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빅스 Feb 18. 2019

2. 도쿄의 일상으로

두 번째 도쿄 여행의 시작

1) 공항으로


잠들기 전에 나름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 잠에 들었다.

알람을 5분 간격으로 계속 울리도록 만든 것은 당연했고, 훈련소에서 아침 기상 곡으로 쓰이던 '해병대 군가' 팔각모 사나를 알람으로 설정해 두었다.

전역하고 한 3개월 정도까지는 오전에 '팔각모 사나이'만 들으면 벌떡 일어나던 기억이 있어서 몇 년 만에 히든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첫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잠깐 눈 붙인 사이에 나랑 J군 둘 다 늦잠을 자서 도쿄에 가지 못하는 끔찍한 꿈까지 꾸었지만, 다행히 '팔각모 사나이'를 듣고 잘 일어났다.


새벽 2시 30분.

침대에서 나와 잠깐 씻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오니 시계 소리와 냉장고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날 시간이어서 조용하게 준비해야 할 줄 알았는데, 거실에서 아직 동생과 엄마는 잠을 청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오랫만에 해외 여행을 가는 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먹고 나갈 수 있는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계시면서, 동생과 함께 모녀지간의 대화의 장을 열고 있었다.

아무튼, 잠에 깊게 빠져 들때 쯤 깨서 그런지 샤워를 했는데도 쉽게 잠에서 깰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캐리어를 점검한 후, 엄마가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J군에게 생존 확인 차 카카오톡을 보냈다.

"생존 여부 확인바람."

카카오톡을 보내고 몇 초간 악몽이 현실이 되지는 않겠지 생각했지만 생각을 마치기 전 빠르게 답장이 왔다.

"대기중. 3시 30분 약속 장소에서 봅시다." J군의 간단명료한 답장.


이제는 집에서 떠나야 할 시간.

재밌게 놀다 오라는 엄마와 동생의 배웅을 맞으며 3 일 뒤에 양손 무겁게 돌아오겠다고 작별 인사를 한 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새벽공기의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무래도 얇게 입은게 맞는 것 같았지만 조금만 참으면 영상 8도라는 기적의 날씨를 맛 볼수 있는 일본으로 이동하니 공항까지만 참자.

가방에서 셀카봉을 꺼내어 동영상을 켜고 인터넷방송 BJ처럼 "오늘 저는 여행을 갑니다"를 시작으로 이 얘기 저얘기를 혼자 하면서 J군과 만나기로 한 빵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일찍 나왔는지, J군은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공항셔틀을 타기위해 우리는 택시를 타고 종합운동장역으로 바로 출발했다.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던 종합운동장역


집에서 버스로도 평소에 10분이면 도착하는 종합운동장역을 새벽3시30분에 출발했더니 너무 일찍 도착 해버렸다.

새벽 4시5분에 공항셔틀버스가 오기 전까지 약 25분 가량을 추위에 떨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은 곧 떠난다는 따뜻함이 있어서 그런지 참을만 했다.


그 가슴 한켠의 따뜻함은 지금처럼 이렇게 해외로 향해서가 아니다.  

오래 전 나만의 여행이었던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며 느꼈던 자유를 다시 곧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 페이지 '여행에 미치다'를 들여다 보면 여행에 대한 욕구가 가끔씩 머리 끝까지 차오를 때가 있었다.

사실 나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독였을 뿐, 그 곳에 올라오는 여행기와 영상들은 말 그대로 사람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페이지 이름대로 미치게 만들었다.

2년만에, 햇수로는 약 3년 만에 떠나는 나도 누군가에게 별 것 아닌 이 여행기가 떠나고 싶도록 미치게 만들 수 있을 것 이다.



2) 안녕, 도쿄

 

비행기에서 약 세시간 가량 있었을까?

곧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 나옴과 동시에 나는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빼꼼 내밀며 아침을 알리려고 하는 태양, 그 빛을 배경으로 펼쳐진 일본의 목요일. 하늘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작품이었다.

