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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Dec 15. 2020

어제와 똑같이 자리를 지켜준 그대에게

어제 퇴근길이었다.


이미 몹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 어플이 안내해주는 환승 역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빨리 가기 위해 한눈이라도 파는 순간, 눈앞에서 떠나는 전철을 보는 슬픔이란... 정말 슬픈 일이지. 그렇게 세상모르고 뛰어가던 내 앞에 어느 외국인이 보였다. 기타 케이스를 앞에 펼쳐두고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멋진 첼로 멜로디를 켜던 남자. 오늘은 그렇게 지나쳐갈 남자겠지, 내가 일단 환승 지하철을 제때 타서 살고 봐야 하니. 그렇게 그를 지나쳤고 안전하게 빠른 퇴근길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중요한 촬영과 업무 미팅이 있었기에!


그렇게 잠깐의 평화를 위해 뛰었던 퇴근길은 다음날의 평화를 주었을까. 그토록 긴장하고 고대했던 오늘은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흘러갔고, 다시 퇴근길이 찾아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여유가 있었다. 어제 그토록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매듭을 지었고, 환승역에서 갈아타야 할 전철쯤이야. 한번 보내면 어떠한가? 회사 멤버들과 술 한잔을 기분 좋게 기울인 뒤 어제와 같이 환승역으로 향해 걸었다.


그때 어제와 같은 포인트에서, 어제와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멋진 첼로 주인인 외국인 남자를 맞닥뜨렸다. 이 남자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이토록 다른 사람인 걸 알았을까? 어제는 들리지 않았던 멜로디가 귀에 흘러들었고, 그의 기타 케이스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없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걷는 속도도, 기분도, 그를 마주하는 마음도. 바로 지갑을 꺼내 현금을 확인했는데 딱 천원이 있었다. 어제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오늘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가벼운 목인사와 함께 천 원을 비어있던 케이스에 던졌다. 그리고 옆으로 지나치는 누군가의 차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환승하려는 지하철이 바쁜 까닭이겠지?


어제의 내 눈빛이었겠지. 내일이 바쁜 당신을 뭐라 하진 않겠다만, 내일은 그대가 여유 있는 눈빛으로 이곳을 바라보기를 마음 한 구석으로 빌었다.


뻔한 일상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려는 내 잘못은 분명 없다. 하지만 일면식도 모름에도 고마운 이들은 있다. 나를 모르지만 어제와 똑같이 자리를 지켜준 그대. 그대에게 오늘은 이 늦은 퇴근길에 부족하지만 마음을 담은 짧은 글을 바치고 싶다. 덕분에 지치고 고달팠지만 따스한 퇴근길이었음을, 주머니 속 현금이 천 원뿐이었다는 사실이 미안했음을 온 마음 다해 아쉬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대도 좋은 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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