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사에서 신입사원 입문교육 프로그램과 신임 임원 워크숍에 디자인씽킹을 의뢰해 왔다. 직장인으로써 첫 출발을 하는 신입사원들과 조직의 임원에 오른 분들을 동일한 주제로 만나는 것이 흥미로웠다. 비대면 실시간 강의로 진행되는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서 스튜디오가 있는 고객사의 연수원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P사처럼 좋은 기업에 취직한 분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특히 그들의 부모님이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까?’ 그러고보니 내가 이들에게 강의를 하는게 아니라, 부모로써 어떻게 자녀를 키우면 이렇게 반듯하게 자라는지 신입사원의 부모님들께 한 수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웹엑스를 통해 실시간 강의와 소그룹 토론.실습으로 진행되는 다소 꽉 찬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신입사원들은 디자인씽킹을 스폰지처럼 빨아들였다. 특히 중간중간 채팅창을 통해서 즉각즉각 질문과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오프라인에서 보다 온라인 교육에서 더 활발하게 자기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이 세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가끔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디자인씽킹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실습 과제를 선정하는 단계부터 “ 0000를 통한 000 제공”과 같이 답을 정해 놓고 시작하려는 분들을 만난다. 아무리 피드백을 해줘도, 공감인터뷰를 할 때 질문도 온통 000가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던지고, 분석 툴을 이용해서 고객의 핵심문제를 정의해도, 솔루션을 브레인스토밍을 해도 결국은 ‘000제공’을 손에 들고 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고객 입장에서 피드백을 받는 진실의 순간이 되어서야 팀이 고객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제를 정의하기 보다는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까?
디자인씽킹에서 진짜 문제를 찾는 것은 ‘공감하기’와 ‘문제 정의하기’ 단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팀의 아이디어를 프로토타입으로 만들어서 고객에게 테스트하는 단계까지 이어진다. 때로는 고객도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프로토타입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서야 자신의 숨겨져 있던 니즈를 표현하는 것이다.
임원들을 위한 디자인씽킹 프로그램은 웨비나를 통해서 디자인씽킹 개념을 전달한 뒤 사전과제를 제시하였고, 일주일 후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오프라인으로 이어졌다. 서로 넓은 간격을 두고 앉은 데다가 투명한 칸막이까지 있어서 팀 토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더 신임 임원들은 디자인씽킹 실습 교육에 열중했다. 신임 임원으로써 새로 맡은 조직의 미션은 무엇인지, 올해 가장 중요한 중점 과제는 무엇인지, 그 과제의 고객은 누구인지 등을 핵심 질문으로 하여 과정이 진행되었다. 몸 담았던 조직에서 승진을 했건, 새롭게 조직의 수장으로 임원이 되었건 기존 관념에 빠지지 않고 고객에 집중하는 사고를 하는 것을 교육의 핵심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변화가 커지고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고객에 더 밀착해서 그림자처럼 관찰하고 고객의 소리를 들으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P사에서는 ‘디자인적 사고’로 정의하고 처음 P사에 입문하는 신입사원들과 조직을 이끌 임원들께 제시하고자 했다.
사실 디자인적 사고, 디자인씽킹의 개념은 단순하다. 지금 자신의 주변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나 솔루션을 하나 찾아서 관찰해보며 ‘이것을 사용하면서 디자인 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점’을 기록해 보자. ‘심플한 디자인, 설명서 없이도 쓸 수 있는 직관적인 기능, 핵심기능에 충실함’ 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제품과 솔루션에는 이러한 디자이너의 감각과 노력이 담겨있다. 디자인씽킹은 우리의 업무에서, 우리 고객을 위한 솔루션과 프로세스도 이렇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 고객이 외부 고객일 수도, 내부의 동료 일수도 있다. 마치 디자이너가 훌륭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자들을 관찰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며 솔루션을 다듬듯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디자이너처럼 하는 것이 디자인씽킹의 핵심이다.
L그룹의 애자일 경영을 이끌고 있는 미래혁신단장님은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서 구성원의 행동의 변화를 꾀하고,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 마인드셋의 변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고객이 누구인지,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고객중심 사고’도 마찬가지다. 구호나 모호한 교육이 아닌, 고객의 힘든 점을 공감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디자인씽킹을 구성원들이 일하는 방식이 되게 함으로써, 고객중심 마인드셋을 구성원 스스로 키워가도록 도울 수 있다.
또다른 고객사인 K사와는 임원 후보진들이 3개월간 수행하는 디자인씽킹 액션러닝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었다. 고객을 위한 플랫폼 솔루션을 제안하는 쉽지 않은 미션이다. 본격적인 과제 착수 이전에 임원 후보진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직접 경험해 보면서, 왠만한 것들은 모두 플랫폼으로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다.
보고서가 아닌 Real World로 나아가 Real Problem을 찾아 새로운 솔루션을 제시하는 디자인씽킹 액션러닝 여정의 끝에서 K사 임원 후보진들이 세상에 어떤 아이디어를 내 놓을지, 또 어떤 새로운 배움을 경험할지 기대가 크다.
채홍미 대표, 인피플 컨설팅 chaehongmi@inpeopl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