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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에나 May 04. 2020

아삭아삭- 소리가 더 싱그럽게 맛있는, 오이소박이

오이소박이를 먹으며, 늦봄을 서서히 보내주고 다가올 여름을 기다린다.





 따뜻한듯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몇가지 봄의 야채들은 자신의 몸에 물을 가득 안은채 잘 익어간다. 매해 4월 말과 5월 초에 나오는 야채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오이'다.



매력적인 오이의 자태는 외모부터 남다르다. 콜라겐을 머금은 것도 아닌데, 수분감이 가득 차 올라서 탄탄하고 매끈하다. 색도 찐한 초록과 연두빛이 자연스럽게 그라데이션 된 예쁜 몸에, 자신이 장미라도 된양 오돌도돌한 돌기와 까칠한 잔 가시로 자신을 지킨다. 흐르는 물에 슬슬 잔가시를 밀며, 칼등으로 쓱쓱 긁어낸 뒤 한입 와앙-하고 베어물면, 오이 특유의 향이 입안에 시원함을 불러온다. 향에 취해 부지런히 입을 오물거린다. 단단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식감이 입을 부지런히 움직이게 한다. 씹으면 씹을수록 달아지는 오이의 채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오이는 무심하게 씻어 그대로 먹어도 좋고, 길쭉하게 썰어 쌈장이나 고추장을 푹 찍어 양념의 짭짤함을 더해 즐겨도 좋다. 오이는 참으로 멋지고 좋은 야채다.




사실 내가 아는 오이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따로 있다. 오이소박이를 담가먹는 것이다.


오이소박이는 재료 준비도 간단하다.

싱싱한 재철 오이와 첫 수확한 부추, 양파. 이렇게 세가지 재료만 있으면 된다. 재료는 단출하지만 아주 멋진 맛이 된다. 다만 맛을 이끌어내기위한 품이 좀 많이 든다..^^;






*하단의 다소 상세하고, 지겨울지도 모를 오이소박이 레시피는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우선 오이를 깨끗하게 씻어야한다.

껍질을 벗기지않고 사용하니, 베이킹소다를 솔솔 뿌려 손으로 힘차게 박박 문질러서 오돌도톨한 돌기와 잔 가시를 제거하며 씻는다. 굵은 소금을 사용해도 되지만, 오이 서너개만 닦아도 손바닥이 쓰리고 아프니 베이킹 소다를 추천한다.



오이를 다 씻은 후에는 냄비에 굵은 소금으로 으앗! 소리가 나올만큼 짠 농도의 소금물을 타서 센불에 끓인다.




 소금물이 팔팔 끓는 사이, 오이소박이의 묘미인 칼집 넣기를 해야한다. 

오이의 가지와 꽁지는 쓴맛이 나니 0.5cm정도 과감하게 자른다. 그후 남은 오이의 전체 길이를 보고 1/3 혹은 1/4 등분으로 재단하거나 아예 오이 통에 열십자() 칼집을 넣는다. 단정하고 우아해보이는 한정식집st로 가려면 오이 전체에 크고 길게 열십자() 칼집을 넣으면 되고, 일상에서 보관하거나 먹기 편한 방식을 따르려면1/3등분으로 재단하여 칼집을 넣으면 된다. 칼집을 넣을 때에 유의사항은 끊어먹으면 안된다. 는 것이다.

 소분한 오이의 위(,아래)로 1센치 정도 여유를 두고 칼을 찔러 넣으면 된다. 단번에 칼을 찔러 넣어야지 칼집 모양이 지저분하지 않고 예쁘게 난다.






 이제 칼집을 넣은 오이를 스텐 볼에 차곡차곡 쌓고, 팔팔 끓는 소금물을 부어 절인다.

 볼의 지름과 비슷한 크기의 접시로 덮은 뒤 무거운 그릇이나 통 같은 것으로 칼집 넣은 오이를 소금물에 푹 눌러 잠기게 한다. 절이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로 잡는다. 1시간 타이머를 맞춰두고, 타이머가 울리면 오이 하나를 꺼내 칼집 넣은 한쪽 다리를 살짝 휘어본다. 유연하게 휘면 그대로 소금물에서 꺼내 흐르는 물에 한번 헹군 뒤 물기를 꼭 짜면 되고, 툭하고 부러질듯 아슬아슬하면 30분 정도 추가로 절이며 추후 절임 상태를 보고 더 절일지 말지 판단한다.






오이가 소금 물에 절여지는 동안, 오이소박이 속을 만든다.

양파와 부추를 씻어 물기를 털고, 부추는 0.5센치의 길이로 쫑쫑 썬다. 양파도 썰린 부추의 크기와 비슷하게 초미니미 사각형 모양으로 썬다. 양파를 썰면서, 스스로 인내심의 깊이를 볼수도 있다. 일단 칼을 잘 갈고, 양파의 매운맛에 눈물 흘리지 않도록 창문을 열거나 초를 켜고 칼질할 것을 추천한다.







부추와 양파를 다 자르면, 이제 양념을 섞을 차례다.

