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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Sep 10. 2021

고흐를 사랑해서 미치지 않기로 했다.

 열일곱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서 처음으로 고흐의 자화상을 보았다. 자신의 귀를 자른 험궃게 생긴 미치광이 화가의 작품을 본다는 게 당시에는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그때의 나에게는 옷 한 벌, 버거 하나가 더 중요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서야 그를 알고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비운의 예술가였으며, 평생을 외로움에 파묻혀 살다 끝내 외로움에 잡아먹힌 어린 양이었다. 버림받고 소외된 이들을 사랑했으나, 사랑에 있어 그는 주는데도 받는데도 미숙한 소년이었다. 화가 공동체를 꿈꿨지만 철저히 혼자였고,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자라 부르며 손가락질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닿을 수 없을지 모를 꿈에 미치지 않기로. 고흐를 사랑해서 미치지 않기로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세상은 우리에게 미치라고 닦달하였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며 떠들어대었고 그런 책들이 서점의 매대를 장악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미친 남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끝났을까. 그는 가장 미쳐서 가장 불행했다. 언젠가 카페에서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 위해 고흐는 많은 것을 쌓고 그 위를 밟고 올라섰다. 가족과 고갱, 건강과 언젠가 따스하게 돌아볼 수 있는 추억 그리고 행복까지 자신의 발 밑에 두었다. 그림이 호평을 받으며 그 꿈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지만 그만큼 더 쉽게 휘청거렸다. 그리고 결국 추락하였다. 방아쇠를 당겨 다자이 오사무와 넬리 아르캉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고흐의 그림과 편지는 언제까지나 우리들에게 사랑받겠지만 그 마음은 그에게 닿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었을까. 총알이 자신의 몸뚱아리를 관통하고 나서야 이토록 사랑받을 줄 고흐는 알고 있었을까. 그래도 계속 붓을 들었을까. 나는 그러지 못 했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고흐처럼 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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