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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빅스 Mar 17. 2019

3. 안녕, 도쿄

1. 도쿄의 서울, 신오쿠보

 드디어 3일동안 나의 동네가 될 신오쿠보에 도착했다.

역의 입구는 한 개 였고 밖으로 나오니 사람이 굉장히 북적북적한 번화가였다.

이 무거운 캐리어부터 얼른 숙소에 던져두고 두 손이 모두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라멘 먹고 난 뒤부터 계속 생각했다.

구글맵을 열어서 '히카리 하우스'를 검색하고 핸드폰 화면 한 번, 앞에 사람이 오나 한 번 보며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서 신호등 앞에서 멈추게 되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내가 일본에 온게 맞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잘 못먹지만, 여동생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때 배달음식으로 시켜먹는 엽기떢볶이가 한글 간판으로 떡 하니 신오쿠보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고, 명량핫도그의 복제판 같은 종로핫도그, 서울에서도 인기가 많은 새마을식당.

종로핫도그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심지어 이 동네는 한국에서도 자주 들리는 KPOP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도쿄의 코리아타운 이라는 소리를 듣고 오긴 했는데 내 예상보다 더 한국 같았다.

마치 뭐랄까. 여기는 일본이 아닌 느낌?

레드벨벳의 빨간 맛이 들려서 흥을 주체를 못하고 따라부르며 걸어 가는데 한국어도 굉장히 많이 들렸다.

'내가 지금 일본 여행을 갔다가 방금 귀국을 했나?'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 였다.

(물론 일본사람도 엄청 많았다. 그냥 사람이 많은 동네)

역에서 걷기 시작해 10분정도 지났을 쯤 '히카리 하우스'에 도착했다.


3일동안 나의 집이 되어준 히카리 하우스


히카리 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고, 익숙치 않지만 제일 많이 들어본 일본어가 내 귀에 들어왔다.

"이랏샤이마세."

"아.. 저 예약 했는데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왠지 그냥 한국어로 대답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 그러세요? 어서 오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나 일본에 온거 맞지?


2. 사쿠라 온천

 체크인을 본토 발음으로 기가 막히게 한 뒤 방으로 들어와 새벽부터 끌고다닌 묵직한 캐리어를 드디어 손에서 놓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기지개를 켜고 잠시 동안 온 몸의 힘이 빠져나간 그 나른함을 즐겼다.

새벽2시부터 일어나 지금까지 제대로 쉰적이 없었지만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짐 정리는 저녁에 일정을 다 마친 후에 하기로 하고 J군에게 연락하여 다음일정을 빠르게 진행하자고 연락했다.

다음 일정은 눈송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면 눈꽃이 날리는 나무아래서 뜨뜻하게 몸을 지지는 로망가득 내 사심이 담긴 온천이 아닌, 그냥 영상 8도에서 적당히 춥고 적당히 따뜻한 스가모 역에 위치한 '사쿠라 온천'에 가는 것 이었다.

뭐 내가 생각하는 로망은 다음번 일본여행 때 이루고 말겠다.

거리로 나오니 트와이스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여행에 와서 한껏 신이 나있던 나는 또 흥얼 거리면서 신오쿠보 역으로 걸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얼마 지나지 않아 J군에게 카카오톡이 하나 왔다.

"어디십니까."

"지금 신주쿠 지나는중."

"어 나도 신주쿠 인데."

둘이 같은 열차를 타고 있었던 것 이었다.

그렇다면 목적지에서 접선할 필요도 없이 그냥 지하철 안에서 접선하고 스가모 역으로 향했다.

아까 잠깐 얼굴을 내밀었던 해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스산한 일본 날씨가 느껴졌다.

사쿠라 온천으로 가는길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정말 길거리에는 나와 J군의 크지 않은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지나가는 길에 중학교 수업이 끝났는지 하교 하는 학생들 몇명과 뽀송뽀송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 무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분명 사쿠라온천에 다녀오는중 이라고 확신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찜질방으로 몰려가는 어머님들의 특징은 다 똑같나 보다.









사쿠라 온천

오사카 성 담벼락 같은 길을 지나 외관부터 고급스러운 '사쿠라 온천'에 도착했다.

사쿠라 온천의 위치만 봤을때는 그냥 스가모역 인근에 있는 어느 골목의 동네목욕탕 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동네목욕탕이라는 생각은 곧바로 사라진다.

아무튼 화려한 인포메이션부터 라커룸을 거치면 여러개의 노천탕을 만나 너무 일찍 시작한 오늘 하루의 피로를 씻겨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 이다.


3. 너무 일찍 시작한 하루.

가끔 내일 할 일이 생각나서 밤잠을 설치거나 생각보다 일찍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 었다.

더군다나 새벽 2시반에 일어나서 스가모 온천에 오기 전까지 밥먹을 때와 숙소에 짐을 두기 전까지는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한 시간 하고도 30분을 노천탕을 무릉도원의 신선처럼 물이 구름마냥 그 위에서 동동 떠다니다 나오니 몸은 개운했지만 온갖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까의 스산한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노을이 비추며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있었다.

