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여름은 옛 말?
선풍기 품절 부른 폭염

태양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에게도 힘든 날씨, '에어컨'이 뭐예요?

by 어나더씽킹

# 2018년 7월 말 어느 날


“이렇게 추운데 평균 기온 23도라고? 말이 돼?”

“이렇게 더운데 평균 기온 23도라고? 말이 돼?”

베를린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여름, 나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2017년 여름, 이민가방에 여름옷을 잔뜩 싸온 나는 서늘함을 넘어 춥기까지 한 베를린 여름 날씨에 무척 당황했다. 아침저녁 기온 차가 심하다고는 들었지만, 단지 그 수준이 아니었다. 컨테이너 짐은 여름이 지나 도착할 예정이었으니,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두 가지 버티거나 사거나 였다. 한 두벌 가져온 얇은 긴소매 옷을 매일같이 껴입고 다니며 단벌신사 수준으로 지내던 우리 가족은 그것으로도 해결이 안 되자 두터운 옷을 새로 장만하기도 했다. 밤이 되면 너무 추운 나머지 하이쭝(독일의 라디에이터)을 틀고 잤으니 말 다 했지.

올여름은 지난 5~6월부터 심상찮았다. 어떤 날은 20도 이하의 평균 날씨였다가, 또 어떤 날은 30도에 육박하거나 넘어서는 고온을 기록하는 등 심한 널뛰기를 했다. 뭐 그래도 그때까진 좋았다. 춥고 잦은 비로 을씨년스러웠던 작년 여름을 떠올리면, 해 쨍쨍한 날씨는 축복처럼 느껴졌으니까. 긴긴 겨울을 보낸 독일 사람들 역시 올해는 날씨가 정말 좋다며 틈만 나면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고 호수에서 수영을 하며 강렬한 태양을 마음껏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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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7월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35도를 넘나드는 날이 숱하게 반복되고 거기에 비까지 내리지 않는 폭염이 이어졌다. 전 세계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여름에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독일도 예외가 없었다. 뉴스에서는 폭염과 가뭄으로 인한 피해 사례들이 끊임없이 보도됐다. 강바닥이 메마르고 물고기 떼가 죽고 말라버린 작물로 인한 농가의 피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뉴스 속 먼 얘기가 아니라, 당장 우리 가족부터 하루하루 나기가 힘들어졌다. 컨테이너 이삿짐을 싸면서 ‘전혀 필요 없다’는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챙겨 온 선풍기가 1년 간의 지하창고 생활을 마치고 집안으로 복귀했지만, 해 구경하기 어려운 겨울에 최적화된 정남향 우리 집의 열기를 막아내기란 역부족. 선풍기를 풀로 가동하면서도 몸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더운 기운을 어찌하지 못해 혹시 갱년기가 아닌가 의심해봤을 정도다. 최근 며칠 동안 연일 바람도 없이 36도를 찍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여기보다 더한 폭염에 처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더위 속 안부를 물으면서도 차라리 에어컨이라도 있는 한국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늘한 여름, 초가을 같은 날씨를 자랑하는 독일은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한 대도 없는 집이 대다수다. 어디 가정집뿐이랴. 버스며 지하철 안도 찜통이고, 레스토랑에 가도 심지어 백화점에 가도 한국에서와 같은 시원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선가 선풍기나 에어컨이 돌아가는 것 같긴 한데, 그냥 바깥에 있는 것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정도다. 그래도 ‘피서’ 삼아 복합 몰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 보면 집보다는 시원한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혹시 그 집에 남는 선풍기 없어?” 어제는 옆 동네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3년째 베를린에 살고 있는 한 한국인 가족이 선풍기를 구하지 못해 여기저기 수소문 중이라 했다. 여름 초반까지만 해도 가전제품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다니,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진 나는 직접 몇 군데 가전 매장을 돌아다녀 봤다. 원래 에어컨은 구경하기 힘든 곳이라 그렇다 치고 단 한 대의 선풍기도 발견할 수 없었던 나는 그때마다 매장 직원에게 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지금 독일 전체에 선풍기가 품절이에요. 어느 매장을 가든 마찬가지일 겁니다. 구할 수 없을 거예요.” 그리고 덧붙이기를 “행운을 빌어요”라고 했다.

선풍기 한 대 사는 일에 행운까지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됐다니. 태양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쩌면 평생 선풍기 한 대 없이 살아도 문제없었을 독일 사람들에게도 이번 여름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더위라는 게 이런 식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내년 여름은 또 어떠려나.


<오늘의 깨달음>

이런 여름도 있고 저런 여름도 있는 거지. 가을 없이 바로 황량한 겨울 시작되면 그땐 아마 햇빛 쨍쨍했던 지금을 그리워할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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