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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고래 Jul 14. 2021

반도의 유신, 그리고 메타버스

조선 후기에서 블록체인, 메타버스까지

"그래 마 니도 메타버스 들갔나?"


"당여히 들갔제"


"메타버스가 지금 트렌드 아이가 트렌드"


조용한 카페 한 구석탱이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한 여름 날 오후. 옆에서 다소 익숙한 낱말이 계속 들린다.


"그래 니말마따나 시대가 막 바뀌고 있다 아이가"


"맞다. 진짜 눈깜짝 할 사이에 변한데이~"


"고라모 고라모. 마 르네상스다 르네상스!"


"그래 르네상스! 정신 단디 바짝 차려가 뒤쳐지면 안 되는기다!"


그렇게 시작되는 열띤 토론. 하.. 유난히 주파수가 높은 목소리들. 메타버스니 디지털이니 계속해서 우수수 들려오는 익숙한 단어들. 그리고 여기는 경상남도 한 읍내 카페.


'응?..'


짜증 반, 호기심 반 눈과 귀를 비빈 뒤 제대로 한 번 그들 대화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어차피 이 반도의 카페들은 무슨 암묵적인 룰인 것 마냥 항상 옆 사람 대화가 다 들리도록 테이블을 스페이싱 해 놓지 않는가. 그래, 그대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내 온몸으로 옆 사람의 프라이빗 한 대화를 다 들어주겠노라.


'흠.. '


듣자 하니 메타버스가 뜨고 있으며 그쪽 주식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꽤 좋을 것이라 한다. 서로 자랑하는 수익률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부분은 수익률이 아니라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메타버스가 곧 디지털 르네상스의 전조현상이라는 내용적인 면보다는 아주 구수한 경남 사투리에 아주 "힙"스러운 메타버스, 르네상스와 같은 단어들이 뒤섞여 나오고 있다는 것이 독특했다.


"마 르네상스 아이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도구는 어떤 존재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어떤 개인 혹은 집단이 차용하고 있는 이데올로기/프레임의 바탕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애초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발달시킨 것이 언어일터. 인간의 언어가 길 고양이나 다람쥐에게는 대체적으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루어보아 언어의 사용은 곧 사회, 그것도 인간 사회에 국한된 기능이 주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랬을 때 경남의 한 촌구석에서 까맣게 피부가 멋지게도 그을려 낚시 한 탕 거하게 하실 것 같은 중년의 남성분이 "메타버스"와 "르네상스"를 언급하며 시대의 흐름, 시대의 변화를 논한 것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그는 무슨 경로로 메타버스를 알게 되었으며, 어떤 배경에서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채택한 것일까?


먼저 요즘 쓰이는 “시대”라는 단어는 쥬라기, 백악기와 같은 공룡시대가 아닌 인간 사회적 시대를 가리킬 때가 많다. 고로 위에서 언급된 시대의 변화란 인간 사회의 변화 기점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그 남자분의 모국어가 한국어이며 일상의 거의 대부분이 반도 사회 프레임에 귀속되어 있음을 미루어보아 결국 우리는 그의 입에서 나온 메타버스와 르네상스라는 단어의 출처를 알기 위해 이 반도 사회의 흐름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역사라는 이야기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이다.


“조선 말기에서 메타버스와 르네상스까지”


먼저 르네상스라는 말은 종교적 억압이 극심했던 중세 유럽이(그레고리안 달력 기준) 소위 “Dark Age”라는 시기의 막을 내리면서 탄생한 단어이다. 기독교가 정치적 국교로 제정되어 계급사회를 지배한 것에 신물이 난 유럽인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 스칸디나비아 신화 등과 같은 향토 내러티브를 재조명하기 시작하였으며 잊혀진 유럽의 얼이 다시 탄생했음을 선포하였는데, 이때 "Re(다시)“ 와 Nassiance(탄생)가 결합되어 ”르네상스“라는 단어가 출현하였다. 이전의 프레임이 파괴되고 새로운 프레임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을 가리킨다랄까..