커팅한 부추와 양파 / 고춧가루/ 멸치액젓(or까나리 액젓) / 굵은 소금(or한주 소금) / 미원(생략가능..하지만 우리집은 쪼끔 넣는다.) / 매실액을 적당한 비율로 넣어 서로 잘 섞이게 버무려 둔다. 바로 속을 넣으면 안된다. 마른 고춧가루가 양파와 부추의 수분으로 조금 불어 예쁜 빛깔을 낼 때까지 잠시 방치! 이 과정을 생략하면 양념이 겉돌고 고춧가루의 텁텁한 맛이 강한 오이소박이가 된다.


참고로 밀가루 풀을 쒀서 넣는 집도 있지만, 우리집은 넣지 않는다. 우리집은 아삭아삭하고 싱그러운 풋맛의 오이소박이를 좋아하며 오래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밀가루 풀은 김치의 발효를 돕는 유산균의 주된 먹이로 작용한다. 혹시나 푹익은 오이소박이 맛을 좋아한다면, 밀가루 풀을 쒀 넣으면 된다.






한시간 반 후 타이머가 울리고, 오이소박이 속재료 준비가 끝났으면 오이소박이는 거의 완성되었다.

절여진 오이를 한번 물에 헹군 뒤, 물기를 꽉 쫘준다.(절임물이 아주 짜지 않으면 물에 헹구지 않아도 된다.)  

오이의 칼집 사이로 속을 욱여넣는다. 소금에 절여져 수분 다이어트를 한 오이가 새오이로 다시 태어나듯, 다시 토실토실해질 정도로 속을 듬뿍 넣어준다. 차곡차곡 통에 담고, 반나절에서 하루쯤 실온에 숙성시켜 먹으면 된다. 익히지 않은 풋풋하고 싱싱한 오이의 맛을 오래 즐기려면 바로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며 먹어도 좋다.  







상큼하고 깔끔한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오이소박이



들어간 재료는 다른 김치에 비해 종류가 적지만, 맛은 그 어떤 김치보다도 매력적이다.

오이 특유의 싱그러운 초록의 향기가 부추와 양파, 고춧가루를 만나 서로 융화되면서 어우러지는 맛은 그 어떤 음식보다도 조화롭고 아름답다.


 매콤하면서도 상큼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맛이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오이소박이는 딱 지금 이맘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 괜히 제철 음식이 아니다. 늘어지는 봄의 나른함과 너무 급하게 다가오는 여름의 더위에 집나간 입맛을 다시 불러올만큼 매혹적이다.  


오이소박이는 한입 베어서 아삭아삭한 소리를 즐기며, 입으로 퍼지는 맛을 보고 또 오이 틈새에서 흘러나온 오이소박이 속을 하얀 밥에 쓱쓱 비벼 먹어도 참 맛있다. (쓰는 도중 군침이 돈 것은 안 비밀!)



 엄마는 이맘 때면 늘 '열무김치'와 '오이소박이'를 같이 담궜다. 익지 않아도 맛있는 오이소박이를 한두통 담가 반통쯤 먹다보면, 어느새 다가오는 더위와 함께 열무김치가 맛있게 익는다. 오이소박이를 먹으며, 늦봄을 서서히 보내주고 열무김치를 먹으며 다가올 여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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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철 식재료 라는 말이 무색한 요즘입니다. 우리는 사시사철 먹고싶은 음식을 아쉬움 없이, 조금 비싼 값만 치루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럼에도 우리가 '여름에 태어나면 더위를 덜 타고, 겨울에 태어나면 추위를 안탄대.' 라는 농담을 서로에게 던지듯, 야채와 과일에게도 다 자신만의 철(계절)이 있음을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재철의 식재료가 가장 건강하고, 가장 맛있다는 사실도요.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5월, 이때 오이는 참 푸르르고 맛있습니다.

4월 말부터 나오는 포동포동 수분 살이 오르고, 그 해의 가뭄 정도에 따라 쓴 맛이 좌지우지 되지만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달고 시원한 맛이 납니다. 올해에는 이 맛있는 오이를 가지고 무사히 오이소박이를 담궜습니다. 다사다난했지만, 그럼에도 호기롭게 오이소박이를 담굴 여유가 남아있음이 참 고마웠습니다. 사월 말, 엄마는 열무 김치를 담그고, 저는 오이소박이를 담궜습니다. 조금 힘이 들었지만,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절인 오이의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해, 제가 담근 오이소박이는 토실토실 수분이 넘치는 오이소박이로 완성되었습니다. 부지런히 먹고 나눠주어서 물러지기 전에 다 먹었습니다. 오이소박이 속이 좀 남아서 2차로 엄마가 담근 오이소박이는 엄마의 야무진 손길에 물이 꽉 짜져서 꼬득꼬득하면서 오래 두고 먹어도 맛있는 오이소박이가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꽉, 야무지게 짜려구요. (그런데 오이가 터지면 어쩌죠?)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오고 있지만,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유난떨지 않고, 이맘때 해야할 일들을 미루거나 포기하지 않고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이소박이를 담그는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그러한 날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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