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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섭 Jan 13. 2019

침대형 인간이지만 괜찮아_#11

하루키도 직장인이었다

방송작가협회가 추최한 아사다 지로 작가의 강연이 있었다. 영화 <철도원>,<파이란>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 유명세에 어울리지 않은 소탈한 동네 할아버지 차림이 인상 깊었다. 강연을 신청한 이유는 단 하나. 도대체 저런 대작가는 글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궁금했다. 어디서 영감을 얻고, 자료조사는 어떻게 하며, 어떤 환경에서 글을 쓰는가.


결론은 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왠지 저 정도의 필력을 갖춘 대작가는 밤낮없이 자유분방하게 하루를 살고, 어쩌다 영감이 떠오르면 일필휘지로 소설을 한방에 뚝딱 쓸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글쓰기 실력은 ‘엉덩이’에서 나온 거였다. 거의 새벽에 가까운 이른 아침에 책상에 앉아 근무하듯이 글을 쓴다. 때되면 밥을 먹고 일반 직장인 퇴근할때 쯤 하루작업을 마무리한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일도 없고, 나태하게 TV로 시간을 때우지도 않는다. 왠만한 대기업 직장인보다 더 엄격한 근무환경이다. 수십년째 글을 쓰며 썼다하면 베스트셀러를 뽑아내는 작가의 비결은, 성실함에 있었다.


하루키 덕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일본의 대작가 하루키 역시도 아사다 지로와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 아니 아사다 지로보다 한 수 위다. 체력 관리도 철저해서 글 쓰는 시간 외에 달리기를 즐기는 하루키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까지 출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키 소설 속의 그 수많은 사연들은 성실과 자리관리의 끝에서 탄생한 셈이다.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대작가들이 이토록 성실하게 작업을 하디니. 영감이라는 것은 부단한 노력 속에 얻게 되는 거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라.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프리랜서다보니 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규칙이 규칙이 된 일상들이 많다. 나 스스로 다잡지 않으면 나태해지기 딱 좋은 조건이다. 이 핑계 저 핑계로 게을리하고 미루왔던 습관들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대작가님도 저렇게 성실하게 작업하는데 내 까짓게 뭐라고...


침대보다는 조금 작은, 집 평수에 비해서는 아주 큰 나무 책상을 샀다. 원룸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 책상을 방 가운데 두고 쓰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성실한 글쓰기를 위한 첫단추랄까. 나름의 의지 표명이다. 책상이 생겼으니 일단 앉을 것이고, 뭐든 쓰게 되겠지. 그렇다고 내가 하루키처럼 부지런한 작가가 될리는 없지만, 집에 작업실이 생긴 것 자체로 만족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늘고, 좀더 만족감이 커질 것 같은 예감. 아, 시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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