여행의 가장 설레는순간. 목적지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아닐까


허리가 아프다.

제주항공의 비좁은 좌석에서 편안하지 못한 자세로 세시간을 견디고 공항에서 도쿄역까지 정자세로 한 시간을 버스를 타고 온 탓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11시. 드디어 도쿄에 도착했다.

이곳 저곳 뭉친 것 같은 찌뿌둥함을 기지개와 함께 날려버린 후 주변을 둘러 보았다.

캐리어를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 자신의 캐리어를 가져가는 승객마다 "감사합니다." 라며 인사를 해주는 게이세이버스 직원들.

북적거리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서있으니 도쿄여행이 시작된 것이 드디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2년만에 다시온 도쿄. 날씨가 흐리다


햇빛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날씨를 기대했지만 구름이 가득하다 못하여 흐린 날씨는 나를 조금 우울하게 만들 뻔 했다.

그래도 어디든 돌아다니고 싶게 만드는 날씨었기에 오늘 일정을 떠올리고 다시 좋은 기분을 되찾았다.



3) 완벽한 휴가의 시작은 먹거리


"자, 인생 라멘집으로 얼른 안내해봐." 새벽에 샌드위치만 먹고 이렇다 할 요기거리가 없어서 배도 많이 고팠다. 얼른 밥이 먹고 싶었다.

"가시죠. 저도 배가 무지하게 고픕니다." J군도 배가 많이 고팠던 탓인지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익숙하지 않은 일본어가 가득한 역사를 지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우선 라멘집과 J군의 집(본인 주장)이 있는 이케부쿠로 역으로 향했다.


"야 J. 얼마나 맛있길래 내가 한국에서 다신 라멘을 안먹는다고 자신하냐?"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랬고 일본에 도착한 때 부터 점심을 먹게 될 라멘집에 대해서 J군은 열변을 토했다. 정말 자기가 먹어본 라멘중에 가장 맛있었다니 너무 궁금했다.

"일단 가보면 돼 형. 국물이 죽여줘." 글로 J군의 당시 표정을 정확하게 표현을 할 수 없는게 아쉽다.

나에게 말할 때 표정은 거의 마카롱의 단 맛을 보았을 때 만큼의 행복한 표정이었다.

"라면이 거기서 거기지. 뭘 특별한게 있다고."

"아니야. 거기는 정말 달라. 내가 일본에 오래 왔다갔다하면서 여기저기 라멘집을 많이 다녀봤잖아. 일단 긴말하지 말고 배를 채우면서 음미하시죠."


허기를 느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창밖의 일본의 경치도 구경하다보니 금방 이케부쿠로 역에 도착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묵직한 캐리어를 들고 J군이 안내하는 곳으로 졸졸 따라갔다.

2년 전에 곤약젤리를 잔뜩 샀던 과자상점을 지나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케부쿠로의 골목을 걷다보니

드디어 약 2주가량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내 인생 라멘집이 될 곳에 도착했다.


한국의 라멘집은 보통 화려하게 장식을 해놓는다. 그래서 가게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맛있는 라멘이 나올 것만 같이 생긴 라멘집들이 많고 나는 그런곳이 익숙했다.

하지만 이곳은 그냥 신경 안쓰고 지나가면 라멘집인지 모를 정도 였다.

정말 이 동네 사람들 만이 알 수 있거나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모를, 이케부쿠로 한 구석에 위치한 작은 라멘집이었다.

대부분의 일본 가게와 마찬가지로 무인식권기로 주문하는 방식이었지만, 메뉴는 조금 특이했다.

기호에 따라 토핑을 추가하는 것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국물 색을 흑과백 중 택1, 고사리가 첨가되거나 차슈가 한국에서의 두배정도 들어가는 스페셜메뉴.

나는 J군의 추천으로 검정 국물 라멘을 선택했고, 사이드메뉴로  라멘에 빠질 수 없는 교자를 선택했다.


최고의 맛

자리를 잡고 앉자 양 옆자리와 주방에서 퍼져오는 라멘 향기 때문에 배가 더 고파졌다.

