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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정실 Jul 06. 2022

크루즈는 사람을 아니, 사랑을 싣고

내 남편은 우리들의 블루스 주인공


내 남편은 '우리들의 블루스' 주인공



보여주고 싶었다

가난에 찌들어 떠나고 싶었던 낙도의 바다가 아닌

형형색색 화려한 쇼가 펼쳐지는 지중해의 바다를



"왜 그렇게 눈이 퉁퉁 부었어?"

"우리들의 블루스 보고...

얼마 전, 종방한 '우리들의 블루스'를 넷플릭스로 보고 있는 내게 남편은 이어 한 마디 던지기를

"난 그런 거 안 봐"

"왜?"

"내 어린 시절이랑 똑같은디. 그 지겨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뭣허러 떠올려?"


'무말랭이 같은 자슥'

똑같이 달린 심장인데 어찌 저리 메마르고 꼬였을까. 삐들삐들하게 말라비틀어진 무말랭이처럼 말이다. 오해했다. 사극 시리즈물 하나를 만들어 낼 분량의 오지게 살아온 반평생 히스토리를 듣기 전까지는.


'응답하라 1988'에 이은 제2의 국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닮았다.

욱하는 성질에 주먹이 먼저고 말이 거칠지만 나름 인정도 많고 의리 있는 오일장 순댓국밥집 주인 상남자 인권이, 가난에 떠밀려 해녀가 된  누나와 뱃일하는 아버지를 바다에서 잃고 첫사랑에게 순정마저 짓밟혀버린 동석이를.


많이 닮았다.

가난 때문에 거칠어지고 여유 없어진 마음과 상처가.


'생일도'라는 외진 낙도에서 태어난 남편은 칠 남매 중 다섯째였으나 지금은 둘째 아들이 되어 있었다. 그 위로 세명의 누나와 형이  동네잔치가 있던 날, 우물가에서 놀다 잡은 손을 놓지 못해 줄줄이 하늘나라로 가 버린 탓이다. 생때같은 자식 셋을 보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던 시어머니는 지금도 50줄 넘은 자식들과 통화할 때면 밥 먹었냐는 안부인사보다 몸조심하라는 당부가 우선이다. 어린아이 셋이 한 번에 그리된 후, 줄초상 난 동네 우물가는 흉흉한 소문과 함께 시멘트로 메꿔지고 한동안 사람들은 윗동네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했다.


남은 사 남매 중 제일 덩치가 컸던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소여물에 밭갈이, 장성들도 힘이 부치다는 바닷일을 억척스럽게 거들며 컸다. 어린 나이에도 가난이 주는 서러움을 일찍이 알아버린 탓일까 17세에 미련도 없이 섬을 떠나왔다.


"엄니는 뱃머리에서 꼬깃꼬깃 6천 원을 쥐어 주더니만... 그 억척스러운 양반이 눈물을 쏟더라고"


대학생인 형을 따라 전라도 광주에 올라오자마자 학비를 벌기 위해 생계형 운동을 시작했다. 링 위에 선 자는 누구든 눕혀버리고 말았던 그는 킥복싱 3관왕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얻어 학교의 인싸가 되지만, 몸짱의 그가 기억하는 그때는  "끼니를 때우기 위한 사투였다'라고.


굵직한 기침 한 번 뱉어내더니 30년 막일 인생사를 툭 내려놓는다.


수업이 끝나면  '유생촌'이라는 돈가스집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로 2년,  군 제대 후엔 광주 백화점에서 도깨비방망이 판매원으로 1년-이제 막 제대해 까까머리에 체격 좋은 젊은 20대 청년이 '누님, 누님'하며 걸진 입담으로 주방 물건을 팔았으니 그 인기로 판매왕까지 거머쥐는 건 어쩜 당연한 일이었겠다. 23세에 고향 친구 세명과 무작정 상경 후 영등포 프레스 공장에서부터 판금 도장으로 2년, 26세부터 12년간 인테리어 막일로 잔뼈 굵은 후 드디어 대리점을 내서 '사장님' 소리를 듣기 시작하지만 IMF로 폐업.  사업을 접었으나 방황도 사치였다는 그는 일산에서 마을버스로 경력을 쌓은 후 지금의 서울시 공용 버스 13년 차의 숙련된 기사가 되었다.


애쓰며 살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용쓰며 살았다는 말도 충분치 않았다.

그가 자주 쓰는 '뺏골(뼈골) 부러지게'라는 부사의 의미를 이제야 알았다.


"자기야 술 한잔 할까?"






아내의 선택, 지중해 크루즈 여행!



첫 여행이어서였을까. 한 달 유럽 여행답게 그의 짐 쌓는 모습도 요란 뻑적지근하다.


"참치, 고추장, 라면은 꼭 있어야겠지?"


풀코스 디너를 포함해 다섯 끼가 준비되는 크루즈 안에서 밥 세끼를 걱정하며 참치캔을 겹겹이 쌓는 그를 보다 못해 짐 챙기는 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바닷일 하던 놈이 크루즈 타면 뭔 재미냐던 그가 유튜브의 대형 크루즈를 보더니만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똑같은 바다인데 크루즈를 띄워 놓으면 로맨틱해지고 그물망 얹은 통통배를 띄우면 파도에 목숨 줄 내놓은 일터가 되어버리니 참, 세상살이 뭣 같다.


처음부터 고급진 지중해 크루즈를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신이 다시 사랑할 기회를 주신다면 사랑하는 이와 스페인 유학시절 마무리 짓지 못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반면,  그가 상상하는 해외여행이란 산호빛 바다와 중세시대의 건축물이 가득한 유럽과 '동의어'였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매체의 영향도 적지 않았으리라. 그런 그에게 45리터 배낭에 물컵과 샌들을 걸고 매일같이 한 바가지의 땀을 흘려야 하는 순례길을 권한다고?


완주 못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도, 포장마차 칵테일이 즐비한 쿠바의 말레꼰도, 사리와 부르카로 형체를 가려도 숨겨지지 않는 미인의 나라 인도는 잠시 뒤로 하고 그와의 첫 여행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감성적인 여행지로 떠나기로 했다.


서울우유는 서울에서만 파는 것인 줄 알았다던 그에게, 춘천으로 떠나는 청춘 기차 앞에서 인증샷을 찍으며 설레발을 치던 그에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30년간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 그리고 지금은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었을지 모르는 역마살 낀 한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는 그에게 오늘도 농담 한 마디 건넸다.



자기야, 낚시 도구도 챙겨요.
크루즈에서 낚은 고기로 요리사가 저녁 요리를 해주거든
진짜?





'기억'이란 것이 숨 쉬고 있는 한, 가장 아름답고 독창적인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직접 써 내려가는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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