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배우는 바다
혹여나 교육 프로그램이 책상에 앉아 피피티를 가리키며 입 터는 방식의 교육일까 봐 걱정을 좀 했었는데 (그런 경우 그냥 집에 갈 계획), 놀랍게도 오전에 짧게 이데올로기 토론만 이루어지고 "책에 다 있으니 오늘 바다 교육 다 끝나면 숙소에서 다 읽어볼 것"이라는 국장의 말을 끝으로 바로 모두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는 글로 배울 수 없다"
첫 바다 교육은 교육생들이 물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천천히 스테틱(물에서 숨 참기)부터 진행하였다. 물론 그전에 뭍에서 해녀의 동반자인 테왁의 특징, 테왁 묶는 법 등을 배웠고, 바다에 들어가서는 테왁을 손으로 잡은 뒤 옆으로 질질 끄는 해녀 수영법, 그리고 덕 다이빙(오리처럼 밑으로 꼬라박는 수직 다이빙 법)을 배웠다. 모두 이미 다 프리다이빙 레슨을 통해 배운 기술들이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고 마지막 청소시간이 특히 즐거웠는데, 여기서 청소란 물속으로 들어가 바다에 버려진 유리병, 플라스틱, 낚싯대, 낚싯줄, 그물 등을 끌어올려 뭍으로 가지고 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해산물 잡는 것보다 오히려 이런 쓰레기를 수거하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던데, 해초 사이에 끼여있는 유리병을 빼다가 바로 엄지 손가락을 베이면서 그 위험을 살갗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첫 째날인 교육생들이 겁을 먹지 않게 좀 편하게 진행했다면 둘 째날부터는 훈련강도가 아주 가관이었는데, 다큐에서 물질을 끝낸 해녀들이 뭍으로 나올 때 정말 무슨 전쟁이라도 치른 것 마냥 표정을 짓는 이유를 이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총 3~4시간의 바다 교육을 끝내고 테왁을 질질 끄면서 숙소로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육지의 중력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장비를 어깨에 메고 터벅터벅하는 도중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으며 정말 오로지 이 하루만을 산다는 것, 이 하루의 끝맺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뼛속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오전에 바다 조류와 관련된 물 때, 압력 평형(이퀄라이징), CO2 테이블에 대해 배웠으며, 바다에서는 입수 동작부터 배웠는데 흔히 해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다리를 교차하면서 바다에 뛰어드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스크를 한 손으로 꾹 잡고 뛰어들어야 하는 것인데, 처음에 어버버 하다가 너무 얕은 곳으로 잘못 뛰어들어 바위에 뒤꿈치를 세게 밟아버렸다. 입수할 때는 깊은 곳으로 입수해야 한다. 바다는 깊은 곳 보다 애매하게 얕은 곳이 가장 위험하다.
그 뒤에는 동료가 블랙아웃이 오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인양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아쉽게도 프리다이빙에서 배우는 수중 레스큐는 훈련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미 배웠기에 큰 상관은 없었지만 대부분 물질 사고가 수면이 아니라 수중에 일어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언젠가는 수중 레스큐를 훈련과정에 꼭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인양 뒤에는 밧줄을 잡고 수평, 수직으로 잠영하는 훈련을 하였다. 해녀들은 밧줄을 전혀 쓰지 않지만, 교육생들이 겁을 조금 덜 먹도록 밧줄을 도입했다고 한다. 수평은 한 15~20m 정도였던 것 같고, 수직은 5~7m 정도로 왔다리 갔다리 하였다.
이 날 제일 빡셌던 것은 잠영할 때 훈련강사가 와서 마스크를 뺏어갈 때였다. 몸에 힘을 쭉 빼고 밧줄 잡고 아주 편안히 글라이딩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밑에서 갑툭튀하여 마스크를 뺏어 갔으니.. 너무 당황하여 입, 코로 바닷물 쭉 다 들이마시면서 위로 수직상승하였다.
"거 왜 주변확인을 안합니꺼, 프리다이빙 하십니꺼?"
앞만 보고 가거나, 밑만 보고가면 다시 와서 마스크를 뺏을 것이라 한다. 참 신기한 것이, 프리다이빙 교육 때는 항상 밑 혹은 앞만 보고 가라고 배웠는데, 여기서는 항상 주변을 확인하면서 다이빙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밧줄 타고 쭉 내려가면서 기록 찍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프리다이빙에 비해 물질은 여기저기 바다를 누비면서 바위 사이사이의 해산물을 채집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프리다이빙 보다 훨씬 위험하여 항상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수면으로 올라올 때도 프리다이빙은 위를 보면서 올라오지 말라고 하는데, 물질은 배가 지나갈 수 있는 확률이 높고 해초, 물고기 등 변수가 많아 항상 밑에서 수면을 체크하고 올라와야 한다고 한다. 뭐 아예 다른 종목을 배우는 것 같은 느낌.
훈련 마지막 세션은 이전에 언급한 "뿔소라 잡기 릴레이"였다. 눈 바로 앞에서 강사가 뿔소라 여러 마리를 떨어뜨리는데 엄청 쉬울 것 같았지만 막상 물에 들어가면 도저히 구분이 안되더라. 이게 또 잠수하는 거랑 해산물 보는 눈이랑은 또 다르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인지 물 안에서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바다 밑에서는 색깔도 다 비슷비슷하니, 뭐가 뭔지 구분이 안돼서 주먹만 한 돌을 가지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수십 번의 자맥질 끝에, 뿔소라 서너 마리를 손에 쥐고 수면으로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