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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Jan 25. 2022

나의 영원한 멘토, 하루키

[글,책_겨울] 열두 번째 이야기



내 인생에는 많은 멘토가 있다.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부모님, 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 회사에서 '천사'라고 불리며 항상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고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선배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온라인상의 수많은 사람. 대학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노숙자라고 해도 당신보다 나은 점이 하나씩은 존재합니다. 그 사람들을 무시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들은 이후로 사람들에게서 장점을 먼저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렇게 장점을 보다 보면 모든 사람이 나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수많은 나의 멘토들을 언급할 수 없기에 딱 한 명만 뽑아보겠다.


이쯤 되면 나도 슬슬 지겨워지는데, 멘토를 딱 한 명 뽑으라면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지금까지 많은 글을 써왔지만, 매번 글의 주제가 하루키로 점철된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에서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 왔다.' 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이라 '멘토'에 대한 주제를 듣자마자 하루키를 떠올렸다. 하루키는 내 인생에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것은 이미 많은 글에서 써왔다. 하루키 덕에 일본에서 살 때도 일본 사람들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비행기에서 하루키 책 덕분에 비행사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하루키는 맥주를 좋아하고 재즈를 즐겨 듣는 작가이지만,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달리기나 수영을 하고,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쓰는 성실함의 대가이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걸어 다니는 시계'라고 불릴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칸트가 하는 행동을 보고 시간을 알 정도로 그는 지독한 원칙주의자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고향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의 루틴을 지키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칸트와 같이 하루키도 지독한 원칙주의자인데,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는 고향을 벗어나 외국에서 생활한 시간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대학교 때 나는 그의 에세이와 소설을 읽으며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글을 쓰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하루키의 모습만을 보고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도 자신의 생계를 지켜나가고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하루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성실함'과 '꾸준함'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하루키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달리기를 한다. 전업 작가가 되고 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했다는데 그의 성실함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달리기는 하루키의 글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의 에세이에는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쓸 정도로 달리기에 대한 사랑이 어마어마하다. 마라톤도 자주 나가고 철인 경기도 나간다. 그가 달리기에 관해 쓴 글을 보면 달리기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가 달리기에 집착하는 건 몸과 마음의 균형.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의 균형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장기전에서 몸과 마음 어느 곳에 치우친 채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둘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하루키는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쓴다. 원고지 200매로 20장. 4,000자 정도가 될 것이다. 이때 절대로 하루 분량 20장을 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때로는 글이 매우 잘 써져서 20장에서 더 쓰고 싶어도 멈춘다. 때로는 글이 너무 안 써져도 꾸역꾸역 20장을 채운다. 그가 이렇게 하는 건 장기적인 일을 할 때 '규칙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 꾸준히 책을 내는 그의 비결이 바로 이거인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철없이 그가 세계 곳곳에 사는 걸 부러워했을 당시, 그 이면에 담긴 의미를 봤다면 난 그때부터 노력했을 텐데 말이다. 사실 큰 성공을 이룬 예술가들은 다들 그들 나름의 규칙이 있고, 그것을 매일 꾸준히 해나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게 결과여서 그 숨겨진 이면을 몰랐을 뿐이다.


누군가 그랬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매일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요즘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글을 쓰면서,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아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도 든다. 이럴 때 나만을 위한 특효약이 있는데 그건 바로 '하루키 떠올리기'.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어디선가 달리고 있을, 글이 쓰이지 않아 멍하니 맥북만을 바라보다가 원고지 200매 꾸역꾸역 채워나가고 있을 하루키를 생각한다. 그러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나에게 몰두할 수 있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간에 의해 증명되는 것,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


나는 오늘도 이 문장을 떠올린다.

매일 내가 하는 일들이 시간이 쌓여 증명되는 날이 올 것이며 나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나만의 루틴을 해나갈 것이다. 하루키 덕분에 오늘도 재미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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