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간단하게 시작되는 것.
나의 해외여행은 2016년 8월15일 도쿄여행을 마지막으로 멈춰있었다.
평일엔 연차내기가 힘든 직장과 주말마다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던 그런 일상의 싸이클이 문제였고,
더불어 일요일마다 축구를 하지 않으면 한 주를 실패한 것만 같았다. '그래 여행을 갈 바에는 축구를 하고 말지' 라는 나의 고집들과 국내에도 가볼곳이 많으니 괜찮다고 혼자 다독이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간절하게 여행이 가고 싶은 순간이 오면 햇수로는 3년이나 지난 도쿄여행 사진첩을 뒤적거리고, 작년 여름에 다녀온 부산 여행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게 전부였다.
20대의 마지막을 보낼 준비가 한창이던 2018년 12월 어느날.
일본에 여자친구가 있어서 길게는 3개월 텀으로 본인의 고향 가듯이 도쿄에 가는 가장 친한 동생 J군의 한 마디가 순간적으로 모든것을 결정 지었다.
"형, 나 1월 중순 쯤 일본 갈 듯 한데." 오전 업무가 조금 늘어질 때 쯤 날아온 J군의 카카오톡 한 개
"야 너 또 가냐?" 부러움 90퍼센트를 담아 결코 친절하지 않은 말투로 카카오톡을 이어 갔고,
" 응. 이번에 가면은 2주정도 있다가 올 것 같아. 어차피 1월초면 국시도 끝날 거고, 취업하게되면 여자친구 지금처럼 자주가서 만날 수 는 없을 것 같기도 해서." J군이 답 했다.
'아...정말 나도 가고 싶다' 라는 단어가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국내에도 가볼 곳이 많다고 정신승리로 2년을 지냈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형이 휴가를 갈 수 만 있다면 같이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이번에 카모 할인 행사 하는거 같더라고." J가 다시한번 연속으로 카톡을 보내며 말을 이어갔을 때, 카모 라는 단어에 온 정신이 집중 되었다.
카모는 일본의 최대 축구용품 전문점인데, 한국에는 입고되지 않는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축구용품들이 다수 포진 되어 있어서 축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에게는 정말 천국과 같은 그런 곳이다.
정말 도쿄를 제 집 드나들듯이 오가는 민욱이가 일본에 갈 때면 항상 내가 어느정도의 돈을 쥐어주고 카모에서 이쁜게 있으면 사오도록 부탁을 하고는 했다.
아무튼 카모도 문제지만 12월이 지나면 교회에서 맡고 있던 나름 중책도 임기가 끝나서 2019년부터는 주말마다 교회에서 예전 같이 오랜 시간 체류 하지 않아도 되었고, 2년만에 국내여행이 아닌 일본 여행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럼 몇 일에 출발 할건데?"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J군에게 물었다.
"아 형 갈거야?ㅋㅋㅋㅋㅋ" J군이 카톡으로 ㅋㅋㅋㅋ를 여러개 붙이며 나에게 되물었고, 나는 굳은 의지로 대답했다.
"응. 갈거니까 날짜 잡읍시다." 이어서 날아온 J군의 대답은 말풍선을 가득채운 ㅋㅋㅋㅋㅋㅋㅋㅋ 였다.
이미 업무는 뒷전으로 밀렸다. 아마 이 사실을 회사에서 알면 엄청 싫어하겠지만 어쩔텐가 난 일본에 가야하는데.
비행기는 무얼 타지? 몇시 비행기를 타지? 아 얼마 동안 가야하는거지?
일본에 가겠다고 이미 결정을 내려버리니 내 몸은 일본에 가있는 듯 했고, 2년전 그 일본어가 가득했던 거리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너가 그러면 국시가 1월초에 끝나니까 바로 그 다음주에 가자. 1월10일 출발로. 어때?" 내가 이번에는 설렘가득하여 친절함 100퍼센트의 카카오톡을 보냈는데,
"형 근데 휴가 갈 수 있어? 회사에 이야기 안된거 아니야?" 라고 정말 중요한 문제를 J군이 나에게 짚어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혼자 설레서 앞뒤 생각을 안했다.
휴가를 갈 수 있을지 걱정이 잠깐 들긴 했으나 연차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이것 저것 따지고 안보내는 회사는 아니었기에 용기있게 휴가계획서를 요청하여 작성했다.
이름 : 000 / 직급 : 00 / 일시 : 2019.01.10 ~ 2019.01.11 / 사유 : 연차
다 작성하고 나서도 근심 반 걱정 반으로 부장님께 내민 휴가계획서.
휴가계획서를 상사에게 제출 후 돌아 오는 대답까지 그 찰나의 시간이 가장 길다는 내 의견에 모든 직장인들이 공감하리라 믿는다.
"음~ 이틀 휴가 갈거야?" 부장님이 휴가계획서를 보시고 웃으시는 건지 무표정이신건지 알수 없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네. 휴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다녀와. 어디 좋은데 가나?"
"도쿄 가려고 합니다. 2년만에 다시 가보려고요."
"그래. 이번에 이직하면서 못 쉬고 왔으니까 이틀 쉬다 와."
