섞이면 맛이 없어지는 것들
미디엄에서 영어기사를 쓰고 읽다가 네이버나 브런치로 넘어왔을 때 확 와닿는 것은.. 크립토, 블록체인 등의 토픽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잘 표현되고, 더 잘 담겨진다는 것이다. 언어마다 고유의 특성, 고유의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는데 한 언어권에서 독점적으로 발현된 무엇은 다른 언어로는 표현하거나 담아내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유럽/영어권의 특성들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크립토", "암호화폐"라는 주제는 한국어로 표현할 때, 혹은 한국어로 변환된 컨텐츠를 마주쳤을 때 대단히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확실히 자본주의, 민주주의, 탈중앙 이데올로기, 게임이론 등은 이쪽 정서와는 아다리가 좀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국지적 특색을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의 무엇과 섞기에 참 애매한 면이 있다.
예전 도덕경 영문 번역 본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이건 노자의 도덕경이 아니라 완전 다른 사람이, 완전 다른 세계관으로 쓴 완전 다른 시라고 느껴진 기억이 있다. 영어라는 언어가 그 시의 깊이를 전달하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랄까. 확실히 일본 컨텐츠는 일본어로 보고, 러시아 작품은 러시아어로 보고, 몽골 노래는 한국어 더빙이 아니라 몽골어 그대로로 감상하는게 제맛이 나고 잘 전달되는 것 같다. 물론 그럴 여유가 없어 차선책으로 자막을 입히고 번역을 하는 것이겠지만 결국 번역을 한다는 것은 번역자가 영감을 받아 완전히 다른 작품을 창안해 내는 것이지 결코 번역의 대상을 그대로 담아낸다고는 할 수 없다.
확실히 와인은 오크 통에 담궈야 제맛이 나고, 된장은 장독대에 담아 푹 익혀야 제맛이 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