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런, 이런...
n야!
나 어떡하지?
호주 브리즈번 여행기를 쓰려고 하는데 자꾸 변수가 생기네.
동생 부부가 여행 간다고 엄마와 내가 동생 시어머니를 여행기간 동안 모시고 있었지.
또 초등동창들과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지.
이런저런 일상사에 치여 호주여행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너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데 자꾸 늦어지네.
지난주 다녀온 베트남 여행 가기 전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
나의 책상달력에는 11월 14일 동생 정은 중국여행, 11월 20일 가방 챙기기, 11월 22일 동생 태희 태국여행
11월 24일 일요일 베트남 나트랑, 달랏 여행 - 초등동창생 37명 이렇게 멤모가 되어 있어.
휴대폰 일정에도 알림으로 설정되어 있고.
11월 20일 수요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멍한 채로 따뜻한 물 한 컵을 마시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니
어제 G가 사무실에 와달라는 기억이 났어. 이전할 사무실 디자인에 관해 도와달라던 기억이 났어.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가깝지만 걷기에는 시간이 걸릴 거 같아 차를 몰고 갔어.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보면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친구 Y의 전화가 왔어.
"H야, 가방은 다 쌌나?"라고 묻기에 나는 내일 쌀 거라고 말했어. Y는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
이야기를 잠깐 나누고 나중에 다시 전화하는 걸로 하고 끊었어. 그때 시각이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어.
우리는 작업을 마치고 G의 남편과 같이 설렁탕 집으로 갔어. 밥을 먹고 나는 집에서 가까운 사찰에 갈 거라고 하니까 G와 그의 남편도 가고 싶다고 하는 거야. 기다려달라고 하면서 차에서 내리는데 Y가 전화를 했어.
"짐 다 챙겼나?"라고.
"뭐? 무슨 짐?"
"오늘 여행 가는 날 아니가?"
"웽? 오늘 간다고? 24일 가는 날 아니가? "
"아니 오늘 이라는데. "
"짐 다 챙겼으면 차 타기 전에 커피 한 잔 하고 가자."라고 하는 거야.
"오 마이갓! 진짜 오늘이라고? 일단 끊자. 내가 다시 전화할게. 가서 씻고 챙길게."
그때 시각이 오후 1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는 거야.
친구 하고는 다시 전화하기로 하고 G에게 대기 좀 하라고 했어.
갑자기 멘붕상태가 된 나는 15층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신이 아득해지고 "아, 어떡하지?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야.
겨우 정신을 붙들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권하고 지갑부터 챙겨 넣었어.
먼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남동생한테서 전화가 오는 거야.
문자를 보냈고 전화로 인감증명 등의 서류를 떼서 팩스로 먼저 보내고, 오늘 중으로 등기로 보내달라고 하네. 이번 주 안으로 서류 계약을 하지 않으면 1월 중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오늘 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거야.
전화를 끊고 나서 시계를 보니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네.
아~~~
이런 걸 설상가상이라고 하던가.
그래 여행보다 동생 서류가 먼저지.
우리를 태울 관광버스를 타기 위해선 운동장에 3시까지 도착하면 되고 일단 행동개시에 들어갔어.
근데 전혀 짐을 챙겨놓지 않았는데 갑자기 뭘 챙겨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되는 대로 이것저것 집어넣고
거기가 날씨가 덥다고 하니 원피스도 챙기고, 남자 동창들이 전체의 반이 넘으니 불편하지 않을 옷을 챙겨야지 하는 것은 생각할 틈도 없었어. 전쟁 중에 짐 챙기는 느낌이랄까.
베트남에 가서 보니까 일주일치쯤 되는 옷인데 정작 빠뜨린 것도 많았고 필요 없는 것들도 있더라.
ㅎㅎㅎ.
작은 캐리어는 터질듯하지 작은 배낭은 그것대로 무겁지. 대강 짐을 싸서 동사무소로 가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뛰네. 서둘러 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려니 신분증을 달라는 거야.
