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gyun Jeong May 20. 2019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_일본 가나자와

다섯 번째 장소

 

 2016년 어느 여름의 하루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의 서쪽에 위치한 도시인 가나자와 시(市)는 정말 조용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약 3시간여를 달려 도착할 수 있는 이 곳은 뜨겁게 나를 맞이해줬다. 다소 생소한 도시인 가나자와까지 온 이유는 이 곳에 있는 한 건물 때문이었다. 그 당시 나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준비 중이었는데, 논문의 주제가 “자크 데리다의 ‘텍스트’ 관점에서 본 현대 건축의 공간 구현 방식과 특성에 관한 연구 -SANAA의 건축 작품을 중심으로-”였다.(여기서 SANNA는 일본의 건축그룹으로 Sejima Kazuyo와 Nishizawa Ryue를 함께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이유 덕분에 일본 건축여행을 오게 되었고, SANNA가 설계한 건물 중 가장 유명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절대적으로 경험해야 했다.

 우선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을 간단히 설명하면, 지역발전의 일환으로 현대적 의미의 미술관을 제안한 곳이다. 미술관은 지역의 생활환경과 매우 근접해있어 주민들이 자유롭고 편하게 접근이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문화예술활동과 지역주민 간 교류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지역의 문화를 새롭게 창조한 장소라 할 수 있다.

 

미술관 전체를 둘러싼 유리벽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미술관은 고정된 프로그램에 얽매여 디자인을 진행하기보다는 공간을 생성하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요소로써 프로그램을 받아들인다. 프로그램을 건축의 직접적인 생산 논리로서 사용하지 않았다. 현대 미술이 끊임없이 관습적인 시점에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투시도법을 찾는 것과 같이, SANNA는 자신들만의 프로그램 해석 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프로그램을 소거하는 공간을 창조하려고 하였다. 나는 이 과정을 ‘건축의 텍스트화 과정’이라고 하였고, 이는 프로그램을 비판적 읽기를 통해 표현된 것으로 보았다.

 다음으로 ‘텍스트의 탈위 전략’ 단계이다. 각각의 전시실을 연결하는 통로는 방향이 특별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자유로운 동선으로 구성된다. 이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동선 체계가 아닌 사용자들에게 선택적인 동선을 제공하여 자율적인 공간 경험을 유도하며, 공간 경험의 강도와 범위는 사용자의 행위에 의해 조절된다. 미술관의 내부 전시실은 총 14개의 박스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사이를 잇는 공간은 중간영역으로써 불확정적인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각 공간들을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을 하고, 비우거나 채움으로써 공간에 내재한 다양한 경험들을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에 사용자는 공간 경험의 다양한 가능성을 조절하는 공간 창조자로서의 역할이 주어지고, 공간의 의미를 독자적으로 끊임없이 생성하게 된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 이 공간은 어느 한 작가의 작품이었으며, 공간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정말 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내·외부의 경계면은 모두 곡선을 이룬 투명 유리벽으로 미술관 안과 밖에서 서로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는 건축과 환경 사이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각각의 기능을 가진 공간들 사이에 형성된 복도를 통해 이동할 때 투명 유리벽은 건물의 어느 곳에 있던지 자신의 위치를 살필 수 있다. 이 벽은 건물과 환경 사이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수평적인 공간 구성에 의한 공간 체험의 단조로움을 연속적으로 중첩된 갤러리 공간들의 다양한 스케일과 빛, 시선의 교차 등을 통하여 체험하게 하여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공공영역과 미술관 영역 사이에 위치해 평면 안에 삽입된 4개의 중정은 갤러리 내부 공간에 빛을 유입함과 동시에 두 영역 사이를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중정을 통하여 방문객들은 서로를 보고, 소통하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게 된다.


미술관의 중정들은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다른 공간에 스며들게 한다.

 

햇빛을 받아들이는 공간에서 빛을 발산하는 공간으로. 해가 사라진 미술관은 새로운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미술관이라는 고정된 프로그램에서 탈피한 21세기 미술관은, 공간과 공간 사이의 경계 역할을 담당한 복도 공간을 동등한 위계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중심 개념이 없는 미로적 동선을 통해 자유로운 공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b/b2/21st_Century_Museum_of_Contemporary_Art%2C_Kanazawa011.jpg

작가의 이전글 스타벅스_대한민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