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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바뀔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일자리경제분과 송하민

향후 10년, ‘프리랜서’가 노동 문제의 중심이 될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엔 플랫폼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프리랜서 노동자가 생각보다 많아요. 대표적으로 ‘배달의민족’, ‘요기요’ 같은 플랫폼을 통해 배달대행 업무를 하는 배달노동자가 있고, 또 ‘크몽’ 같은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중개 받는 프리랜서들도 있죠. 현재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인구가 1900만 명 정도 되는데, 이에 비교하였을 때 약 220만명이 플랫폼, 프리랜서로 대표되는 특수고용노동자예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의 플랫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거죠.     

국제노동기구(ILO)가 낸 보고서에서도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언급될 정도로 플랫폼노동자 증가와 더불어 생겨나는 쟁점들은 이미 세계적 이슈예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플랫폼노동자들이 진출할 노동시장은 점점 많아지고 있죠. 예로 배달노동자처럼, 가게에 직접 고용되어서 월급을 받는 형태였던 직종이 플랫폼에 소속되어 건당 얼마씩 보수를 받는 프리랜서 노동형태로 바뀌기도 하고요.      

저는 현재 청년유니온의 지부인 청소년유니온의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평소 전통적인 노동 문제와 이슈에 관심이 많았지만, 플랫폼 노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어요.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서울청년시민회의’ 일자리/경제 분과 중 플랫폼 노동 소주제를 선택하게 되었죠. 플랫폼 노동에도 굉장히 많은 직종들이 있는데, 활동하면서 직종별로 어떤 의제가 있고 어떻게 쟁점이 나뉘는지 등을 알게 되었어요.           




새로운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요기요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사실 플랫폼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노동법의 보호를 받기란 쉽지 않아요. 노동자성과 전속성의 인정 기준 자체가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죠. 플랫폼노동자들이 증가하는 데 비해 그들을 포용할 만한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한 것도 문제예요. 영국의 경우에는 ‘긱 이코노미(우버, 딜리버루 등 플랫폼 노동자)’, ‘제로 아워 계약(고용인이 필요할 때 근로를 요청하는 형태로 주당 최저 노동시간을 보장하지 않음)’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해당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이 시행되었어요.      

저는 4대 보험 등 전통적인 안전망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프리랜서 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지역가입자로 가입이 되어서 건강보험료를 자신이 전부 부담해야하기도 하고, 일하다 다치거나 아파도 산재 처리나 병가를 받기 어렵잖아요. 최근 ‘서울형 유급병가제’가 시행되면서 프리랜서 노동자들도 여건이 되는 분들은 유급병가를 받을 수 있게 됐는데, 이런 것이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도 사회적 안전망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사례라고 볼 수 있죠.     


또 다른 예시로는 ‘직업교육훈련’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일 같은 경우는 저숙련 상태에 있는 사람을 직업교육훈련센터로 호출해서 재교육해 다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어요. 북유럽권 국가들은 노·사·정·민이 공동 운영하는 청년자보장센터의 직업교육훈련 프로그램이 지역마다 있어서 센터를 통해 직업훈련도 받고 일자리도 매칭 받을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직업교육훈련도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계약방식, 일 방식이 등장하는 지금 새로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새로운 안전망과 기존의 안전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직업교육훈련은 노동자에게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과 업무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해요. 청소년 노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중 소명의식, 직업의식이 없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실제로 ‘젊은 애들은 책임감이 없고 일도 잘 못한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알바 뽑아 놓으면 책임감도 없이 도망간다.’는 등의 부정적 인식을 여전히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어요. 첫째로, 존중받아 본 적이 있어야 존중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일터에서 존중받아 본 적이 있어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존중할 수 있고 직업의식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일을 못하고 소명의식이 없는 이유는 청소년이기 때문이 아니라 직업교육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노동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뽑아 놓고 몇 시간 훈련시킨 다음에 바로 업무에 투입해 놓고서 ‘너 왜 이렇게 일을 못 하냐’고 타박하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노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해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흔히들 ‘거쳐 가는’ 노동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청소년 노동과 플랫폼 노동의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 노동인권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보면 언론에 보도될 때가 있거든요. 그때마다 달리는 댓글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응원하는 댓글도 있고 부정적인 댓글도 있지만, 전부 청소년 노동을 시혜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같지요. 모두 ‘어린 친구들이 열심히 하네.’, 혹은 ‘어린 애들이 뭘 안다고.’라고 말하는 거죠.      

‘노력해라’라는 식의 댓글은 그중에서도 최악이죠. ‘너희들이 노력을 안 하니까 그런 직장에 가서 그런 취급과 대우를 받는 것이다.’ 같은 말들이요. 댓글을 쓴 사람들도 거의 노동자일 테고,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근로기준과 환경이 나쁜 중소기업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텐데. 그런데도 남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활동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울 때는, 고(故) 김용균 님 사건처럼 누군가가 죽어야 이슈화가 되고, 그래야만 세상이 바뀌는 걸 볼 때예요. 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바뀌는 세상이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으니 그런 일들을 접하며 많이 고갈되기도 해요.      

그래도 계속해야죠, 제 자리에서나마. 개인, 계층, 직종별 노동자의 문제를 파악하고, 스피커 역할을 하고, 공론화를 통해 노동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나가고... 그렇게 꾸준히 활동할 거예요. 나중에, 슬퍼했던 수많은 사건들을 다시 돌이켜 본다면, 변화는 분명히 있거든요. 그런 일들을 동력 삼아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야죠.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은총/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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