아~ 없네. 그래서 여권도 되냐니까 된다고 해서 차로 뛰어가서 가방에서 여권을 찾아 서류를 뗐어.
G에게 넘겨서 팩스와 빠른 등기우편을 부탁했지.
G의 순발력 있는 운전으로 동창들이 기다리는 버스에 도착하니까 2시 45분이었어.
여행의 설렘에 들뜬 동창들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오르고 겨우 한숨 돌렸지.
아, 그런데 깜박 잊었던 것이 생각나는 거야.
동생이 아침 일찍 서울로 치과에 간다고 했어.
어제 이야기로 오늘 저녁 늦게 도착한다고 시어머니 점심과 저녁을 부탁하고 갔거든.
바로 동생한테 전화해서 여행 소식을 알렸고, 24일 여행 가는 줄로 알고 계신 어머니에게
동생네 시어머니를 챙겨주시길 부탁드렸어.
겨우 수습을 했다 싶어서 차 안에서 짐 정리를 하려고 펼치니 동창들이 "뭐 하는 거냐"라고 한 마디씩 거드네.
조금 민망해도 안 그런 척했어.
가방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Y가 전화를 했어.
아, 맞다 내가 전화하기로 했지.
Y는 우리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이고, 내가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어.
내가 생각해도 번갯불로 콩을 볶은 거 같아.
김해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형제자매들 단톡방에 갑작스러운 여행일정을
올렸어.
보딩타임이 지연된다는 방송이 있었고 친구들과 잡담 중에 우리 딸과 통화를 못한 것이 생각났어.
페이스톡을 하고 좋은 시간 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마무리했지.
그런데 아뿔싸!
뒷날이 되어서야 아들하고 통화를 못한 것이 생각났는데 조금 미안한 거야.
톡으로 이런저런 변병을 하는데 지 동생한테서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즐거운 여행 되라고 하더라.
Anyway,
순전히 이번 여행은 Y와 G의 덕분이야. 고마움 표현은 차츰 하기로 하고.
두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온전히 놓쳤을 수도 있었어.
나는 왜 20일 출발, 24일 도착을 24일 출발로 인지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날 11시쯤에 친구가 파마하면서 내게 전화했기에 몇 시간 후에 여행 갈 사람이 파마를
하고 있다고는 생각지도 안 했지.
친구는 내가 내일 가방 쌀 거라는 말을, 좀 있다 가방 싼다는 걸로 들었다지.
우리는 서로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거지.
매년 세상을 떠나는 몇몇의 동창들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여행을 큰 의미로 받아들이는 친구들도 있었어.
여행은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했지 초등동창들과 하는 해외여행은 또 다른 재미가 있더라.
우리 동창의 에이스 M의 털기춤은 친구들의 호주머니를 털게 했고, 평소에 너무 점잖아서 말이 없던 J의 셔플댄스는 친구들이 따라 하려고 발버둥을 쳐도 쉽지 않아서 더 웃겼어. 키 큰 친구가 사치기 사치기뽕 하면서 추는데 모두가 폭소와 함께 그 친구의 반전 매력을 보았어. 함께 하는 매순간순간 웃음과 재미를 주는 친구들 덕분에 아무 고민 없는 아이들처럼 동심으로 돌아간 시간이었어.
마지막 날 저녁을 먹은 후 비 오는 거리를 헤매며 늦은 쇼핑까지 하였어.
공항 가는 길에는 덜 풀린 여흥을 춤을 추는 것인지 몸부림을 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모두들 아쉬워했지.
나트랑 공항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인 거 같았어.
체크인하기 전에 짐을 부치기 위해 다들 짐정리로 부산스러웠어. 넘치는 짐을 가진 친구들은 다른 친구 가방에 채우기도 하고 서로 들어주기도 하면서 말이야. 나는 작은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구입한 물건은 쇼핑백에 넣어서 캐리어 위에 얹어서 끌었어. 한 남자동창은 내가 괜찮대도 굳이 들어주겠다고 쇼핑백을 뺏다시피 가져가는데 부담스러우면서도 고마웠어.
