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강된장과 쌈채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여름이 찾아왔다.
바뀌는 계절에 맞춰 편의점 도시락도 다양하게 들어온다. 올해 새로 등장한 여름철 별미 도시락은 '열무 비빔밥'이다. '어디 한번 먹어보고 팔자.'라는 점장마인드로 도착한 첫날 쓱쓱 비벼 먹어봤다.
한 술 떠보니 예상했던 것과 맛이 달랐다. 매콤하며 달짝지근한 고추장 맛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편의점 열무 비빔밥의 양념은 된장이었다. 담백하고 구수한 된장 맛에 열무김치와 야채의 기분 좋은 아삭거림이 입 안에 펼쳐졌다. 조금 짜다고 느껴질 쯤, 밥 사이에 숨겨진 감자가 간의 균형이 맞쳐줬다.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인데? 무슨 맛이지?' 잠시 혀끝과 기억을 더듬어보니 생각났다. 이 맛은 외할머니가 만들어 준 강된장 쌈밥의 맛과 닮아있었다.
된장의 구수한 테두리 안에서 각각의 식재료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강된장의 맛
외할머니는 다진 소고기, 감자, 파, 마늘, 두부, 버섯, 청양고추 등을 다지듯 작은 네모 모양으로 잘라 달군 뚝배기에 향긋한 들기름을 두른 뒤 타지 않게 부지런히 볶았다. 속 재료들이 반쯤 투명하게 익으면 3:1 비율로 미리 섞어둔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비빔밥을 비비듯 볶았다. 수분이 날아간 재료들이 탈 듯 말듯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면, 뽀얀 쌀뜨물을 살짝 부어 바글바글 끓여냈다. 특별하다고 말하기에는 재료와 조리법이 너무나 평범하고 간단했다.
잘바닥한 된장 양념이 혀 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강된장은 짭짤하면서 뜨겁고 고소했다. 속 재료들은 잘게 썰린 자신의 맛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어느 것 하나 빠지면 아쉬울 만큼 잘 어우러지는 단단함과 부드러운 식감이 씹는 즐거움을 줬다.
그럼에도 흔한 강된장과는 맛이 또 달랐다. 맛은 비슷했지만 외할머니만의 특이점은 마지막 한소끔 끓여낼 때 잣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잣이 강된장 안에서 톡톡하게 씹히며 입안의 짠맛을 희석시키고 특유의 고소한 향을 남겼다. 일상적인 강된장의 맛이 '잣' 하나로 고급스럽고 개운하게 마무리 됐다.
강된장을 먹을 때면 외할머니는 그 곁에 잘 익은 열무 김치나 쌈채소를 올려주셨다. 덕분에 식구들은 저녁상에 올라온 외할머니의 강된장을 여러 방법으로 즐겨 먹을 수 있었다.
짙은 갈색 빛으로 안달복달하듯 보글보글 끓는 강된장이 저녁 상위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면 제일 먼저 구수한 된장 내음이 코끝을 강타했다. 입안에 침이 절로 고이면 뜨거운 줄도 모르고 얼른 한술 듬뿍 떠 입안에 넣었다. 급한 수저질이 입천장을 데이게 만들 정도로 강된장의 향기는 매혹적이었다. 자주 먹는 맛이라 익숙한데도, 먹을 때마다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잠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오물오물 씹어 삼켰다.
뺏어먹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맛있는 음식이 마음을 재촉했다. 강된장을 푹푹 떠서 밥 위에 얹고 능숙한 수저질로 하얀 쌀밥과 쓱쓱 비볐다. 이대로 먹어도 좋지만, 잘 익은 열무김치를 척-하고 얹어 먹으면 더 할 나위 없었다. 강된장에 비벼진 밥이 불처럼 뜨거운 데 차가운 열무김치를 함께 먹으면 열무김치의 매콤하면서도 개운한 국물이 줄줄 흘러나와 입안의 열기를 식히고 목울대도 춤추게 만들었다.
아낌없이 담뿍 강된장에 비빈 밥이 조금 지루해지려는 찰나, 혀끝을 알싸하게 만드는 청양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먹으면 극락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맛들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맛있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 맛은 따로 있었다.
외할머니가 내게 알려준 것처럼 각종 쌈채소를 겹쳐 밥과 강된장 한 술을 담뿍 넣어 입이 찢어져라 쌈을 싸먹는 방법이었다. 쌈채소는 강된장의 짠맛을 중화시키며 강된장 속 익은 야채의 부드러운 흐물거림에 싱싱한 아삭거림을 더해 재밌는 맛이었다.
나를 키운 것은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상속세를 동네에서 제일 많이 낼 정도로 부유했던 외가의 형편이 IMF를 기점으로 기울어가며, 엄마는 장녀로써 집안을 다시 세워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 사이 우리 네 식구는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대신 외할머니가 날 맞아줬고, 내게 필요한 모든 일은 외할머니의 몫이었다. 언어나 행동의 습관, 입맛, 취향 등 나를 키운 것은 외할머니였다. 덕분에 나는 엄마가 간간히 사주는 패스트푸드와 외할머니가 해주는 계절 음식의 묘미까지 두루두루 맛볼 수 있었다.
