높지만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제법 어려웠습니다. 한 번인가 두 번 정도 죽었을 거예요. 그러고 보니 본편에서는 'You are dead.'라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You are lost.'라고 나오는 걸 보면 죽음보다는 자아를 잃는 것에 가까운 듯하네요. 역시 인형은 공포물의 훌륭한 소재입니다.
이후 벌어지는 두 번째 중간 보스전과 최종 보스전은 평범했어요. 7편과 8편의 보스전을 연상시켰는데 8편의 보스전보다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총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수단이고 로즈의 특별한 능력을 써야 하는데, 이걸 쓰기 위한 조건과 조작법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그리고 두 번째 중간 보스와 최종 보스모두 궁극적인 동기의 중심에는 모두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있다는 게 인상에 남았습니다. 자세한 건 스포일러라 밝히지는 않겠지만요. 사실 '가족'은 7편과 8편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보스전이 쉽든 어렵든, 본편보다 무섭든 무섭지 않든, 적이 누구이든, <섀도즈 오브 로즈>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와 딸의 재회죠.
에단과 로즈의 만남은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부모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상상 중 하나는 내 아이가 자란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에단은 본편의 마지막 순간에 로즈를 크리스에게 넘기면서 이제 다시는 로즈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고요. 그래서 최후의 결단을 내리는 순간에 눈물로 시야가 흐려졌을 테고요. 하지만 그랬던 에단이 16살이 된 로즈를 다시 만난 거예요. 로즈의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보이는 작은 점 같은 특징들이 더욱 감정을 증폭해 줬어요. 부모는 아이 얼굴을 언제나 자세히 들여다보며 특징을 기억하게 되니까요. 로즈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줬지만 기억 속에는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 에단을 드디어 만났고, 아버지가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신을 구해준 것처럼 로즈 자신도 그토록 원했던 목표를 버리면서 아버지를 구해줬지요. 바라던 것을 이뤄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에단에게 로즈는 오히려 그런 선택을 했기에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으니 자신의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다고 말해요.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죠.
그리고 로즈가 현실로 돌아온 뒤, 본편에서 봤던 것과 완전히 동일한 에필로그가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로즈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아버지를 닮았다는 요원의 말에 로즈가 "나도 알아요(I know)."라고 대답했을 때 그게 자녀로서의 단순한 직감이 아니라 정말 아버지를 만났었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섀도즈 오브 로즈>는 이미 충분히 훌륭했던 본편의 감동을 더욱 끌어올려주는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저는 눈물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라서 아무리 감동적이라고 해도 아주 가끔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 정도에서 끝나는데요, 그래서 유튜브에서 리액션 영상을 찾아보다가 저 대신 눈물을 쏟아주시는 분들을 찾았습니다: ohkaty (영어) & ゆずとママこ。(일본어). 두 번째 분은 원래 감수성이 아주 풍부하신 분 같은데 어린 자녀가 있는 어머니이기에 더 감동하신 게 아닌가 추정해 봅니다. 이 분들의 영상으로 제 감동을 대리표현하며 DLC <섀도즈 오브 로즈>의 짧은 로그는 여기서 마칩니다.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