하지만 듣기엔 좀 있어 보이는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그리 대단한 개념이라곤 할 수가 없다. 이 세상 어떤 것이든 변화의 물결 속에서 흘러가기 때문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군주와 함께 부흥을 누렸던 왕국과 그 추종자들이 군주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여 전설, 구전문화로 남듯, 필자가 쓰고 있는 이 언어 또한 한 이백 년만 지나도 지금의 음성학과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할 것이며 그 어떤 프레임, 이데올로기도 탄생과 소멸이라는 거시적 흐름에서 영구적으로 고정될 수가 없다. 그럼에 비물질, 물질이라는 분별을 초월하여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모든 형태는 본질적으로 변화할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인지했을 때, 르네상스, 메이지 유신과 같은 개념들은 그런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흐름이 인간에 의해 언어적으로 포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데 그렇게 당연한 것을 반도에서 뜬금없이 “르네상스”라 부른다라.. 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라는 단어부터 시작하여, 뉴딜, 디지털, GenZ, 핀테크, 실리콘 벨리, 컨텐츠 등 외국어를 그대로 따온 개념들을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것도 몽골어, 터키어, 인도네시아어가 아니라 대부분 영어를 기반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의 차용과 사용이 결국 이 반도사회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유독 수많은 동북아시아 사회권 중에서도 미국에서 그대로 따온 개념과 단어들이 미디어와 일상대화, 심지어 이 글에서도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 유독 동북아시아 사회 중에서도 서양발 민주주의, 자본주의부터 시작하여 디지털주의의 성격을 굉장히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 그 여정에서 우연찮게 메타버스, 디지털 르네상스라는 개념들이 한 시골의 읍까지 도달했다는 것.


“트렌드 세터라기보다는 팔로워의 느낌?”


인간의 프레임은 일련의 질문과 도전을 받으면서 다른 프레임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언제나 존속하길 원하는 프레임은 살랑살랑한 파도에 흘러가길 원하지만, 언젠가는 너울 파도를 만나 와장창 무너져 새로 구축되고, 말 그대로 새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현대 한국 사회는 특이하게도 프레임에 질문을 하는 자도 아니요, 존속하려는 자도 아니요 다른 누군가가 프레임을 파괴하고 새로운 프레임을 세팅하였을 때 그것을 마냥 따라가기만 하려는 팔로워의 정체성이 강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러티브 차용과 운용에 있어서 근본적인 어프로치의 느낌이 다소 부족하다랄까.. 시대 변화의 칼날을 쥐고 있는 자가 아니라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마냥 버둥대고 있는 자에 가까운 느낌이다.


위의 바탕이 무엇이냐 질문한다면, 필자는 감히 조심스럽게 “자주적 해석과 질문의 실패”라 답해본다. 그렇다면 그 실패의 기점은 어디였을까? 흠.. 누구는 조선시대가 고수한 “친명" 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조선이 애초에 명나라에 뭘 계속 갖다 바치는 노예가 아니라 유교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형제-아우 관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친명 다이나믹은 어찌 보면 상대적으로 작은 사회가 더 큰 사회에 합병되지 않고 스스로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채택하였던 영리한 정치적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해준다고 명나라가 되려 크게 세퇴하면서 청나라에게 자리를 내준 것만 봐도 명과 조선의 관계가 그런 일방적 관계가 아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실패의 기점은 조선시대 그 자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으며, 만약 조선을 기준으로 그 시점을 어림잡아야 한다면 조선이 다른 프레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고 각을 재고 있었던 조선 후기가 더 유력하다. 조선 후기, 지속된 쇄국정책과 이리저리 내부 파워게임에 휘말리는 정치권으로 조정은 거시적 정세를 간파하지 못해 다른 국가들에 의해 천천히 잠식당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반도 사회는 스스로 개화하는데 실패하였고 다른 국가와 프레임에 의해 강제로 개화를 당하는 안타까운 길을 밟게 된다.


