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번째 신혼여행> 프로젝트
유튜브를 시작하다
어쩌다,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 탄생
"평생 99번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기막힌 프로젝트네!"
"신혼여행의 컨셉은 어때?"
내 인생 최초, 최대, 어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내 나이 정도의 연식이 되면 제 머리 쓰담 쓰담하게 만드는 일도 있지만 때때로 쓴 술을 병나발로 들이켜도 부에가 가시지 않는 후회의 시간 또한 적잖은 법이다. 하.지.만. 속 쓰리게 만드는 과거의 시간을 무엇하러 곱씹는가. 어차피 지나간 일인 것을. 가슴을 후벼 파던 것들이 부질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헛웃음이 자리 잡는다.
나의 쓰담쓰담 기억?
인생에서 작은 빌라 한 채 정도 마련했을 돈을 쓰고도 후회하지 않은 것 중 하나?
제법 인간관계 좋다고 생각해 온 내게 '사람'이란 존재 다음으로 위로를 담뿍해 준 것?
바로 '여행'이었다.
사색의 묘미가 있는 홀로 배낭여행
도파민의 수치가 쭉쭉 올라가는 커플 여행
평생을 곱씹어도 행복한 가족여행
100년의 기억 정도는 무리 없이 갖고 사는 인간에게 두고두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주는 기쁨을 억만장자가 지닌 돈보따리의 충족감에 비유할 수 있을까. 15년 전, 가족과 함께 했던 유럽여행과 크루즈 여행 이야기는 밥상머리에 둘러앉기만 하면 터져 나오는 일상의 반찬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우린 아직 결혼 전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식 전이다. 연인이 언약을 하고 같이 살아야 '부부'가 되는 것이라면, 우린 아직 살림도 합하지 않고 식을 올리기 전이니 '연인'인 셈이다. 커피 한 잔을 놓고 물었다.
앞으로 정신 줄 놓지 않고 30년을 함께 산다면 인생이란 바구니에 무엇을 먼저 담고 싶은지.
'추억'이었다.
더 물을 것도 없이.
"평생 99번의 여행을 할 수 있을까?"
"30년을 함께 산다면 일 년에 3번은 가야 하는데..."
"해 보자."
"기막힌 프로젝트네!"
"프로젝트?"
"신혼여행의 컨셉은 어때?"
"설레고?"
"달달하고?"
"아무 생각 없고"
"굿!"
"근데 왜 하필 99번째야? 100번째 여행은?"
"당신 손 붙잡고 하늘나라..."
"자기... 원래 이렇게 로맨틱 한 사람이었어?"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리필을 두 번이나 한 커피가 식어갈 무렵...
나: "근데, 누가 먼저 갈까?"
찰스: "당신 꽃단장시켜 장례 치르고 뒤따라 갈게"
나: "나 먼저 가? 요즘 여자 수명이 더 길어"
찰스: "남자가 궂은일 하고 가는 게 낫지"
나: "싫어. 자기 먼저 가. 홀아비는 이가 서 말, 홀어미는 쌀이 서 말이라는 옛말도 있어"
찰스: "난 잘 씻잖아"
나: "그래서 나 먼저 보낸다고?"
신이 관장하는 운명의 날을 놓고 남편과 옥신각신 중이다. 아내 먼저 보내 놓고 계획한 꿍꿍이 속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남편의 말 한마디에 괜히 섭섭해지는 여자들의 마음이란...
아무튼 둘의 가슴이 맞닿아 탄생한 프로젝트!
그렇게 소심하게 탄생했다
<아흔아홉 번째 신혼여행>!
어쩌다, 유튜브를 시작하다
전철 광고판에 꽂혀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메타 버스의 시대! 'D.Line' 혁명을 체험하세요!'
오나가나 'S라인'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위한 다이어트 문구라고 생각했다. 그때,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디지털 온라인 수업 치고는 저렴한데?"
뱃살 가득한 D라인을 S라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광고가 아니었어?
이런 내가 유튜브를 시작한다고 하니 오빠부터 말린다.
"동생아, 유튜브는 네가 1인 PD가 돼야 하는 일이야. 기획부터 영상 편집까지 다뤄야 하는 프로그램이 한 바가지라고."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면 조언이라도 하지 말던가. 심란의 극치다. 물론 내게는 든든한 조력자 한 사람이 있다. 컴퓨터를 이메일 주고받는 것 외에는 거의 쓰지 않는 컴맹 일인자, 나의 신랑, 찰스다.
프로그램 다루는 것에 무지하다 싶은 두 사람이 무작정 유튜브를 시작한다고 덤벼 들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그리고 유튜브 계정을 '아흔아홉 번째 신혼여행'으로 브랜딩 해 놓았다. 초보의 장비병을 극복하기 위해 쿠x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았다 삭제하기를 반복하며 최소한의 구매에 성공! 이제 유튜브의 영상을 보아가며 무료 편집 기술을 익히는 일만 남았다.
유튜브 구독자로 돈을 벌겠다는 심사도 아니니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유튜브는 다만 우리의 추억을 담는 그릇이자 장소 불문하고 생생한 우리 둘의 기억을 불러올 수 있는 곳. 이것이 복잡한 유튜브의 세계에 입문하기로 결정한 이유이다.
유튜브 계정을 여는 것부터 삐그덕 거린다.
아... 디지털은 너무 어려워......
그런데 여행까지 며칠 남은 거야?
32인치 캐리어에 짐을 싸다 보니 어느새 D-20?
20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준비할 것은 태산이다. 질병관리청 QR 코드도 받고 접종 증명서도 영문으로 발급해 놓아야 한다. 한 달이란 기간 동안 나라별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니 서둘러야겠다.
지금은 빗소리를 즐기며 커피 한 잔에 글 쓸 때가 아니라고!
매일 잠들기 전, 우리 여행의 첫 하이라이트 장소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떠올린다
사진을 볼 때마다 현타가 오던 장소... 산토리니,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되는구나.See You Lat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