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에나 Jan 29. 2020

익숙하지만 근사하게, 소고기 명란찌개

난 내가 아는 맛의 즐거움을 그대들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또래에 비해 흔치 않은 음식들을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외할머니 덕분이다. 나는 입맛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절부터 오랫동안 할머니의 밥을 먹고 자랐다. 할머니는 사시사철 재료를 다양하게 활용하셨고, 양념의 맛보다는 재료의 고유한 맛을 사랑하셨다.

 나와 마찬가지로 언니도 그러한 맛이 그리웠나 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집에 온다는 언니에게 엄마는 무엇이 먹고 싶냐 물었고, 언니는 웬일로 김치찌개를 마다하고 ‘소고기 명란찌개’를 말했다.



보라. 얼마나 소박한듯 근사하지 않은 가!




 '소고기 명란찌개'는 다진 소고기를 약간의 국 간장, 다진 마늘, 다진 파(혹은 쫑쫑 썰은 파)등의 양념과 함께 넣고 치대어 작은 완자로 빚거나 넓게 펼쳐 빚어 냄비의 바닥에 깔고, 빨갛게 양념이 된 명란젓과 연 두부를 넣어 국물을 맑게 우려낸 찌개이다.

 인터넷 유사 레시피에서는 애호박을 반달모양으로 나박나박 썰어 넣기도 하지만, 우리집 레시피에서는 애호박은 넣지 않는다. 이번에 끓인 찌개에는 시간에 쫓겨 빠르게 끓이느라 산적처럼 넓적하고 판판하게 들어갔지만, 할머니는 동그랗게 소고기 완자를 빚어 넣으셨다. 배고픈 손님을 위해 빠르게 준비해야 할 때는 엄마의 방식을 손님상에 곁들여 내기에는 할머니의 귀여운 완자스타일이 적당하다.


바로 이 아이가 알루미늄 함마톤 양수냄비 입니다.


 외할머니는 최애인 알루미늄 함마톤 양수냄비에 주로 찌개를 끓였는데... 소고기 명란찌개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을 자작하게 부어 냄비의 바닥이 슬며시 달궈지면, 양념한 소고기를 반쯤 익힌다. 소고기가 반쯤 익으면 냄비의 반 정도까지 물을 낙낙하게 더 부어 끓인다. 한소끔 끓여낸 국물에 소고기 육수가 우러나오면 명란젓을 퐁당 빠트리고(글의 재미를 위해 퐁당이라 표현했지만 끓는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서 넣어야 해요) 연두부를 수저로 뚜걱뚜걱 퍼서 넣는다. 새로운 재료들로 온도가 낮아진 국물은 다시 불을 높여 끓인다. 이 과정에서 찌개의 국물에 명란젓의 짭짤한 양념이 흘러나와 전체적으로 간이 베어든다.



 명란젓의 중심부의 간까지 온전히 국물에 녹아들 때까지 끓이면 요리는 마무리 된다. 만일 이 과정에서 조급하게 굴면, 찌개가 완성된 뒤 명란젓은 좀 짜고, 국물은 밍밍할 수 있다. 물론 찌개국물에 소금 간을 더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소고기와 양념의 밑간, 명란젓의 짭짤한 맛이 국물 전체의 균형을 맞춘 특유의 맛이 사라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소금의 단순하고 강렬하기만한 짠맛은 종류를 막론하고 찌개 베이스의 맛으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알탕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간과 명란의 향과 소고기 특유의 깊고 고소한 맛이 우러나온 국물은 깊은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혀끝에서 부셔지는 부드러운 연두부가 입꼬리를 살랑거리게 만든다.











 글을 통해 요리 과정을 찬찬히 되짚다 보면, 어느새 맛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나는 요리에 관련된 글을 쓸 때 내가 아는 선에서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글에 곁들이는 음식 사진 역시 쿠킹 스튜디오에서 찍은 먹음직스럽고, 깔끔한 사진은 아니지만 함께 첨부하는 이유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우리의 감각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만드는 순서나 사진을 따라가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맛이 가늠되기도 한다.


 난 내가 아는 맛의 근사한 즐거움을 당신들도 느껴봤으면 좋겠다. 이러한 마음에서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해먹이며 함께 수다 떨고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현재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다소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친구들을 내 맘대로 집으로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간다하더라도 나만의 레시피와 혀끝의 감각에 의지하여 만든 음식은 대접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상황에서 가끔은 요리수업을 하던 과거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비록 돈을 받고 레시피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지만, 요리하는 즐거움과 맛있는 음식이 주는 충만함을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레시피로는 전달되지 않는 서로 간의 눈빛과 마음, 그리고 행복함을 나눌 수 있었다.




 소고기 명란찌개는 이런 나의 아쉬운 마음을 무엇보다도 강하게 상기시키는 음식이다. 요리강사 시절에는 나누고 싶은 음식이 많아도 퍼즐조각 맞추듯 매학기에 배당된 재료비 안에서 수업을 계획해야 했기에, 제한이 많았다. 소고기 명란찌개를 한번쯤 생각했지만, 소고기와 명란젓이라는 비싼 재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오래 묵은 한을 아주 늦은 오늘에서야 이렇게나마 풀어낸다. 클래스처럼 계량스푼이나 저울로 양념을 계량한 레시피는 없지만, 찰떡같이 말해도 콩떡같이 알아들을 그대들을 기대한다.








+ 덧붙여

익히지 않은 명란젓의 고유한 맛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역시 투척!


1.명란젓을 접시에 담는다.

2.명란젓을 가위로 1~½마디 정도로 자른다.

3.참기름 반 수저를 살짝 두른다.

4.고춧가루를 1 작은 술 뿌린다.

  *알싸한 매콤한 맛을 좋아하면, 청양고추를 잘게 다져 함께

 




 위의 재료를 마구 섞어 먹어서 한 번에 즐기거나 젓가락으로 자른 조각을 집어 밥 위에 슬슬 비벼먹으면 맛이 참 좋다. 당연한 참견이겠지만, 신선하고 너무 짜지 않은 고급 명란젓일수록 비리지 않은 고소함에 반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이 부디 맛있게 해 자시기를!





Ps. 오랜동안 저에게 꾸준한 응원을 보내주신 '혜린'님 굿바이 인사는 전하지 못했지만,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행복해지리라는 사실을 믿고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이야, 부루스케타(Brustchett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