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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닐 Mar 23. 2024

문화 박물관에 갔다가 홍콩 야경보며 오열한 날

내 홍콩시티 니 진짜 좋아했다고!

https://youtu.be/JEsWJJbO7-0?si=3RIs0rsywUXzOsQp 
유튜브에 업로드한 홍콩여행 기록영상..


- 4일차 또 아침 차찬텡을 즐겨보고자 캄와카페로 향했다. 캄와카페는 홍콩배우... 누군가가 좋아한다는 곳인데, 아무튼 파인애플번(뽀로바우)으로 유명하다. 뽀로바우가 맛있긴 한것 같았으나 역시나 too 한국인인 나에게는 아침부터 빵이란.. 유전적으로 도통 맞지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날 아침이 아니면 이 곳을 올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반은 억지로 먹으면서 빵 좋아하는 우리집 빵순이랑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춤을 추면서 먹었을텐데, 라는 생각으로 목을 넘겼다. (돌아보니 홍콩에서는 약간 억지로 먹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네.. 분명 미식의 나라인데...)


- 이 날은 저멀리 문화박물관이 가장 중요한 스케쥴이었는데, 어차피 올라가는길에 황대선사도 들렸다 갔다. 그렇게 큰 도교사원이라고 하니 한번쯤 구경할만 했고, 정말 꼭 더 봐야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도 끊이지 않을만큼 더위가 극심했다. 절대 절대 여름에 낮에 가서는 안된다. 인파가 굉장히 많았는데 대부분 양산을 필수템으로 장착하고 있었고 아니면 손풍기라도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나처럼 더위에 익어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찜질방을 제외하고 야외에서 이렇게 땀을 쏟아낸건 처음이라 벌-건 얼굴 인증셀카도 한장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무언가를 염원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뭔갈 나도 빌었을텐데, 홍콩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이미 속세를 떠난 중 마냥 마음이 가벼웠기 때문에 무언갈 빌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니면 더워서 생각이 안났나?) 


- 문화박물관으로 가는길에는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풍경 안을 지나치게 된다. 강을 옆으로 두고 산책길이 길게 나있었고 학교도 있어서 점심시간에 나와서 농구하는 고등학생들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낯선 여행지에서 동네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단편적으로 발견하는 것은 항상 좋다. 나는 낯선데, 그들은 익숙한 곳이라는 게 새삼 기묘하다. 


- 문화박물관은 외관이나 내부나 평범한 느낌이다. 아무튼 완전한 무료 전시이고, 총 3층이 전시관이어서 볼 것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곳곳에 분포하고 계신 직원분들도 굉장히 친절(에 약한 나)하다. 문화 박물관은 주로 홍콩의 역대 문화컨텐츠들을 크게 영화, 드라마, 음악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는데, 내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은 단연 영화 전시관이었다. (+기타, 경극 전시관에서는 오래된 역사때문에 거의 역사박물관 같았고 그것이 흥한 규모가 내 생각보다 훨씬 커서 인상적이었다. 홍콩 무협소설의 대가로 유명한 소설가의 특별전도 있었고, 장국영 특별 전시관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 쪽은 저작권 때문에 촬영은 전혀 허가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본 것도 있다. 

영화 드라마 전시관 입구에 있던 영상.. 엄청 화면이 컸는데 다 못담았당

- 그 시절 홍콩의 부흥은 미디어 컨텐츠 만으로도 증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줄곧 홍콩 미디어의 판이 굉장히 컸고 소비와 공급이 둘다 200% 였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전시되고 있는 것들 중 내가 알거나 본 작품은 반의 반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눈에 익은 배우, 감독을 보는 재미, 그리고 내가 모르던 홍콩영화의 장면들이나 이미지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간 가는줄을 몰랐다. 한쪽에 왕가위 영화들의 포스터가 모여있는 곳이 있었는데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중경삼림의 당시 실제 포스터가 크게 프린팅 되어있었다.. 큽. 정말 갖고싶네요.. 굿즈로라도 파시면 안되나요...

 

요거는 장국영 특별 전시 모습..

- 영화, 드라마 전시관을 지나면 음악 전시관이 나오는데 여기도 재미가 쏠쏠했다. 시대별로 홍콩의 대표 음악 앨범들을 전시해두고 스크린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었다. (광둥어 노래 뿐만 아니라 만다린 음악들도 많이 전시되어있다) 

너무 많은 음악들이 있어 다 들어볼 수 없지만 앨범 커버를 보고 궁금해지는 것들은 찾아 들어봤는데, 그러다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을 발견했다! Rotus라는 밴드의 just a little 이라는 곡이다. 이때 (60년대) 홍콩도 비틀즈같은 브리티시 밴드 음악의 영향을 받아 서구적인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한다. 로투스도 그 중 한 밴드이고 유명세는 어느정도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명곡은 유명세랑은 상관없이 빛나는법... 우연히 찾아들은 노래가 이렇게 좋다니.. 내가 찾아들을 홍콩 음악이 하나 더 추가되어 기뻤다. 