꾹
휴가계획서에 부장님의 도장이 찍혔다. 공식적으로 휴가를 갈 수 있게 됐다.
더이상 긴 말이 필요 없는 단계 였다.
2019년 1월10일부터 1월13일까지 인천~도쿄 나리타 까지 왕복 비행기표를 그 자리에서 바로 결재했다.
나의 두 번째 도쿄여행이 2년만에 다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저 갈 건데요. 그쪽도 갑니까?" "예, 갑시다"의 대화 정도로 결정 지어버린 도쿄 여행.
이제 조금은 여행의 방향 정도는 잡아야 했다.
사실 나는 군대를 전역한 2012년 4월 이후부터 5년 정도는 자전거를 타고 기본 2박 3일로 여행을 다녔었다.
중간중간 머무를 숙소만 결정하고 최종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여행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표 끊고 남들 다하는 거창한 여행 계획을 세워 본 적이 별로 없다.
밤에 잠자고 일어나서 아침부터 해지기 전까지 계속 자전거만 타다가 중간에 이쁜 풍광이 보이면 자전거 세워서 사진 찍고, 힘들면 잠깐 자리에 앉아 초코바를 씹으며 쉬는 것이 5년간 해 온 나의 여행이었다.
심지어 2016년에 도쿄 여행 때도 나는 계획을 크게 세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같이 갔던 멤버 중 한 명이 이번에 같이 가기로 한 '그분' 이어서 모든 안내를 다 받았었다.
와 생각해 보니 되게 진상이었다.
그렇다고 또 내가 아예 여행 계획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름 또 부산 출신이라고 작년 부산여행을 J군과 함께 갈 때에는 내가 다 안내했으니 둘 다 한 번 씩 도움받은 셈 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J군은 여자 친구가 도쿄에서 거주를 하고 있으니 여행 중에 묵을 숙소가 필요 없었다.(심지어 이제는 그 집이 본인 집이라고 언급하는 단계다.)
각자 밤에 알아서 쉬다가 접선 장소만 정하고 다음날 아침에 약속 장소에서 만나는 방향으로 하자고 했기에 나만 숙소를 잡으면 되었다.
그래서 저녁시간에는 나 혼자 보내야 했기에 이왕 가는 거 도쿄에 여행 온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서, 비행기표를 결재한 바로 그다음 날 신오쿠보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 히카리 하우스에 묵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 일본 여행 계획은 크게 네가지, 동선은 큼지막한 곳으로.
-계획
1. 주요 관광지는 어쩔 수 없지만 먹는 것 만큼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곳은 피하자.
2. 카모 샵에 가서 축구용품에 파묻히자.
3. 온천에 가보자.
4. 츠타야 서점 구경.
퇴근후에 함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며 나온 계획이었다.
"야 근데,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는 곳에 가서 먹게되지 않냐?"
"에이 그런 음식들은 다 한국인 입맛이야. 정말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어. 내가 형 인생라멘 집을 데려가줄게."
많이 다녀 본 사람만이 나오는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 돌아왔고, 어디 한번 믿어보기로!
- 같이 운동하며 결정된 대략적인 동선
1일 차 : 나리타 - 도쿄역 - 이케부쿠로 - 신오쿠보(레마숙소) - 스가모(J군, 레마 접선) - 아사쿠사 - 오다이바
2일 차 : 하라주쿠 - 시부야 - 다이칸야마 - 이케부쿠로
3일 차 : 2일 차 때 결정.
4일 차 : 레마 한국 귀국.
나의 3박4일 일정. 이제는 떠나는 날 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끝.
그 날이 얼른 오게 해주소서.
2년전 도쿄여행은 8월에 갔었기에 다음번에 도쿄에 갈 땐 겨울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하면 보통 '일본의 겨울' 하면 나는 중학교 때 본 일본영화 '러브레터'의 마지막 장면과
'무한도전 오호츠크 해 편' 을 떠올린다.
어디가 되었던 간에 눈에 온 세상이 뒤덮여 있고 나뭇가지에 눈이 걸려있다가 바람이 불면 눈송이가 흩날리는 그림같은 장면을 보고 싶은 로망이 나에게는 있었다.
그 로망은 도쿄말고 삿포로에서 실현하는 게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도쿄에서도 그런 로망을 실현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나.
그런데 며칠 전부터 살펴본 도쿄 날씨는 허파에 바람 들어가는, 평소에는 걷기 딱 좋은, 나는 한국에서 저 정도 였으면 당장 러닝화를 신고 한강으로 달려나가 러닝을 했을 날씨였다.
로망은 둘째 치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 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출국 하루 전날 캐리어에 있는 짐들을 넣었다가 뺐다가를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의 사랑 롱패딩을 가지고 갈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캐리어와 씨름을 하다보니 시간은 내가 취침하기로 한 10시를 훌쩍 넘겨 얼른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지 않으면 첫날 여행을 망칠 수도 있었다.
J군과 새벽 3시30분에 항상 운동갈 때 만나는 빵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한 후,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은 잠깐 접어두고 눈을 붙였다.
내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뀐 것을 아직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 채 10일이 지나 학수고대하던 두 번째 도쿄여행의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