정말 인터넷에서 한동안 떠돌던 그 전설의 짤이 떠올랐다.

'빨리 라면 끓여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얼마나 지났을까, 내 인생라멘이 될지 그저 한국에서 맛볼 수 있는 라멘이 될지 결정될 운명의 순간이 테이블 앞에 펼쳐졌다.

일단 비주얼은 합격.

적어도 내가 다녀본 라멘집에 한해서는 흑라멘은 본 적이 없었다.

국물 한 숟갈.

아 이맛은! 마치 요리왕 비룡이 요리한 음식이 입에 들어갔을 때 나오는 BGM이 내 머리속에서 울렸다.

정말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진한, 과연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국물맛 이었다.(JMT)

차슈의 굽기와 육즙 또한 일품이었다. 보통 내가 먹었던 한국 라멘집은 차슈가 보쌈같았거나 너무 많이 구워서 그냥 떠다니는 고깃덩어리인 경우가 많았는데 아 여기는 정말 J군이 나의 인생라멘집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때, 형? 맛있지?" J군이 그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어왔고 그냥 그자리에서 망설임없이 인정해버렸다.

"어. 인정. 진짜 맛있다. 한국에서 먹던거랑 정말 틀려." 나는 그렇다. 보통 맛있는 음식을 한번 맛보게되면 그 음식이 질릴 때까지 일주일에 1회씩 방문한다. 여긴 내가 1주일에 한번 씩 올 수 없으니 그냥 이 맛의 여운 그대로 까먹지 않게 한국에서는 라멘을 자제해야겠다.


정말 나는 1월13일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 아직까지 라멘을 먹고 있다. 혹시나 한국에 인생 라멘집 이라고 자부하는 집이 있으면 소개해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정신없이 먹다보니 10분도 안되서 라멘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려고 했다.

"형, 여기 면 리필 돼. 양 적으면 더 시켜먹어." 잊을 수 없는 맛에 이어 서비스까지 완벽한 라멘집이로다. 내가 평생을 기억할 라멘집이 되었다.

J군과 함께 면을 리필하여 또 다시 맛있게 라멘을 먹었고, 정말 새벽부터 주린배를 움켜잡고 온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역시 맛있는 먹거리가 있어야 행복하다.


역시 라멘은 일본이다! 

하지만 나의 인생라멘집이 된 이 곳 사장님은 중국인이다.


4) 또 다른 일상


나의 인생라멘을 먹고 J군은 짐을 풀러 나를 이케부쿠로역 까지 바래다 준 후에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숙소가 있는 신오쿠보를 향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두번 째 일정인 온천에 가기 전 각자 집에서 짐을 풀고, 준비가 되면 스가모역에서 만날 예정이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오후 1시를 조금 넘긴 시각.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 일상으로 복귀하는 시간이다.

지하철 밖은 흐린날씨가 조금씩 걷히며 따뜻한 햇살이 지하철 창으로 스며 들어오고 있었다.

혼자 지하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의 목숨과도 같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한국음악을 들으며 지하철 안을 살폈다.

슈트를 입고 어딘가로 전화를 하며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가는 직장인, 서로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놀러가는 것 같은 커플,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 등등.

어딘가 이질감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보내고 있는 일상에 나는 재미를 위해 여행을 왔으니까.

묵직한 캐리어에 푹 눌러쓴 모자 그리고 편한 복장. 뭐 어느 누가봐도 나는 여행온 사람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곳에 여행을 온 사람 이지만, 일본의 일상에 도착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나만의 일상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이기도 하다.

나는 도쿄에서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 중 아마추어다. 많이 보고 천천히 보며 많은 것을 눈에 담으며 가슴으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이 곳에 온 의미가 있다.


그래. 많은 것을 보고 가자.


생각이 흐르다 멈출 때 쯤, 신오쿠보역에 도착했다.

또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밖으로 나가 나만의 일상을 3일동안 열심히 그려 봐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