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복지안전망분과 이민주
사각지대에 몰린 신체장애인의 ‘정신’ 건강
작년에 돌발성 난청이 와서 한쪽 청력이 거의 사라졌어요. 이명도 심했고요. 그런데 그때, 신체적 결함보다도 마음이 힘들었던 게 더 컸어요. 우울증세. 밖에 나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게 무서웠고, 주변 사람들에게 저의 상황을 알리는 것도 힘들었어요.
신체장애인이 겪는 문제라 하면 보통 신체의 문제, 혹은 그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를 떠올리기 쉬운데요. 사실 저의 경우 말고도 후천적 장애를 얻는 경우엔 우울 증상이 많이 생긴다고 해요. 저도 제가 경험하기 전까지 신체장애인에게 정신건강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지요.
신체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현재로선 신체건강, 혹은 경제적 부분에 관련한 지원이 대부분이에요. 정신건강을 위해 따로 지원해주는 정책은 별로 없지요. 신체장애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특화된 사업이 필요한 때예요.
저 같은 경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일을 하지 않아도 됐고, 저를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어서 우울함을 빨리 이겨낼 수 있었거든요. 둘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았더라면? 회복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 실제로 다른 신체장애인의 사례를 보면 당장 일을 나가야 하거나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지요.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들은 실제 당사자가 아니면 잘 모를뿐더러,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잘 다루어지지 않아요. 저도 제 일을 겪기 전까진 장애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우리 모두가 잠재적 장애인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공감을 많이 했죠. 장애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예방책이 필요해요.
많은 사람들이 장애가 특별한 뭔가가 아닌,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 여긴다면, 장애를 자기 생활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여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장애를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나의 일로 생각한다면? 우리사회는 더 나은 정책을, 사회적인 예방책을, 다시 말해 누구나 언젠가 사용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강구할 수 있겠죠.
가령 꼭 사고로 신체장애를 얻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신체기능은 떨어지고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높아져요.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하고, 장애에 대한 대응방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한다면, 그런 피해가기 힘든 장애에 대해서도 보험과 같은 안전망을 쌓아 놓을 수 있겠죠.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청정넷)’에서의 활동도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했어요.
신체장애인의 정신건강,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청정넷에선 청년들이 각 분야별 정책을 직접 연구하고 제안하는 활동을 해요. 복지안전망 분과인 저는 신체장애인, 특히 신체장애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위한 정신 건강 심리지원 사업을 제안했죠. 따로 장애인 등록을 할 필요 없이 의사 소견서가 있으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 등록은 자동으로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가서 등록해야 하거든요. 의사 소견서를 받아도 장애 등록 전에는 서비스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또 장애 판정이 되기까지 몇 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하고요. 그 공백 기간 동안에도 서비스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역 보건소를 기점으로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초기 신체장애인에게 상담을 해주는 시스템이 운영되는 거죠. 물론 이 과정에서 지역적 차별이 생기지 않도록 충분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당사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요. 인터넷 상담, 전화 상담도 당연히 병행해야겠죠.
장애인 당사자들이 최대한 편하고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하려고 노력했어요.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나만의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그래서 그 고충을 이미 겪어봤던 장애인 동료와의 1:1 상담이나, 혹은 장애 당사자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신체장애라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려주는 가족상담 등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기도 했죠.
계속 이야기해나가는 것
사실, 이 문제는 당사자에 대한 서비스, 혹은 그 서비스를 홍보하는 것과 더불어 범국민적 인식개선이 필요한 영역이잖아요. ‘누구나 잠재적인 장애인’이라는 걸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되면,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이 그런 변화를 겪었을 때 서로를 더 잘 받쳐 주고 지지해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이 한 번으로 멈추지 말고 계속 이야기해 나가야죠. 다시 한 번 말할게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지금 우리 사회엔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요. 이렇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언젠가 퍼지고 퍼져서, 누군가 다시 정책을 제안하지 않을까요? 저는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해인/ 편집. 한예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