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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루씨 Jan 29. 2022

나의 첫 출장기 (feat. DSLR 카메라)

복수로 시작한 나의 DSLR 라이프



누구나 첫 경험은 특별하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DSLR 카메라와 함께 한 첫 출장기가 그렇다.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시작한 아르바이트를 계기로 그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했던 일은 여행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다녀온 여행지라고는 일본밖에 없었지만, 광활한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여행 정보를 모아서 여행지에 관한 소개 글을 쓰고 기획 기사 비슷한 것도 썼었다. 여행 정보를 다루는 회사이다 보니 출장도 잦았다. 1년이 조금 넘는 재직 기간 동안 3번의 출장을 다녀왔고, 대부분의 시간을 외국이나 회사에서 보냈다. 




첫 출장지는 도쿄였다.

내가 처음 다뤄보는 DLSR 카메라와 함께였다.


당시 회사의 사이트에 올라가는 내부 사진은 모두 DSLR 카메라로 찍었다. 그때까지 DSLR 카메라를 다뤄본 적이 없었던 나는, 팀장님께 DSLR 카메라로 사진 찍는 방법에 대해서 단기 속성 과외를 받았다. 효과는 미미했다. 첫 출장에다가 처음 다뤄보는 무거운 수동 카메라. 카메라는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빠질 것 같았고, 초보인 내가 다루기에는 어려웠다. 당시 호텔 사진을 찍어야 했는데, 우리 회사는 인지도가 높지 않아서 호텔에 바로 연락하는 게 어려웠다. 팀장님이 유명한 호텔 예약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에 도움을 청하여 나는 그 회사의 영업직원분과 함께 호텔을 다녔다. 그분과 처음 통화했던 때를 기억한다. 영업직이라서 그런지 목소리가 사근사근하니 좋았고 왠지 예감이 좋았다. 


출장 기간 그 분과 함께 여러 군데 호텔을 돌아다녔다. 그분은 이미 영업을 통해 호텔 직원분과 친분을 쌓은 상태였다.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하고 근황 이야기며 사는 이야기며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었던 데다가 말수도 별로 없었던 나는 군말 없이 옆에서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찍었다. 나의 임무는 호텔 곳곳의 사진 찍어오고 찍은 사진으로 자세한 리뷰를 쓰는 것이었다. 호텔 로비나 외부 사진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문제는 객실 사진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비즈니스호텔은 객실에 빛이 잘 안 들어오는 곳이 많아서 일일이 불을 켜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그것부터 난관이었다. 불을 켜고 사진을 찍는다고 해고 그동안 호텔 직원분과 영업사원분은 이미 다른 객실로 가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서둘러서 사진을 찍었는데, 카메라를 다루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혼자 뒤처졌고, 자신감은 한없이 사라져 갔다. 그러다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었다.


아휴, 저분은 사진을 잘 못 찍네요. 전에 사진 찍어주신 분이 훨씬 나았는데



그분은 이전에 팀장님과 함께 출장을 갔던 적이 있고, 팀장님의 사진 실력을 익히 알고 계셨던 분이었다. 감정이 확 상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기에 찍소리도 못하고 상한 마음을 붙잡은 채 사진만 찍어댔다. 그날따라 사진을 못 찍는 게 왜 이리 서러운지, 그리고 마냥 좋다고 생각했던 그분은 나를 마치 자기 아랫사람 대하듯이 대했고, 나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20대의 호기로움은 다 어디 갔는지. 그날 낮 동안의 스케줄을 마치고 숙박 중인 호텔로 돌아와 객실 문을 닫고 나자 힘이 탁 풀렸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서러움에 복받쳐 한참을 울었다. 나의 상한 마음을 전달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만 같아 남은 일정 동안 '참을 인'을 계속 마음에 새기며 그분과 동행하였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분이 풀리지 않아 팀장님께 이야기했고 팀장님은 내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더니 사진 잘 찍기만 했는데 신경 쓰지 말라며 위로해줬다. 내가 봐도 못 찍은 사진들이라 쓸 만한 사진이 별로 없었지만, 팀장님의 그 이야기에 마음속에 쌓였던 억울함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분이 재직 중인 회사 사이트는 다시는 이용하지 말아야지'라고 소심한 복수를 선언하기도 했다. 그분은 자신의 꿈이 회사의 CEO가 되는 거라고 했다. 이름과 회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작고 마른 체형에 안경을 쓴 단발머리. 당시 나보다 10살은 족히 많아 보였는데 그 뒤로 10년 넘게 지난 지금, 내가 아는 CEO 중에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이 없는 걸 보니 꿈을 이루진 못하셨나 보다. 조금은 쌤통이다.


그 뒤로 사진에 오기가 생겨 내 돈을 들여 DSLR 카메라를 샀다. 카메라 조작법을 익히고 사진에 대한 책도 보고 실제 사진을 여러 번 찍으면서 사진에 대한 감을 서서히 익혀 나갔다. 사진의 수평선 맞추는 법, 구도 생각하는 법 등 다양한 기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첫 출장 이후로 계속 출장을 다니면서 하루에도 천 장은 족히 넘는 사진을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 실력도 늘어만 갔다. 그렇게 쌓은 실력으로 일본에서도 사진과 글로 먹고살았으니 그래도 그분 덕(?)에 잘 먹고 잘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어디선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혹시 아직도 그렇게 사람들을 대한다면 이 한마디만 해주고 싶다.



세상에 당신이 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생을 똑바로 보고 살아가세요.



이렇게 조금이나마 그때의 억울함을 풀어본다.

소소한 복수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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