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몇 기야?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게 대응하기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교육청은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를 책임지는 기관이다.
요즘은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수시로 바뀌고 있다. 학교에서 이에 신속하게 대응하도록 돕기 위해 단계에 맞는 대책을 교육청에서는 재빠르게 공문을 학교로 파급해야 한다.
부서에서 서무를 담당하는 나는 학교로 안내하는 문서를 수합하여 총괄하고 있는 타 부서로 전달하는 업무를 맡는다.
거리두기 3단계에서 4단계로 바뀌자, 과장님의 지시하에 일사불란하게 거리두기 4단계에 준하는 조치사항을 작성하여 총괄 부서로 메신저를 통해 문서를 보낸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와 자리에 앉아 업무를 하고 있는데 평온한 마음을 깨는 전화가 걸려온다.
"선생님, 기수가 어떻게 되세요?"
"저 ○○기인데요."
"아, 그렇구나. 근데 너무 예의가 없는 거 아니에요?"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메신저 쪽지 하나 틱 보내고 학교로 보내달라고 하면 누가 보내줍니까? 전화로 부탁해서 보내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어이가 없었다. 직장 내에 있는 메신저가 지닌 '신속성'이라는 장점을 '무례함'이라는 말로 희석해버린다.
학교에서 겪을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신속하게 지침을 전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의와 절차를 우선적으로 따진다.
"아니 선생님,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학교에 빠르게 안내를 해서 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혼란을 줄이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건 쫌 아니잖아요. 지킬 건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거지."
대화가 같은 내용으로 되풀이될 것만 같아 그냥 일단 알겠다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아니, 총괄하는 부서 담당자면 급변하는 지침에 대해 본인이 먼저 나서서 그에 대한 조치사항을 보내 달라고 과별로 안내를 해서 수합받고 학교로 파급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정작 총괄 담당자는 부서에서 청탁(청하여 부탁하는 행위)이 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기다리며 예의를 먼저 따진다는 게 과연 맞기나 한 일일까.
물론, 예의와 절차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형식보다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우선해야 하는, 급변하거나 어떤 일이 급작스레 닥쳤을 때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상황들이 분명히 있다.
억울함과 한탄이 뒤섞인 하소연을 직원들에게 하고, 집에 와서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와이프에게 풀어놓으며 분을 삭였다.
여러 세대가 같이 근무하는 교육청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과 분명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만 할까. 하루하루 생각이 많아졌다.
출근과 퇴근을 하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오래된 질문>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권위가 있는 과학자가 한국에 있는 사찰을 여행하며 고승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실은 책이다.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미황사에 있는 금강 스님이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제목을 통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본인의 생각을 전달한다.
...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런 기분이 들 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어떤 틀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죠.
혹시 '사람은 꼭 이래야 한다'라는 나만의 틀에 상대방을 억지로 맞추려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죠... 내가 나의 틀에만 맞춰 상대를 바라보고 저건 잘했다. 저건 잘못됐다. 이렇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지요.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살아오면서 겪은 어떤 경험 때문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가치관의 차이도 있을 수 있죠.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통화한 그 사람에 대해서는 목소리밖에 아는 것이 없지만, 분명 예의범절을 우선시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랐을 것이고, 예의범절을 우선시하는 상사를 만나며 직장생활을 했을 것이다. 아니면 예의를 지키지 못해 꾸중을 들었던 경험이 많았을 수도 있고.
이로 인해 예의를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형성된 것이다. 아,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나 또한 보이지 않는 나만의 틀이 있었다. 그 사람은 그랬어야 한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등등.
내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면서 내 마음이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의 틀을 버리고, 상대방을 현재의 상태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다만 한없이 넓은 마음이 필요하겠지. 집에서는 와이프도 웅덩이라고 놀리는 속좁이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한 평이라도 넓히면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들에게 그 공간을 살짝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