카우키를 찾아가던 도중 발견한 골목이었던것 같다..

- 문화 박물관에서 오랜 시간을 거닐었고 그 사이에 홍콩에 대한 친밀감과 자부심같은게 (?) 풀충전 되었던것 같다. 혼자하는 여행이 이래서 좋은것 같다. 관심이 가는 것들에 하염없이 머무를 수 있고 그것에 대한 여운을 계속 지니면서 곱씹을 수 있다는 게. 

- 박물관을 나와서 홍콩섬으로 향했다. 카우키 식당에 가서 입구와 가까운 테이블에서 두팀의 다른 손님들과 합석해 앉았다. 여기서 꼭 먹어야한다는 카레국수를 먹었다. 음료로는 메뉴판에 영영이라는 음료가 있어서 한번 시도해봤다. 밀크티에 커피를 합친건데 오묘한 맛이었다. 좀 더 씁쓸한 더위사냥 같은 맛. 

- 그리고 피크 트램을 찾아가는데 더위도 먹고 길을 헤매서 하마터면 풀충전된 홍콩에 대한 애정이 사그라들뻔 했다. 한번은 마을버스를 잘못 탔고, 어찌저찌 두번째 마을버스를 탔는데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에어컨 방향을 내 쪽으로 돌려주면서 웃어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우여곡절 끝에 피크트램 승강장을 찾았고, 미리 클룩으로 프리패스? 티켓을 사놨기때문에 줄은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다. 꽤나 경사진 산중턱을 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갔고 꼭대기에 가까운 곳에서 내렸다. 비수기도 아닌 평일저녁인데도 사람이 꽤 많았고 이 시간에는 더 이상 덥지 않았다.. 



- 해가 지기 직전에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여섯시 쯤 부터 홍콩의 전경을 감상했다. 구룡반도 끝쪽에서 홍콩섬을 바라보는 것과 홍콩섬에서 구룡반도 쪽을 바라보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바닷가 부근에서 홍콩섬을 바라보는 것은 대관람차나 요트를 중심으로 여유롭고 낭만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한눈에 바라보면 홍콩의 일상들이 치열하게 일구어온 아름답고 바쁜 역사가 압축되어 보여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서 무수히 많은 바쁜 일상의 빛들이 더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 도시의 전경을 보면서 전에없이 마음이 울렁이기 시작했다. 황홀했고 감동적이었다. 한번도 야경에 특별한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는데, 내가 이렇게 홍콩의 야경을 혼자 감상하면서 왜 이렇게나 감동을 받는건지 생각해봤고 그 때 내가 홍콩을 너무 사랑하는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문화 박물관에 다녀오고 나서 마주한 야경이라 어떤 벅참이 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 처음에는 캠코더에 야경을 몇번이고 담았고, 나중에는 그냥 이어폰을 꽂고 한 자리에서 그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다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홍콩 음악들을 머리가 울리도록 들으면서 야경을 보는 그 순간이 말도 안되게 좋아서 그 느낌을 평생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의 두시간을 그러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들었던 음악들 - danny chung의 happy together, 왕페이의 몽중인, 그 외 아비정전의 사운드트랙이나 the rotus의 음악)

 

피크를 내려와 센트럴을 걷는데 밤이 되니 더 운치있었다. 가로등 색이 아름답잖아... ㅠㅠ


- 홍콩에 오기전부터 여기를 오면 꼭 들어야지 했던 노래가 danny chung 의 happy together였다. 나는 많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언제 들어도 감정이 파도치도록 좋은 노래가 이 곡인 것 같다. 영화 해피투게더의 마지막 장면에 깔리는 게 대니청 버전인데, 어렸을때부터 터틀스 버전의 원곡도 좋아했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서울극장(지금은 사라지고 없다)에서 해피투게더를 재관람했을때, 이 노래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면서 영화가 끝날때 그 감격이 잊혀지지 않는다. (양조위가 지상철에서 외로운 도시 속을 휘몰아치듯 부유하는 그 장면) 사실 이 장면 때문에 해피투게더를 몇번이고 다시 보는 것 같다. 야경을 보면서 이 노래를 거의 한 곡 반복으로 내내 들었는데,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만큼 모든 낭만이 밤 하늘에 가득찼다. 혼자있을때 더 F가 되는 인간이라 거의 오열할뻔 했지만 체면때문에 울먹 이기만 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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