바람이 조금 차가웠지만 한국에서 최근에는 보기 힘든 파란 하늘을 보았다.

이런 날씨는 일본이 너무 부러웠다. 지금쯤 한국은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은 날씨거나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곳 도쿄역시 대도시라 차도 많이 다니고 사람도 많은 도시이기에 산 속 같은 맑은 공기는 아니겠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맑은 공기와 파란하늘은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마음 껏 즐기고 가고 싶었다.


아사쿠사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나와 J군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꼈다.

온천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J군은 잠들면 못일어 날거 같아서 밤을 새고 집에서 나섰던 것이었고, 난 또 평소보다 훨씬 일찍일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들면서도 바짝 긴장하며 눈을 감았었다.

일본에와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인생 라멘도 먹었겠다, 온천에서 몸도 따뜻하게 녹였겠다, 온갖 긴장이 다 풀어졌고, 아사쿠사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지하철에서 꾸벅 꾸벅 졸았다.

마치 한국에서 어디론가 먼 곳으로 갈 때 목적지에 도착전까지 맛보는 꿀맛같은 단잠이었다.



그렇게 아사쿠사역에 도착해서 스카이트리를 저만치서 바라봤을 때의 시각은 오후 5시였다.

일본은 한국보다 해가 빨리 지나보다.

조금 쌀쌀해지는 바람을 맞으며 아사쿠사로 향하니 도쿄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 와 있는 듯 했다.


빨갛게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조명이 켜져있는 아사쿠사의 상점들과 신사는 너무나 멋진장면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추위는 어느새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마 최근 몇년간 내 눈으로 본 여행지의 모습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아사쿠사가 될 것 같다.


너무나 멋진광경에 추위를 잊다가 조금씩 다시 추위를 느낄때쯤 나와 J군은 너무일찍 시작한 하루를 다시한번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텐션'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서 이제는 서로 휴식을 취해야 할 것만 같았다.


지금 그 날을 다시 회상해보면, 저녁시간에는 '아사쿠사'를 본 이후에 서로 암묵적으로 집으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은 오후 5시40분. 원래 계획은 아사쿠사를 본 이후에 오다이바 까지 구경한 후에 서로 헤어지는 것이 었는데 계획의 수정이 필요했다.

"우리 오다이바 오늘 못 갈것 같지 않아?"

"더 이상은 무리야. 형 우리 내일을 위해서 얼른 쉬는게..."

나와 J군의 당시 얼굴은 정말 가관 이었다고 밖에 표현이 안됐다.

얼굴은 온천욕으로 인해서 뽀송뽀송한 반면 다크서클은 이미 턱 끝까지 내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배까지 고파오는 터라 간단하게 요기거리를 하기 위해 아사쿠사역 인근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하나씩 물고 내일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내일 그러면 카모를 가봐야 하니까 오픈시간에 맞추어서 하라주쿠역에서 만나는거로 하자."

J군이 내일의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다.

"좋아. 그러면 내일은 하라주쿠 카모에서 먼저 구경하고 이것저것 구경하는거로!"


내일은 내가 도쿄에 온 이유라고 할 수 있는 '하라주쿠 카모'에 가는 날이다.

"형 근데 내일은 우리 일정 되게 빡셀걸? 엄청 걸어야해서 오늘 진짜 푹 쉬어두는게 좋을걸?"

하긴. 계획대로라면 두번째 날 일정은 계속해서 걷는 것의 연속이었다.

아무튼 대략적인 일정을 이야기하고 내일 오전 10시에 만나기로한 뒤,

빠른 체력 회복을 위해서 아사쿠사역에서 J군은 곧장 이케부쿠로 역으로 나는 신오쿠보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다시 탔을 때 한국에서의 습관이 어디가질 않아 습관적으로 아침에 도쿄에 도착 했을 때 처럼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8시를 조금 넘어가는 시간.

앉아서 책을보는 사람,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 술 한잔 간단하게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

오늘 나만의 일본에서 그렸던 일상은 무지하게 피곤한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많이 남을 하루 였다.

아직 일본에3일은 더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한글이 가득한 신오쿠보에 내려 숙소로 돌아가다 말고 한국에서 먹던 핫도그가 먹고 싶어져서

'종로 핫도그'에 들렸다.

"이랏샤이마세." 점원의 어서오시라는 일본어.

"저 감자 핫도그 하나 주세요." 그냥 서스럼 없이 한국어로 주문을 하자 놀라지도 않는 점원이 1분도 안되어서 나에게 핫도그를 한 개 내밀었다.

전혀 새롭지 않은 맛의 핫도그를 한입 베어물며 숙소로 향하다말고 맥주 세캔과 그라탕 한 개를 샀다.


히카리하우스에 도착하니 아까 오전에 봤던 직원분이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고, 그대로 샤워를 하고 나와서 한국에서 맛보던 샤워후의 맥주한캔을 그라탕과 곁들여 즐겼다.


맥주 한 캔 후에 한 캔을 더 먹고나니 오늘의 피로는 정말 극한을 향해 달려갔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난 도쿄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 지었다.


너무 정신 없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기억에 많이 남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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