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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좋은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도시주거분과 김지선

왜 ‘주거’를 의제화해야 할까?     


저는 스무 살 때 학교를 다니려 서울에 왔어요. 그 때 제가 혼자서 집을 구했는데, 보증금이 최대한 싸고 그러면서도 월세가 너무 비싸지 않은 곳을 찾다보니 결국 반지하에서 살게 됐죠. 반지하란 공간이 그렇게 열악할 줄은 몰랐어요.      

4개월 정도 살았을 때 내가 집을 정말 잘 못 선택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집에 곰팡이가 슬고, 사람들 발소리는 끝없이 들리고... 주거환경이 너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다음 살았던 곳은 고시원인데, 역시 보증금 없고 이동이 편한 곳을 찾다보니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살았었죠.      

그 시절엔 저도 모르게 스스로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젊으니까, 청년이니까 그냥  임시로 사는 거야.’ ‘지금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잠만 자면 돼.’ 이런 생각들. 그런데 이 생각들이 정말 내 안의 욕구였을까요? 아니죠. 오히려 이 사회가 우리에게 오랫동안 강요해온 생각들이잖아요. 그것도 모르고 소위 말하는 모범생 라이프를 산거죠.      

이런 문제들에 눈을 뜨게 되면서, 주거 문제 전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특히 청년 주거문제는 당사자인 나의 문제였으니까요. 제 개인적 경험에 비춰 청년들은 어디서 살 수 있지? 하고 질문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요.           




청년주거, 무엇이 가장 문제일까?     


UN감독관이 우리나라에 와서 이야기했던 것이, “최소한의 주거권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우리나라에 ‘주거권’이란 게 있긴 한가 싶은 거죠. 실제로 간혹 ‘주거권’이 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종종 있잖아요.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권리가 되는데. 애초에 주거권이란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하진 않은 거죠.     

주거권이란 게 어려운 건 아니에요. 보통 ‘의식주’라고 하잖아요. 먹는 거나 입는 것들은 그 재질이나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쓰죠. 특히 먹거리는 인증도 엄청 심하고요. 그런데 ‘주’는? 살아가면서 기본적인 문제가 의, 식, 주인데. 그 중 ‘주’에 해당하는 ‘집’은 건강한지, 안전한지도 직접 살아보기 전엔 잘 몰라요. 소비자 가격도 없지요.     기본이 안 되었단 생각이에요. 반지하나 고시원은 사실 정말 살 수 없는, 살아서는 안 되는 곳이잖아요. 시민 개인이 안전이나 건강에 신경 쓰지 않고, 마치 과거의 저처럼 ‘집은 그냥 공간만 있으면 살아도 돼’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죠. 나아가서는 우리가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어요. 가령 과자를 하나 사도 가격이 적혀있고 표준가가 생기는데, 왜 우리가 사는 집에는 그런 가격이 없지? 하는 거죠.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주거불안’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계약과정에서부터 느끼는 불안, 혹은 거주하면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 경제적 불안, 물리적 불안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개념이에요. 거기에 더해 내가 이 ‘다음’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까지. 이렇게 총 세 가지 층위로 주거불안을 설명할 수 있는데요. 결국 이 주거불안적인 요소가 완화되고 해소된 형태가 ‘주거권’의 보장이 아닐까 생각해요. 건강한 환경에서만이 불안 없이 살 수 있잖아요.      

내가 이 집을 안심하며 계약할 수 있는 것. 살면서는 쾌적하게,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범죄에 대한 불안 없이 살고, 경제적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월세를 내며 사는 것. 마지막으로는 내가 이동하고 싶을 때 주거형태를 바꿀 수 있는 것. 적극적으로 주거권이 보장된다면, 최소 이 정도는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렸을 때 엄마가 ‘이런 건 먹으면 안돼’ ‘이건 몸에 안 좋아’ 이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근데 ‘이런 집은 위험한 집이야’ 이런 이야기는 안 하죠. 우리가 주거권에 대해서 교육을 많이 안 받고 있다는 얘기에요. 제가 반지하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저희 부모님도 진짜 몰랐던 거예요. 반지하가 그런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거예요. 고시원도 마찬가지고. 누군가 거기 살아보기 전엔 그 실체가 숨겨져 있는 거죠. 그 숨겨진 이야기를 알리는 것부터

도 시작할 수 있다고 봐요.          



당사자로서 목소리 내기     


‘서울청년시민회의’에 참여하면서, 제가 스무 살 때부터 느낀 주거 문제를 다시 보게 됐어요. 특히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가 내는 목소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가령 문제를 드러내는 목소리 말이죠. 반지하와 고시원이 어떤 곳이, 더 나은 공간이 필요하다는 당사자의 목소리.     

다만, 저 스스로 ‘내가 바로 지금 주거문제를 겪고 있는 청년‘이라고 말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거문제는 굉장히 다양하죠.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너 정도면 주거문제 없는 거 아냐?” 라고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의 줄임말)에 사는 게 바로 주거문제의 핵심이다, 그 당사자가 나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지요. 그저 제가 과거에 겪어왔던 문제들, 비슷한 문제들, 혹은 또 다른 문제들을 내 친구들이 여전히 겪고 있다고, 그리고 나 역시 여전히 어떤 주거불안을 가지고 있다고. 다양한 문제 중 한 명의 당사자로서 말하고 싶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시도/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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