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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풀어야 할 숙제, 마음건강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건강분과 김요섭

모든 사람이 조금씩은 마음이 아파요. 가족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노동착취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이겠죠. 결국 본질적인 것은 이러한 ‘사회문제’인데, 그걸 지금 당장 해결하지는 못하잖아요. 사회가 변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사회는 결국 변하겠지만, 그럼 그 시간 동안 아픈 사람들은 어쩌죠? 변화하는 시간 동안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이 ‘버틸 힘’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지?     

제가 학교에 다니던 중에 집안이 경제적으로 휘청이는 상황이 되었어요. 영화과를 다니고 있었는데, 졸업해봤자 영화 쪽으로 가면 돈이 안 되니까 바로 일을 시작했죠. 

처음 일은 뮤직비디오 연출부에서의 알바였어요. 뮤직비디오 한편을 찍으려면, 9시에 출근에서 다음 날 1시쯤 일이 끝나요. 쉬지 않고 대략 30시간을 일하는 거예요. 거기서 뮤직비디오를 80개 정도 찍었는데, 이런 생활을 반복하니까 신물이 나더라고요. 일자리를 옮겼죠. 마침 뮤지컬 마케팅 쪽에 자리가 나서 거기에 발을 디뎠어요. 근데 막상 거기 가보니... 두 달 동안 월급이 안 나오더군요. 약 한 달 동안 라면만 먹고 생활을 했는데, 그래도 더 이상 버틸 돈이 없더라고요. 그때 그대로 도망쳤어요.      

일은 계속 해야죠. 3일 정도 쉬고 바로 다른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 시기쯤엔 잠을 못자겠더라고요. ‘내가 이 상황에서 뭘 해야 하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7시에 누워도 다음날 7시까지 눈뜬 상태로 깨어있는 거예요. 당장 다음날 일을 해야 하는데 잠을 못 자니까 몸이 말을 안 듣더군요.      

고민 끝에 이 문제를 가장 빠르고, 가장 경제적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요. 정신과 병원을 찾아갔죠. 상담은 아니었어요. 상담은 한 회당 8만원씩이고, 효과를 보기 위해서 100회 정도 해야 하더라고요. 그럴 돈이 없었어요. 그냥 병원에 가서 ‘잠이 안 온다. 약을 달라’고 했고, 그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지금이 제일 행복한 이유는     

이런 일련의 시간을 보내오다보니 일상에서의 ‘관계’도 거의 없어졌어요. 학교도 그만뒀고, 자주 이직을 하다 보니까 직장에서도 만날 사람이 별로 없었지요. 마음 건강이 좋기는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때 만난 게 ‘어슬렁반상회’였어요.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커뮤니티 활동이었죠. ‘커뮤니티 활동이 마음 건강과 관련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번 해보고 판단해도 되겠다 싶어서 활동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관련이 있더라고요. 주말을 같이 지낼만한, 쉴 때 같이 뭔가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어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게 바뀌었죠. 친구의 존재가 마음의 위로가 됐어요. 제가 원래 말을 잘 안 하는 편인데, 마음이 힘들 때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 하다 보면 어느새 뭔가 풀려있는 나를 보게 됐지요.      

지금도 그 친구들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고 있어요. 흔히 친구 이야기를 할 때 고등학교 학창 시절이 참 행복하다고들 하던데, 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앞으로 더 행복할 것 같고요. 제가 느끼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 ‘버틸 힘’을 지원해주자 말하는 이유예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건강을 위해     

물론 어슬렁반상회라는 하나의 활동만이 제 마음 건강을 회복시켜준 것은 아니에요. 특히 회복력을 갖추는 데는 꾸준히 약을 먹은 것도 큰 도움이 됐지요. 마음 건강이 약한 사람들에게 병원은 꼭 필요한, 꼭 가야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을 때도 많죠.     

여전히 좋지 않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주변의 인식들도 그렇고, 비용 문제도 있어요. 사회적으로 볼 때 소득수준이 높지 않은 이들이 마음건강 악화에 더 취약한데, 동시에 소득수준이 높지 않다는 건 필요할 때 상담을 받을 수가 없다는 얘기잖아요. 신경정신과에 대한 사회적 관점, 인식부터 바뀔 필요가 있죠. 마음 건강 치료의 전반적인 ‘문턱’이 낮아져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작년 어슬렁반상회를 진행하셨던 분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고시원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있는 참여자분의 이야기를 하면서, 저에게 여러 가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도 원래 고시원에 살았었거든요.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드렸는데, 다른 말은 해줄 수가 없었어요. 당사자분은 지금 당장이 너무 괴로우실 텐데, 그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할 수 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저는 ‘운이 좋아서’ 상황이 나아진 것뿐인걸요,      

세상에 이런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을 말해줘 해요. 제가 지금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유죠.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전문가와 협의하고, 관과 협의하고... 지금 당장 좋은 정책이 떠오르지 않아도, 이 과정을 꾸준히 지속하다 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들의 ‘마음 건강’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그 중 일부가 될 수 있겠죠.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당사자 청년들이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같이 목소리를 내면 좋겠어요. 소수의, 무시되기 쉬웠던 의견들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은 정책으로 이어지겠죠. 내년에는 더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길 바라요.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나아진 저 자신을 볼 수 있길 바라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단비/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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