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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r 10. 2022

어느 지하철 기관사의 인사

서울 곳곳을 원으로 빙빙 도는 2호선. 가끔 내선 순환으로 돌지 않고, 신도림 종점행으로 멈추는 열차가 있다. 우연히 한 번씩 몸을 싣게 되는 그 열차에 늦은 시간 촬영이 끝났던 오늘, 힘 없이 올라탔다.


신도림역에 가까워지며 사람들은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저마다 초록불이 켜지는 열차 출입문으로 모여들었다. 아주 보통의 날에는 이런 방송이 나오곤 했다.


"우리 열차는 신도림, 신도림역까지만 운행하는 열차입니다. 대림 사당 방면으로 가실 고객 분들은 이번 열차에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따스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오늘 하루도 일하시느라 공부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열차는 신도림역까지만 운행합니다. 모두 집으로 조심히 들어가시고 좋은 밤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흘러나오는 어느 기관사의 인사말에 열차 내 사람들이 옅은 미소와 함께 천장의 스피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열차는 신도림에 멈추었고, 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기관사의 인사말이 들려왔다.


"우리 열차 마지막 역입니다. 혹시라도 옆자리에 잠들어 계시는 분이 있다면 함께 다음 역으로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특별히 행복한 일도, 머리 아픈 사연도 없는 날이었다. 이 열차에 함께 몸을 실었던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어느 기관사의 인사에 좋은 밤이 되고 있었고,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밤과 어두운 퇴근길이었지만, 모두가 내린 열차는 어느 때보다 환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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