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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잘 ‘나온’ 청년으로 살기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문화분과 정해민


남들 다 가는 데니까 큰 문제의식 없이 대학을 갔어요. 9년 전이지만 아직도 등록금이 기억나네요. 오백만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을 거슬러줬어요. 한 학기, 그러니까 3개월 치 등록금이 사백구십팔만 팔천 원. 딱 두 학기 마치고 자퇴를 했어요.      

비싼 학비에 비해서 얻어갈 수 있는 배움이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작곡과에 들어갔었는데, 거기엔 정말 실력 있는 천재들이 많았었어요. 벌써 소속사와 계약해서 프로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에 비해서 저는 아주 초심자였죠.  그래서 결정 자체는 어렵지 않았어요. 부모님과 차분히 대화를 나눴고, 학교에 돌아가지 않는 선택을 했어요. 망설임이나 미련은 없었고 지금도 전혀 후회 안 하죠.         


  


대학 ‘나온’ 청년으로 산다는 건     


스물셋에서 스물여섯 살 정도까지, 대다수의 남성들이 대학을 다닐 시기에 저는 그 ‘대다수’에 포함 되어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소개를 하면 매번 같은 질문들이 따라오곤 했지요. ‘대학을 안 다닌다고?’ “대학교 몇 학년 다니고 있어요.”라고 말했다면 다른 질문은 안 받았겠죠. 그냥 그걸로 끝. 다른 해명이 필요 없게 돼요. 대학은 너무나 당연한 거고, 사람들은 당연한 걸 질문하지 않으니까요.      

반면 저처럼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면 왜 안 다니는지를 매번 설명해야 해요.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사회적 분위기에 압박을 많이 받았어요. “다른 애들 학교 다닐 땐데. 넌 뭐 하는 애야?” 아예 이런 이미지가 생겨버렸거든요. 왜, 명절에 듣기 싫은 질문들이 있잖아요. “취직은 했어? 결혼은 언제 하니?” 등. 저는 명절에 친척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언제나 그런 질문들을 받았어요.     

누구를 만나든, 모두가 저에 대해 묻고 싶어 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대학을 가지 않은’ 저에게. 순수하게 저의 선택이 궁금해서 묻는 것도 아니었죠. 오히려 사회에서 어긋난 존재를 보는 식으로 저를 본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어요.     

자퇴에 어떤 후회도 없었지만, 이런 부정적인 시선들은 제 스스로 제 모습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죠. 당장 학생이 아니기에 친한 친구에게 고민을 공유하기도 힘들었고요. 자퇴 이후를 힘들었던 시기라고 종종 표현하는데, 다른 게 아니라 그런 이유였어요.           



대학, 잘 ‘나온’ 청년으로 살기     


뜬금없지만 돌이켜보면 가수가 꿈이던 시절이 있었어요. 가수가 되긴 아무래도 힘들겠다는 생각에, 가수 뒤에서 열심히 곡을 쓰는 작곡가라면 괜찮겠다! 하고 작곡과에 간 거였는데. 학과 내엔 이미 저보다 훨씬 앞서 있는 애들이 많았다고 했잖아요. 그 마저도 제 길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데 방황하던 제가 진로를 서서히 밟아 나가게 된 건, 오히려 학교를 나온 뒤였어요. 스튜디오에서 음향 공부를 하고, 실습도 해보고, 동시에 축제 자원봉사나 기획단, 공연 스태프 일을 꾸준히 했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음향과 공연 기획, 축제 기획까지 포괄하는 일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아주 운이 좋게도 기회를 잘 만나 취직까지 됐죠. 이후로는 저의 상태를 해명하는데 힘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심리적인 안정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어요.     

틈틈이 사이버대학교 강의를 수강하며 학사도 취득하긴 했지만, 만약 대학을 계속 다녔더라면? 솔직히 지금 와서 제 선택에 후회가 없기 때문에 그런 가정도 거의 해보지 않았어요. 외려 대학 바깥의 저는 정말 다양한 경험들을 했는데, 대학 안에서는 그러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작곡에 대한 전문성을 얻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진로의 폭이 좁아지는 결과가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서울청년시민회의에 들어온 건 호기심 때문이었어요. “서울시가 이제 시민의 결재를 받습니다!” 청년시민회의 시민위원을 모집하던 공고에 이런 말이 있었거든요. 어, 진짜? 대학을 자퇴한 사람으로 살면서, 물론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수직적인 소통 구조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이곳이라면 좀 다를까? 하는 호기심에 제 관심분야인 문화예술분과로 들어오게 됐죠.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는데, 소중한 시간을 회의에 쏟아 붓고 정책을 만들고 하는 사람들의 열정에 저도 감화됐지요. 특히 청년들끼리 만들어가는 수평적인 분위기의 회의가 언제나 즐거웠어요. 보통의 수직적인 관계에선, 주로 기성세대 어른들이 주로 청년, 청소년들에게 “요즘 애들은-.”하고 많이들 말하잖아요. 개성 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어감이 더 강하죠. 저도 ‘요즘 애들’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고요.      

저는 “요즘 애들은-.”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나 세대 간의 갈등 같은 것들이, 결국 대화 부족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각자의 가치관, 경험, 생각들이 많이 다른데 비해 대화할 시간이 없으니 간극은 계속 커지고… ‘청년시민회의’에선, 이렇게 수평적인 대화가 갈등을 줄이고 나은 정책을 만드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경험했어요.      

아직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요. 그래도 청년시민회의의 경험이 실마리를 줬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들이 한창 정치권을 상대로 운동한 시기가 있었잖아요. 이제 우리도 우리의 방식으로 운동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지만 그렇게 상상하고 있답니다.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채경/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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