“식민지 신드롬의 시작”


여기서 특이한 점은 조선 근대화에 큰 영향력을 미친 국가 중 하나가 "특이하게" 일본이라는 점인데, 이 표현을 쓴 이유는 당시 일본도 조선과 비슷하게 흔히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크게 특출 나다고 할 게 없는 아시아 국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은 이웃 사회들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차용함으로써 지역적 비교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는데, 쇄국정책에서 온건적 개혁을 외치고 있던 에도막부 세력이 급진 개혁파들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숙청당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일찍이 막부시대를 정리하고 특이하게도 서양 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신들만의 천왕중심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메이지 왕을 필두로 일본식 왕정복고 르네상스,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메이지 유신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 이 배경에는 불과 아홉 척의 서양 증기선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킨 쿠로후네 사건 등을 포함하여 나름 무력과 방어에 있어서 큰 자신감에 차 있던 작자들이 여러모로 서양 기술에 큰 쇼크를 받았다는 점들이 있을 것이다.


대정봉환: 막을 내리는 에도시대


쿠로후네 사건: 왼쪽은 조정의 그림 오른쪽은 민간의 그림


그렇게 일본은 메이지 왕을 필두로 급진적, 자주적인 근대화를 통해 자본주의를 비롯한 여러 프레임들을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고속으로 기술을 발전시킨 뒤 그 연장선에서 러시아와 청나라에게까지 도전하여 우위를 점하고 심지어 진주만 폭격으로 미국까지 선빵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아마 당시의 일본은 일본 역사상 가장 강한 일본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그 영향력은 잔존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현대 자본주의 프레임에서 일본의 엔화는 달러와 맞먹는 기축통화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며 더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요나라”라는 표현을 모르는 영어권 원어민이 없는 것처럼, 영어 자체에 많은 일본 표현과 단어가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그만큼 일본 문화는 영어권에 있어서 꽤 큰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강자의 세계에서 한 강자가 다른 강자를 인정하고 그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것이랄까.. 순수 영어로 쓰여 있는 비트코인 백서만 봐도 실제 저자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이 펜네임 자체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점에서 일본과 영어권의 관계가 생각보다 꽤 긴밀하며 우호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왼쪽 러일전쟁, 오른쪽 진주만 폭격


미국과 다이다이를 뜰 정도로 강력해진 일본 제국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반도는 식민지 테크를 타게 되면서 자주적 가치를 상실하여 내외부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는데, 그 연장선에서 일본 프레임에 도전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으며 대뜸 미국의 핵을 맞고 스스로 물러가는 일본의 뒷모습만을 보게 된다. 그 이후로 반도의 통제권은 러시아와 미국에게 넘어가는데, 이때 우리는 일본 점거 프레임이 러시아와 미국에 의해 대체된 것일 뿐, 프레임 자체가 깨지지 못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게 지금 반도의 사회는 북쪽으로는 러시아, 일본, 중국의 색깔, 남쪽으로는 일본과 미국의 색깔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 영향들을 자주적으로 해석하거나 도전하여 새로운 프레임으로 탄생시키기보다는 여전히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 따라가려는 모습이 강하다. 애초에 근대 경제적 성장의 바탕이었던 재벌중심 기업문화의 근본이 일본 Zaibatsu(자이바쓰) 기업문화에 있다는 점과, 몇 차 교육과정이니 하면서 입시, 시험기반 교육 체계를 기반으로 건물에 우르르 아이들을 넣어 일방적으로 정보를 주입하는 반도의 공교육이 일제시대 교육을 그대로 답습한 형태라는 것, 최근에 화자 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이니, 스타트 업이니 메타버스니 하는 것도 결국 미국, 구체적으로는 실리콘 벨리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니 프레임 창조자라 부르기보다는 조금 더 솔직하게 "프레임 팔로워"라는 레이블을 붙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반도의 한 여름날 한적한 시골 카페에서 메타버스니 르네상스니 라는 말을 들으며 “시대의 변화를 따라간다”는 주제의 토론을 엿들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근대, 현대의 구색을 갖춘 사회가 된 것 같긴 한데 뭔가 척추 하나가 빠진 느낌. 근본 없는 다양성은 또 다른 말로 지리멸렬함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라는 것은 한 사회의 일기장이다. 그럼에 역사는 좋고 나쁨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프레임을 초월하여 이 사회의 프레임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주는 거울로서 기능한다. 그럼에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를 인정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역사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며 사회 구축에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이데올로기, 새로운 내러티브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 인정하기 싫더라도 내부적 혼란과 외부 정세에 대한 늦은 대응으로 식민지 루트를 밟았다는 점을 인정해야하며 소보루 빵, 찹쌀떡부터 시작하여 지금 일상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잔재가 깊숙이 들어와 있고 뒤이어서는 미디어, 컨텐츠, 뷰티, 경제, 교육, 심지어 종교와 정치까지 미국의 색깔을 무분별하게 추종하고 있으며 미국의 문화적 영향이 반도에 지배적이라는 점, 그럼에 식민지 신드롬이 존속되고 있음을 그대로 직시하고 인정해야 한다. 인정했을 때 비로소 본 프레임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마침내 우리는 근본을 창조해 이미 들어와 있는 색깔들로 하여금 어떤 새로운 내러티브를 다시 쓸지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되며, 가장 중요하게는 본인은 아무 잘못 없다는 피해자 콤플렉스로 뭉친 식민지 신드롬, 강자를 악시하면서 동시에 강자에 의존하려 하는 언더도그 신드롬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Very, Very American


