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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민은 해결될 수 있을까

새로운 규칙, 다른 서울 #28_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장재열

'나'에서 '우리'로,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 


이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인사담당 직무를 맡은 이후로 제 삶은 급격하게 변했어요. 거기서의 경험이 제게 굉장한 충격을 줬거든요. 100: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채용구조, 탈락한 청년들은 울며 전화해서 “제발 탈락 사유만이라도 알려달라” 부탁하더군요. 제 멘탈이 버티질 못했어요. 업무 끝에 우울증을 얻었고, 결국 퇴사하게 되었죠.  


회사를 그만두고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의 제안을 받아 자문자답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그 글쓰기 블로그가 지금 삶의 시작이었죠.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으로 쓰기 시작한 글들이 다른 많은 청년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더라고요. 급기야 '상담 블로그'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사면서 사연 제보까지 속출했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청년, 좋은 일자리를 얻었지만 거기서 튕겨져 나온 청년. 그리고 그들이 제 블로그에 공감해 찾아왔듯 저도 제보 속 청년들에게서 '언젠가의 내 모습'을 느끼게 됐지요.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메일 펜팔을 나누었는데 그게 지금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의 시작이었어요.  



상담활동은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로서의 활동이기도 


상담활동, 마음건강 활동이라고 하면 보통 개인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치유자의 이미지를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그 또한 마음건강 활동의 일부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지점의 마음건강 활동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사회를 바라보는 렌즈'로서의 활동. 


지난 7년간 약 3만 7천여명의 청년들이 저희 상담소를 찾아왔어요. 이 수많은 청년들을 만나 이들이 어떤 마음의 아픔을 겪고 있는지 들으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 하나 있죠. 이들이 가진 여러 고민과 문제들이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라는 것. 우리사회의 문제 말이에요.  


그들이 아픈 이유를 잘 살펴보면, 우리사회 전반의 사회적 문제들과 맞닿아 있을 때가 많더라고요. 일자리, 주거, 평등, 환경, 교육 등. 사회의 각 분야가 직면한 문제 상황은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모순을 겪게 하고, 바로 거기서 마음의 아픔이 생기죠.  


가령 커밍아웃을 고민하는 트렌스젠더 친구가 있었어요. 이분의 아픔이 오로지 그 개인의 아픔이었을까요?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조차 고민하게 된 이유는, 결국 평등하지 못한 사회 분위기 때문일텐데요. 게다가 이런 '문제 상황'은 한 사람의 삶에서 한 번으로 끝나지도 않죠. 이 친구는 커밍아웃 이슈를 해결한 이후에도 저희를 몇 번이고 찾아왔어요. 성전환 후 마주하게 된 각종 문제 상황들이 다음 고민으로 자리 잡았죠. 채용시장에서의 불이익, 직장 내에서의 불평등, 퇴사 등. 이미 산적해있던 사회구조적 문제들을 한 개인이 자신의 생애주기에 따라 마주하게 되는 거예요. 근본적인 사회 부조리가 남아 있으니까.  


마음건강,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 


누군가 지금 청년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어요. “청년들의 고민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구조적 모순이 낳은 파편이다”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야겠죠. 구조적인 문제를 당장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을 거에요. 저희가 2017년부터 '청년정책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희는 청년들이 겪는 사회문제의 '로우 데이터(Raw Data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를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니까요. 저희가 쌓아온 세밀한 데이터들(청년들이 마주한 문제들)을 정책을 다루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죠.  


정책을 통한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은 다소 긴 호흡의 여정이겠죠. 그런데, 그렇다면 지금 당장 마음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들을 위해 당장 필요한 일도 있어요. '누구나 말하고 들어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죠. 사회의 문제로 상처받거나 주저앉은 이들을,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말이에요.  



활동가 17명 규모인 저희 상담소에 3만명이 넘는 인원이 찾아왔어요. 이건 그만큼 청년들이 마음 놓고 찾아갈 수 있는 '문턱 낮은 마음건강 공간'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질환자 중심의 센터나 의료기관이 대다수인 상황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이 '중증 정신질환'을 겪기 전까지 마음을 케어받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운게 현실이죠. 사회가 사회문제로 생기는 '마음의 병'을 방치하고 있는 거예요.  


공공영역에서 '문턱 낮은 마음건강 공간'을 마련해야 할 이유에요. 민간에서 비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마음건강 공간을 만드는 것엔 수요와 지속성에 한계가 있죠. 공공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경청하고 함께 원인을 분석하는 것 


'힐링' 담론이 유행하고 청년들을 위한 멘토링 강연들이 등장하면서 우리사회에는 훌륭한 '치유자'들도 많아졌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마음건강'이 이루어질 순 없다고 봐요. 유튜브, 책, 강연 등 다양한 형태의 멘토링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방식들은 모두 개인의 개별성을 감지하기는 힘들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요.  


말해주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가 있어요. 그렇다면 대상을 직접 들여다보고, 거기서 사회적인 문제가 감지된다면 그에 대한 변화를 함께 추구해야겠죠. 저희를 비롯한 마음건강 공간들이 잊지 말아야 할 역할이에요. 이렇게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나갈 '경청자'들이 많아지는 것. 그게 지금 당장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마음건강 인프라 아닐까요? 



기획·편집_청년자치정부준비단

인터뷰·글_한예섭

사진_김재기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들로 가득하다. 1980·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준, 과정, 결과들이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여기 관성을 넘어 다른 시각으로, 기성세대가 이끄는 룰에서 벗어나 보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나가는 ‘빌더’들이 있다. 우리의 삶과 세상에 크고 작은 균열을 가져올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핑과 위스키만으론 바뀌지 않는 당신의 삶에, 어딘가 색다른 균열이 생기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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