그런 점에서 단체여행이 좋긴 한가 봐.
짐검사를 하고 나는 통과하였는데 저 쪽 라인에 있던 내 짐 가져간 친구가 통과를 못하고 있는 거야.
왜 안 나오냐고 했더니 샴푸를 뺏겼다는 거야. 내가 가까이 가보니 커피샴푸 3 통이네.
아! 무슨 일이야?
저게 쇼핑백에 들어있었나?
그래서 무거웠나?
분명히 액체류는 수하물 가방에 넣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커피샴푸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였어. 아니 내 기억에는 샴푸는 없었어.
물론 커피샴푸를 분명히 구매는 했어.
그런데 나는 액체가 아닌 과자류, 커피, 침향만 기억하고 샴푸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 거였어.
다른 친구들도 샴푸가 들어있다는 걸 기억 못 한 거야. 나뿐만 아니라 ㅎㅎㅎ.
우리 팀은 거기서 샴푸 8개를 압수당했어.
'아이고, 아까버라.'
가이드와 연락해서 5개를 다시 구입했어.
나의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더듬고 있는 중이야.
왜 기억이 나지 않고 기억을 왜곡하고 있었을까?
수면과 운동부족, 눈과 몸의 피로, 정신적 스트레스와 강박증 등을 생각하고 있어.
맞는 얘기야.
하지만 나는 건망증 혹은 기억력 저하를 느끼지만 우울감에 빠지고 싶지 않아.
'오, 마이 갓'으로 시작한 여행이지만, 행운의 여신이 되어준 벗들의 도움으로 재미난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역쉬 나는 행운아."라고 말하고 싶어.
샴푸를 잃어버렸지만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아서 너무 다행이라고 억지도 부려보고.ㅎㅎㅎ.
올 2월에 우리 가족 12명의 부산출발 대만여행이 생각나네.
말도 마라. 동생과 조카 둘이 김포발 부산행 비행기를 놓쳤다고 연락이 온 거야.
여행사 팀장도 이럴 줄 알았다며 전화를 해왔고.
"Oh, My God!"
새로 티켓팅한 비행기는 안개로 지연되었고, 겨우 탔다는 비행기는 김해공항에 랜딩을 하지 못하고 하늘에서 빙빙 돌고 도는데, 여기서 기다리는 마음 못지않게 애가 탔다는....
우리 모두의 돈을 환전하여 막내동생이 다 갖고 있는데 아직 도착 소식은 없지. 대만여행을 책임지고 있던 나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계속 전화기만 붙들고 참말로 초조한 마음이었어. 공조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네. 여행사, 항공사 직원들의 도움으로 보딩타임이 끝나갈 무렵에야 이들이 겨우 도착한 거야. 88세의 엄마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가슴을 쓸어내렸지. '오, 마이 갓'이라는 아찔함으로 시작된 대만여행은 우리 가족 여행 중의 제일 큰 이슈였는데, 많은 인원이 움직이다 보니 더러 생기는 일이기도 해.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여행의 기억들은 이슈가 큰 것일수록 그들이 겪은 공포에 가까운 난감함과 재미의 세계로 인도하는 거 같아. 실수 혹은 주의력 부족으로 인한 애드립은 우리들 심장을 더 쫄깃한 긴장감에 빠뜨리기도 하지. 이런 에피소드는 어쩌면 일상이 전쟁 같은 우리에게 슬로, 슬로, 한 템포 쉼의 공간을 가지라는 '브레이크 타임' 같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기억보다 임팩트가 강렬한 사연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 우리를 추억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거 같아. 그러면 우리는 또 한 번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거지.
이렇듯 우리의 삶은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여행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