사회라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 신기루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우리는 한 “사회”를 직접 만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에게 사회를 보여줄 수 있는가? 도시의 빌딩들이 사회인 건가? 사회와 얘기하고 싶을 땐 어디,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사회와 얘기하고 싶다”고 외쳤을 때 어떤 책이나 건물이 아니라 숨을 쉬고 있는 한 인간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한 사회와 얘기해보기 위해 한 인간과 교감해보면 그 인간 안에 한 사회뿐만 아니라 정말 많은 프레임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인간이란 존재가 사회보다 훨씬 큰 존재라는 아이러니함이랄까.. 그럼에 사회를 위한 인간이 아니요, 인간을 위한 사회, 즉 이야기의 펜을 들고 있는 자는 인간 스스로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펜을 쥔 채, 펜을 쥐고 있는 것을 모를 때는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도 모른 채 경쟁만을 위한 경쟁을 하게 되고, 누가 미리 정해놓은 전쟁과 시험을 치기 위해서만 펜을 휘두르게 되며, 누가 좋다하면 마냥 그게 좋은 것이고 나쁘다 하면 나쁜 것이겠거니 하면서 우르르 따라가기만 한다. 이와 같이 근본이 약한 다이나믹에서는 지역 향토적 얼과 그저 추종하기만 하려는 성향 사이에 아주 큰 긴장과 괴리감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유리할 땐 “정”을 외치면서 불리할 땐 “현실”을 언급하는 인간관계의 출현이며, 게임의 판을 깔아 놓은 자가 누군지 모른 채 아직까지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내부적으로 싸우고 있는 반도 사회의 현주소 이다.


반도의 문화를 사랑하는 자로서 위의 상황은 다소 씁쓸하다. 물론 새로움이 탄생하기 이전엔 어느 정도 긴장감과 괴리감이 있을 순 있으나 너무 질질 끈다는 느낌이랄까.. 아름다운 문화와 얼을 지녔지만 그 특이성을 보지 못하고 병적으로 스스로를 다른 누구의 프레임, 다른 누구의 무엇에 계속 투영하고 비교하며 따라가려하는 모습이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식민지 신드롬이 아직 꿋꿋이 살아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다른 자의 새로움 만을 따라가려는 모습, 근본에서 새로움이 창조되지 못하는 상태.


위 배경에서 현 사회의 주소를 안타까워하던 도중, 필자는 지인을 통해 MetaSeoul에 대한 분석과 검토를 부탁받는다. 어느 서울 역삼의 한 청년그룹이 반도의 자주적 가치를 현대 영어권 프레임 최전선에 있는 블록체인, 메타버스라는 기술과 융합하여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 한다는데, 그렇게 지금 필자의 손에는 MetaSeoul소개 팸플릿이 들려있다. 과연 이 호스트들이 근본적 해석과 질문을 통해 진정 새로운 프레임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 딴 나라 르네상스가 아니라 반도의 진정한 새로워짐, 근본적 유신을 선포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저 또 다른 팔로워의 팔로잉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다음 글에서 같이 알아보도록 하자.


다음 글: 메타서울에서 NFT 찐하게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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