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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드류 May 08. 2022

내가 지은 적 없는 내 이름을 사랑하기까지

그레타 거윅, 시얼샤 로넌, 티모시 살라메 <레이디 버드> 후기/리뷰

<레이디 버드> (2018)


좋은 것보다 싫은 게 더 많은 크리스틴은 부모님이 주신 이름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자기에게 지어준다. 고향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가고 싶은 그녀지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양말 한 켤레가 고작인 집안 사정에 쉽지가 않다. 높이 날 것처럼 우리는 키웠지만 비상의 순간 날개를 꺾어 버리는 부모의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레이디 버드>는 "너도 이제 다 컸으니까"라는 말로 어른스러운 행동을 요구받지만 여전히 아이 취급을 받는 열여덟 소녀의 이야기다. 동시에 감독 그레타 거윅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나와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레이디 버드> (2018)


나와 닮은 것들을 우리는 더 사랑하고 미워한다. 유독 부자지간과 모녀지간이 쉽지 않은 이유는 부모가 자식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나처럼은 살지 않길 바라며 하는 말은 아이의 가슴에 박힌다. 뉴욕행을 반대하며 엄마 매리언은 너 하나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냐며 딸에게 잔소리한다. 딸은 지지 않고 그 돈 다 갚자마자 연을 끊을 거라 말한다. 엄마는 딸이 밤낮없이 정신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내 딸이 언제나 최고의 모습이길 기대한다. 딸은 고작 그런 일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 묻는다. 엄마는 평범하지만 나는 특별하니까


<레이디 버드> (2018)


어른이 된다는 건 평범함을 깨닫는 일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특별하다고 믿었을 때, 난생처음 가져본 꿈의 능동적 태도를 알게 되었을 때 아무도 나를 믿지 않았다. 매일같이 싸웠고 우리 가족 사이에는 묘한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집에서 나만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졌다. 평범하게 살기도 힘든 세상임을 날이 갈수록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공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한 우리 아빠는 적어도 내 새끼가 나처럼은 살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 재미없는 일만 가득한 아빠의 인생을 닮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적어도 아버지처럼 이라도 살고 싶다. 부모님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나를 키우셨다. 우리 가족은 나의 행복을 위해 산다. 가끔 그래서 우리는 더 불행했다.


<레이디 버드> (2018)


뉴욕의 대학교에 입학한 레이디 버드는 마침내 깨닫는다. 지겨울 만큼 반복되던 고향이 풍경이 학교 앞에 내리기 창피했던 아빠의 차가 얼마가 따스했는지. 엄마는 처음인 엄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시작한다.


두 분이 지어주신 제 이름 참 예뻐요.
엄마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어?
난 그랬어. 그 얘길 하고 싶었어
평생 지나다니던 길, 가게랑 건물들이 너무 정겨웠어
사랑해. 고마워요.


내가 정한 적 없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처럼 태어나면서 어쩔 수 없이 정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중 대부분이 쉽게 바꿀 수 없다. 불변에 가까운 것들을 바꾸고 받아들이며 우리는 성장한다. 내 이름을 사랑하기 시작할 때 어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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