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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Nov 06. 2024

4년 만의 티켓팅

브리즈번 여행기

n야

올봄이었나 봐.

애나가 휴가를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

애나는 전화로 리(예비사위)가 10월 중 한국에 휴가 가는데 그때 할머니를 모시고 호주로 오라는 거야.


동생한테 같이 가자고 했더니 제부도 함께 하고 싶다는 거야.

사실 나는 혼자 가는 게 무서운데 구순이 다된 엄마까지 책임을 져야 되는 게 더 무서워 경험 있고 순발력 있는 동생이 동행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지.

동생은 치매인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로 하고.


애나에게 우리의 계획을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서 엄청 당황해하더라고.

할머니와 엄마 외는 계획에 없고 다른 분들은 내년 초에 사촌오빠들이랑 오시게 한다고.

그리고  두 분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하더라.

식구가 많아지면 하루에 한 끼만 외식해도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이 있을 공간도 부족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했다. 우리 가족 모두를 만족시킬 여유가 지금은 없다고 하는 거야. 

그 말도 맞지만 내 생각에는 30평 넘는 아파트에 거실도 크고 방 두 개에 욕실 두 개면 충분할 거 같았어.

셰어 중인 사람은 내보내고 동생부부가 쓰고 엄마와 나는 애나방에서 셋이 쓰면 충분하지 않냐고 했어.

나는 완벽하진 않아도 식구가 같이 하면 좋지 않느냐는 거지.

그건 일방적인 내 생각이었나 봐.

저랑 의논도 하지 않고 일을 크게 벌인다고 책망을 하네.


몇 년 전에 애나는 귀국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하고 준비를 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열심히 준비를 하더라. 나는 엄마와 얘기해서 동생들과 조카들까지 불렀다. 멀리 사는 애나가 왔으니 얼굴 한번 더 보라고 한 것이었어. 애나는 갑자기 불어난 식구들에 놀랐고 정성 들여 준비한 음식은 당연히 부족했고 급하게 파스타 등 배부를만한 음식을 만들어냈지. 그때 참석한 부모님이나 동생들과 조카들 모두가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던 거 같아.

그러나 애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맛있는 것을 충분히 드시지 못한 것에 많이 속상해했어. 

애나는 자신의 의도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에  언짢은 내색하지 않더니 모두 가고 나서 한바탕 언쟁을 했던 기억이 있어. 왜 자신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일을 벌이냐면서 이번 여행 제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거야.

나는 맏이라 그런지 가족들이 아주 가까이 살고 늘 서로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저녁식사등으로  자주 하는

모이는 편이라 당연하게 생각했지.

하지만 애나는 나와 생각이 달랐어.

나는 나대로 저는 저대로 이런저런 의견 차이로 호주 가는 것은 없던 일로 정리되었지.

동생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을 했지만 참 쉽지 않은 일이었어.


아주 사소하게 여기던 것이 세상 어떤 것의 무게보다도 더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 일도 있더라.

내 자식이니까 쉽게 이해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큰 벽을 느꼈어.

쉽지 않아, 세상사 쉬운 일이 없는 거 같아.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흔들려.


그런데 리의 휴가가 가까워지자 애나는 갑자기 오지 않겠냐고 하였어.

딱 잘라 여행은 없던 일로 하자던 것은 '칼로 물 베기'처럼 흔적도 없이 오라는 말을 하네. ㅎㅎㅎ....

3주 이상을 혼자서 지내야 하고 젊은 청년에게 셰어를 하고 있어서 나도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어.

처음에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라 조금 망설였지만 곧 가겠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는 거야.

가족들과는 내년 계획으로 미루고 이번에는 혼자 가는 걸로 결정했어.


추석이 다가오고 있고, 연휴 동안에 형제자매들이 모일 거고, 그다음 주엔  아버지 기일이다. 출국 전날에 리가 오기로 되어 있고 저녁에는 친정에서 여기사는 가족들이 모일 것이고.

이 모든 일에 내가 없어서는 안 될 일이 되었어. 언제부턴가.

아, 케세라세라

되는 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


4년 전인 2020년 4월 20일 자 티켓팅을 했었지.

애나가 브리즈번에서 살다가 멜버른으로 다시 브리즈번으로 옮겨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지.

직장을 좀 쉬기로 하고 브리즈번행 티켓팅을 해두었어.

여기가 봄이면 거기는 가을이 시작된다고 했어. 

'가을편지'에 누구라도 연인이 되어달라는 그 가을을 외국에서도 느끼고 싶었거든.


2020년 1월에 터키 여행을 다녀오는데 입국장에서 열체크를 하더라고.

여행 중엔 몰랐는데 집에 도착해서야 'COVID19'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코로나가 무섭도록 확산되면서 호주에서는 아예 아무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게 락다운 시켜버렸어.

그렇게 코로나는 세상의 모든 이들을 시름케 하였고 우리 집에도 영향을 미쳤지.


2021년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질 때 애나는 한국을 올 수 없었고 매일같이 영상통화를 하였어. 

할아버지와 통화할 때는 항상 웃고 기쁘게 해 드렸지만, 한편으론 나날이 약해지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어. 어릴 때 외가에서 자란 정 때문인지 애틋함은 말할 수 없었지.

가을이 되어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 오지 못하는 애나의 안타까움은 말할 수 없었고 오랫동안 슬퍼했어.

2022년에 두 달 동안 한국에 왔을 때, 친할머니께서 별세하신 것을 볼 수 있어서 슬픔 중에도 다행이었지.

세상을 끝낼 거 같던 코로나가 잠잠해지니 새로운 개벽이 온 거 같았어. 애나가  해마다 들어오고 언제든지 얼굴 보면서 통화할 수 있어서 멀리 있다는 느낌은 그렇게 들지 않아다만 명절 때나 가족들이 모이는 연휴 때 옆에 없다는 생각이 들면 조금 아쉬워지지.


애나는 부산- 인천- 브리즈번으로 왕복 티켓팅을 했다고 들떠서 알려주었어.

"드디어 브리즈번에 가게 되나?" 하면서 살짝 긴장이 되더라.

항상 엄마가 오기를 바라는 애나의 바람을 이제야 실현하게 되었네.

애나가 자기네 테라스 앞에 서 있는 몇 그루의 자카란다 나무에서 보라색 꽃이 활짝 핀 풍경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어.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설렘을 부추기는 거 있지.

그날 이후로 애나는 같이 할 일정을 짜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수시로 물어봤어.

나는 잘 모르니까 멀리 가는 일정은 빼고 가까운 곳에서 천천히 여유를 즐기고 싶다고 했지.

패키지가 아닌 여행은 처음이라 두려움이 앞섰지만 애나가 차근차근 알려줄 테니 걱정일랑 접어두고.

비싸다, 짜다, 달다 등 하면 안 되는 부모님 여행 10 계명을 보내주는데 웃음이 났어.


정작 패키지보다 더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즐길 준비만 하라는 애나의 말만 믿기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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