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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문화민주화’가 필요한 이유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문화분과 정한나

예술로 ‘사회적 활동’하기     

지금은 스스로를 ‘예술하는 기획자’라고 소개하지만 처음부터 예술을 생업으로 삼진 않았어요.  첫 사회생활은 오히려 정치판에서 시작했어요. 학부생 때 학생회장 등의 경험으로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첫 사회생활은 정치판에서 시작했어요. 정당과 정치 컨설팅회사를 거쳐서 의원실에 들어가게 됐죠.      

그때는 국회의 상의하달식 구조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꾸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일을 하면서 한계를 느꼈죠. 기대만큼 좋은 제도가 만들어지기도 힘들고, 만들어졌다고 해도 국회를 통과하는 건 더 힘들고, 그것이 사회에 직접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너무나 지난해서, 결국 정치 효능감이 떨어졌어요. 와중에 업무 스트레스는 너무 과중하고.      

이렇게 나를 소모하느니 차라리 예술 하면서 살자 싶었죠. 내가 만든 작품으로 내 옆의 한 사람이라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그래서 그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변화한다면, 그게 훨씬 더 가치 있을 수 있겠다, 해서요. 그렇게 국회를 관두고 예술 하기로 맘먹은 지 이제 5년이네요. 지금은 말씀드린 대로 ‘예술하는 기획자’, 혹은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라는 직업 정체성을 가지고 일하고 있죠.     



기획자, 디자이너라는 말 그대로 저의 예술 작업은 주로 동료 예술가들과 모여서, 소통구조를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요. 퍼포먼스, 전시와 관객참여가 합쳐진 프로젝트형 작업을 많이 하죠. 사실, ‘모여서 소통하는 일’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잖아요. 우리가 공교육 안에서 민주적인 합의 방식을 얼마나 배워 봤겠어요. 그때마다 ‘기획’과 ‘디자인’이 일종의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는 거죠.      

그렇게 소통 지향적이면서, 동시에 사회 참여적인 예술을 저는 선호해요. 한 사람의 삶이라도 바꾸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선 그 둘 모두가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젠더, 노동, 유니버설 디자인(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에도 상관없이 다양한 사용자를 포괄하는 디자인), 환경 같은 미래적 담론을 꾸준히 따라가려 하죠.      

사회 참여적인 예술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요.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구체적인 사회이슈를 담아내거나, 본인이 예술가인 동시에 시민으로서 사회운동을 펼치는 방식이 있지요. 조금 결이 다르지만,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 저의 활동은 후자에 가까운 사회적 활동이죠.           



문화 민주화, 모두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경제 민주화’ 라는 말은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빈부격차를 보다 평등하게 조정하자는 개념이죠. 우리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는 노동자부터 대통령까지, 모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중요한 화두잖아요? 그런데 ‘문화 민주화’란 개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생산하는 입장에서, 콘텐츠 향유의 불평등성에 대해서 항상 고민했어요. 이렇게 많은 콘텐츠가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그걸 즐기지 못할까? 왜 어떤 콘텐츠들은 저 먼 곳까지 가 닿질 못할까? 물리적 거리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요.     

답은 명확해요. 모든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충분히 향유하려면 모든 사람들에게 그럴만한 돈과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죠. 해서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길 원한다면, 누구나 언제든 예술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기반이 갖춰져야 한다고 봐요.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문화’ 민주화냐? 되물으실 수도 있어요. 한국사회처럼 남아있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예술을 어떤 유별난 것으로 취급하기 쉽죠. 그런데 사실 예술 참 별 거 아니잖아요. 예술이 그저 고요하게 일상에 스며들 수만 있다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매개가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예술이 잘 퍼지지 못할까요? 사회가 사람들을 자꾸 팍팍하게 만들고, 삶이 팍팍해지면 사람들은 예술에서 멀어져요. 예술가들은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가 되고, 예술은 더욱 유별난 어떤 것이 되어버리죠. 악순환이에요. 하지만 이 경직된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촉매도, 혹은 보수적인 분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자극도 또한 결국 ‘예술’이라고 저는 믿어요.      

예술이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우선 예술생태계를 더욱 단단히 만들어야겠죠. 단단한 환경이 갖춰질 때 창작자들은 좋은 콘텐츠를 열심히 생산해낼 거예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걸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탄탄히 하고, 예술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야죠. 그것들이 충분히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악순환에서 벗어나 ‘선순환’에 접어들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채경/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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