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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버텨야 세상이 바뀌어요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 일자리경제분과 신동은

“왜 나는 일터에서 내 의견을 편히 말할 수 없을까요?”     

여태까지 청년이 많지 않은 곳에서 일하면서 힘들었을 때는, 구성원 간 세대차이나 젠더감수성의 차이를 느낄 때였어요. 세대 차이를 먼저 말해 보죠. 가령 기성세대 상급자 분들은 단톡방 여러 개를 만들어두고 그걸 통해 업무지시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게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이어진다고 봤죠. 회식은 또 어떤가요? 회의가 끝나면 기본 3차까지 회식을 하곤 했어요. 이때 이 회식이라는 게, 그냥 밥 먹고 술 마시는 자리가 아니라 회의의 연장선상인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저는 그게 익숙하긴 해도 적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았거든요.      



젠더감수성에 대한 문제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일했던 곳은 공익적 성격이 강한 비영리 단체였는데, 역대 대표자나 임원 중 여성은 손꼽을 만큼 적어요. 저도 나이 어린 여성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나는 이곳에서 그냥 직원이 아니라 여성 직원이구나’하고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고,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 볼 때마다 불합리하다고 느꼈죠.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의문이 들더라고요. 왜 일터 내에 내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가 없는지, 왜 항상 경영진들과 힘겹게 싸워야만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나만 문제인 걸까?’ 하는 생각도 물론 들었어요. 그런데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 보니까 다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거예요. 5~6년차 활동가인데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서를 꼭 써야 하냐’는 질문을 듣고, ‘활동가인지 노동자인지 선택하라’는 요구를 받고… 활동가면서 노동자인 건데, 왜 꼭 둘 중 하나여야 하나요? 이야기 끝에 ‘일터 내 민주주의’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죠. 이후 ‘서울청년시민회의’에서도 일터 내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대화와 토론으로 시작되는 ‘일터 내 민주주의’      

그럼 ‘일터 내 민주주의’란 게 뭘까요? 아니 그전에, 먼저 민주주의란 무엇일까요? 저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일터 내에서 서로 이해관계를 조정한다는 건?     

제 일터를 한 번 예로 들어볼 게요. 저는 현재 서울혁신파크유니온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지부장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곳에서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운영위원회에 노동자가 들어가기도 하고, 1년에 4번씩 노사협의회라는 기구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노동자의 의견과 사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요. 2년마다 단체협약도 맺고요. 그리고 그런 안건이 있을 때마다 전체 조합원 회의도 하죠. 저희 조직의 총 인원이 34명인데, 법적으로 필요한 인사담당자 1명과 사측 4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조합원이 29명이거든요. 그 29명을 대상으로 매번 전체회의를 하고 있어요.      

이렇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알아나가는 것, 저는 그것이 일터 내 민주주의라고 생각해요.     

직원 30명 이상이 되면 의무적으로 고충처리위원회라는 기구가 생겨야 하고, 거기에 노조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최근 직장내 괴롭힘이나 ‘갑질’ 같은 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외려 그걸 방지할 수 있는 이런 시스템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저희 센터를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 회사 내에 고충처리위원회 같은 기구도 없고, 있다고 해도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결국 일터 내에서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극단으로 내몰린 분들이 많아요. 그런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안타깝죠. 그래서 더욱 저희의 사례를 널리 알리고 싶어요. ‘이렇게 해도 노사문제 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비슷한 기회를 주는 곳들이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원래 더디게 오는 거죠.”     

물론 저희가 좋은 선례 하나를 만든다고 그게 전 사회에 짜잔 받아들여질 리는 없겠죠. 저희 내부에서도 여러 문제가 나올 수도 있고요. 사실, 어떤 선례가 공유되는 일부터가 힘들기도 해요.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희 센터만 해도 이렇게 노사문제를 원활히 풀어나가고 있는데 말이죠. 지금의 사회구조는 이런 좋은 사례들이 있다고 그게 활발히 공유되는 구조도, 좋은 방향으로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구조도 아니지요.     

최근엔 고(故) 김용균 님의 사망 1주기가 있기도 했잖아요. 그 사건 이후를 보면서, ‘누가 죽어야만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 사회의 구조가 참 마음 아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죠. 원래 민주주의라는 게 그렇다고 하잖아요. 단기간 내에 엄청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니까, 아주 작은 변화만 있어도 큰 발전인 거잖아요?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조금의 성과 밖에 얻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그 성과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사례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나가야죠. 그리고 다음 성과를 이뤄내야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버티고 버티며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면, 결국 세상은 바뀐다고 생각해요.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인터뷰 프로젝트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서울청정넷)에서 2019 서울청년시민회의를 통해 활동하고 논의해온 내용을 나눕니다. 서울청정넷은 청년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기구로 청년문제를 비롯한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발굴 및 제안, 캠페인, 공론장개최 등 다양한 사회적해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글. 은총/ 편집.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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