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재발견
유일하게 잘라는 운동이 있다. 걷기다. 건강검진 받으면 늘 근육량 부족, 유연성은 먹고 죽을래도 없고, 100m달리기 기록은 늘 18초를 웃돌며, 피구만 하면 제일 먼저 배에 공맞고 죽는 사람이 나다. 체육과는 도통 인연이 없는 내가 걷는 거 하나 만큼은 부심이 있다.
동네 앞 공원을 놀아터 삼아 시간날때마다 몇바퀴씩 도는 건 기본. 뉴욕에 여행갔을땐 편한 운동화 하나로 대중교통 없이 온 동네 스트리트, 애비뉴를 다 쏘다녀도 지칠 줄 몰랐다. 저질 체력이지만 걷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심지어 빠르기까지 해서 나와 함께 걷는 사람은 대게 쉬이 지친다. 이쯤되면 걷기부심이 생길만도 하지 않는가.
사실 오래 걷는 행위가 단순히 운동차원은 아니다. 걷는 것에 소질이 있어 좋아하는 건 맞지만, 걷기의 남다른 효능을 몸소 깨달은 후 더욱 걷기를 애정하게 됐다.
늘 잡념 지옥에 사는 내게 효과 좋은 처방전 같은 거다. 걷기는. 내가 늘 잡념과 고민에 빠져있는건 항상 일어나기도 전에 앞서 걱정하는 쓸데없는 성급함 때문이다. 내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성격이 사람을 아주 지치게 만든다. 미리 하루 뒤, 일주일 뒤를 고민하느라 머리가 항상 뒤죽박죽 어지럽다. 그럴 때마다 걸었다.
바퀴로 굴러가는 거에 비해 두 발로 걷는 건 엄청난 속도의 차이가 있다. 걷는다는 건 속도가 아주 느려진다는 것. 몸의 속도가 느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속도도 느려졌다. 그런데 걷는다고 무작정 앞만보고 또는 귀를 이어폰으로 틀어막고 걷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
나무에 작은 꽃이 피는 것도 보고, 비둘기다 떼지어 바닥에 떨어진 과자 주워먹는 것도 보고, 하늘에 구름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걸어봤다.. 무작정 빨리 걷기만 했을 땐 몰랐는데, 주변을 찬찬히 관찰하면서 걷다보니 어느새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불안증세가 차츰 사라졌다. 병원 안가고 자가치료를 한 거다. 늘 불안과 걱정과 공포심이 마음 한켠에 또아리틀고 있었는데, 조금은 그 면적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지금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아지거나 머리가 복잡해지면 어김없이 공원으로 나간다. 제발 이 놈의 미세먼지만 빨리 좀 사라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