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경험에 돈쓰기
내 집은 아주 소박하다. 좋게 말하면 아늑하고 거칠게 말하면 단칸방쯤이랄까. 나혼자 지내기에 딱 안성맞춤 사이즈다. 오랫동안 작은 원룸에서 자취하는건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큰 집을 욕심 냈다면 모은 돈에 대출 받아가며 크기를 늘려갔을거다. 집이 과시용이 아니라 지극히 기능적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1인 사이즈에 맞게 작은 집이 편하다. 뭘하든 동선이 짧고 뭣보다 청소가 순식간에 끝난다. 정리능력 부족하고 게을러터진 나에게 이 정도면 족하다.
나와 정반대 지점에 있는 친구가 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집을 샀다. 얼마 뒤 대출을 많이 받아서 방이 3개인 좀 더 큰 집으로 옮기고, 남은 두 방은 셰어룸으로 활용했다. 두 명한테 받은 월세로 은행빚을 갚는 식으로 살면서 점점 집을 키워갔다. 넓은 집에 집값도 올라 앉아서 돈 벌었다고 신나했다.
나보다 넓은 집을 소유하고 있고 재산도 많아졌지만, 전혀 부럽지가 않다. 도대체 그 친구의 집은 누구를 위한 집인지 모르겠다. 세입자 둘이 항상 상주하니 집주인이지만 눈치도 보면서 조심스럽게 살아야 하고, 대출이자 갚느라 늘 쪼개살며 제대로 쇼핑 한번 하는 걸 못봤다. 그 친구에게 집은 단지 부.동.산의 의미 그 이상, 이하도 아닌듯 했다.
월세 원룸에 사는 내가 행복할까. 방 3개 달린 큰 집 소유주인 친구가 행복할까. 내 기준에 내가 더 못한것도 없다. 집은 휴식의 기능만 있으면 족하다. 그밖의 모든 수입은 나의 경험에 투자한다. 내가 겪는 사람의 모든 행복한 경험은 물건 소유의 가치와 비할데가 못된다.
나는 어떤 순간, 무엇을 할때 행복한가
내가 무엇을 할때 행복한지,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는지 늘 연구한다. 내가 번 돈은 오직 그것을 탐구하고 실현하는데 쓴다. 가령, 뮤지컬에 꽂혔을 때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3주간을 머문다거나, 노천온천이 하고 싶을 때 삿포로에 간다거나, 이런 행복한 경험에 쓰는 돈은 전혀 아깝지가 않다.
내가 행복하려면 어떤 조건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알아야한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알아지는게 아니다. 뭐든 해보고 부딪혀봐야 내가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려면 시간과 돈이 든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를 더 구체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동시에 내 행복지수도 높아질 기능성이 올가가게 된다.
당장 내일 지주가 끝난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소유에 돈을 쓸텐가 경험에 더 투자를 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