여전히 계절이 다른 옷을 바꿔 입을 때면, 어린 시절 먹었던 외할머니의 음식이 생각난다.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외할머니가 집 앞마당에서 직접 캔 쑥이 들어간 쑥버무리와 냉이된장찌개가, 여름이면 물회와 비슷했던 매콤한 맛의 오이냉국, 외할머니가 직접 육수와 비빔장을 만들어 주셨던 냉면이 떠오른다. 가을이면 동네 뒷동산에서 내가 장난삼아 주워온 도토리로 만든 도토리묵무침이, 겨울이 오면 외할아버지가 특히 좋아하셨던 생태찌개와 북엇국 등이 선연히 그려진다.
외할머니는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허리와 손가락 마디마디가 개구리 손바닥처럼 꼬부라지기 전까지 매년 엄마와 함께 손수 고추장, 간장, 된장을 담그셨다. 더 어린 시절에는 그런 외할머니가 미웠다. 집이 망하기 전까지 유치원을 운영하느라 나와 놀아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쁜 엄마를 불러 힘들게 일을 시키고 옆에서 내가 우는 소리만 내도 지 애미 괴롭힌다며 눈을 매섭게 치켜뜨셨기 때문이다.
가세가 기울수록 외할머니의 허리 역시 더욱 더 구부정해졌다. 외할머니는 잠결에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매끼니 약을 한 움큼씩 먹으면서도 부지런히 우리에게 더 해주지 못하는 걸 안타까워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남은 논과 밭에 자식들에게 먹일 수 있는 무엇이든 조금 더 일구려고 애쓰셨다. 외할아버지가 벼와 깨,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을 집으로 가져오시면 외할머니는 어김없이 어린 우리들을 먹이려 하셨다. 형편이 가난해졌다 해서 마음까지 빈곤해지지는 않았다.
외할머니 집 앞마당에는 올망졸망한 장독대와 작은 텃밭이 있었다. 봄이 오면 외할아버지는 이 텃밭에 상추와 깻잎, 고추 모종을 심으셨다. 언젠가 옥수수도 심으셨지만, 그때쯤 키웠던 '폴'이라는 이름의 대형견 콜리가 싹을 모조리 뜯어먹어 수확에는 실패하기도 했었다. 텃밭을 꾸린 건 외할아버지셨지만, 더욱 애지중지 하는 건 오히려 외할머니였다. 아마도 우리 가족의 소중한 식량원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런 두 분의 마음 때문일까? 외할아버지가 기른 채소로 바글바글 끓여 낸 ‘강된장’에 앞마당에서 직접 키운 싱싱한 쌈채소와 풋고추를 따서 한상 차려내면, 고기반찬이 없어도 섭섭지 않았다.
외할머니의 쌈밥에서는 모래 알갱이가 씹혔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강된장 쌈을 싸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 찰나, “콰직-!” 돌 씹히는 소리가 났다. 큰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휴지를 뜯어 확인하는데, 돌이 아니라 모래 알갱이였다. 상추의 자글자글한 주름사이에 숨어들은 모래가 씻겨 내려가지 못한 것 같았다. 처음에야 그러려니 했는데, 며칠 사이 모래를 씹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외할머니는 강된장을 끓이는 날이면 직접 쌈채소와 풋고추를 따고 씻어 상에 올리셨다. 제아무리 연하다 해도 싱싱하게 자라나는 채소들을 꼬부라진 손으로 힘주어 따려면 많이 힘들고 아프셨을텐데 외할머니는 아픈 티 한번을 내지 않았다.
이런 외할머니의 모습에도 나는 쌈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나와 달리 아빠는 간간히 아그작- 소리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쌈밥을 삼켰다. “아빠! 모래 씹었어?”라고 묻고 싶었지만, 알은체할 수 없었다. 왠지 알은체를 하면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고, 또 언젠가 내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대신 먹기 전 쌈채소를 꼼꼼히 살펴보고 쌈을 싸먹기 시작했다.
특별한 건 없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외할머니의 음식.
우연히 편의점 도시락에서 마주한 내 어린 시절 추억과 맛이 반갑다. 오래 잊고 지낸 외할머니의 음식과 큰 사랑이 떠올랐다. 익숙하고 평범한 외할머니의 음식은 생각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건 더 이상 외할머니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였다.
어른이 되며 바쁜 세상살이에 온종일 끼니도 거른 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면 외할머니의 “밥은(먹었고)?”이라 묻는 안부인사와 따뜻한 밥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더 마음 아픈 건 그 시절 외할머니가 ‘어떤 음식을 해줬었지.’하며 떠올라도, 이제는 무슨 맛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맛이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 참 씁쓸하다.
외할머니가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먼 훗날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때에는 내가 외할머니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