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2주 뒤 토요일부터 4일 동안 비폭력대화 2 과정을 배우러 가고 싶어. 엄마도 애들 봐주러 오신다 했고. 지금 신청하려고 하는데..."
"비폭력대화? 도대체 그건 배워서 어디 써먹는 건데? 나는 '비폭력'이라는 단어자체도 마음에 안 들어. 애들 엄마가 주말까지 시간 써가면서 그딴 거 그 돈 주고 배워서 뭐 할 건데?"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야."
"주말에 돌봐야 할 애들이 있잖아. 넌 애 엄마야." . . .
<일주일 후> "계획대로 안 할 거면서 계획은 왜 짜냐?" 오늘도 내게 남편의 말은 따갑다.
2023년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계획한 일 중에 하나는 비폭력대화 2를 수강하는 것이었다. 작년에 비폭력대화 1 과정을 공부하고 꾸준히 연습모임에 참여했다. 비폭력대화(NVC)에 대한 열정은 더 커졌고 아이 둘, 휴직 교사 엄마인 나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해 주었다. 나는 올해 초, 다이어리에 계획한 시기에 맞춰 수강신청을 했다. 그런데 오늘 그 계획을 취소했다. 이번 일정을 취소한다고 해서 NVC공부를 포기한 것은 아니고 일단 보류랄까.
올해 오래도록 바라던 도간교류에 성공했다. 둘째 아이 육아휴직을 2년 계획했고 그동안 지금의 이곳에서 지낸 후 다시 돌아갈 계획이었다. 2년의 휴직은 금세 지났고 새로 만난 인연들이 아쉬워 휴직 1년을 더 연장 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의 이곳에서, 교직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이 다 휴직을 권하는 시기, 첫 째 아이 1학년 입학 해에 나도 학교로 간다.
3년이라는 휴직기간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히 찾아다녔고 적극적으로 모임을 참여하거나 이끌었으며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언젠가 아이가 물었다. 직업으로서 교사 말고 나로서 무언가 되기를 갈망했던 나에게 던지는, 고요한 우물 속 돌멩이 하나 같은 질문이었다. 돌멩이는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점점 더 커다란 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이기적인 엄마일지도 모른다. 육아휴직 3년 동안 자기 계발에 적지 않은 시간을 쏟고, 아이가 1학년이 되는 해에 복직을 하는 모양새를 보면. 하지만 언제나 정답은 내 안에 있다. 오늘 오후, 발령 난 학교의 교무부장선생님의 전화를 받는 순간 느껴진 떨림으로 '이제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구나' 생각했다. 나는 휴직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말을 비교적 쉽게 내뱉었다. "복직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복직합니다'도 아니고 '복직을 하겠다는 생각'이라니. 돌이켜보니 복직이라는 단어는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 주변 여건에 눈치를 보며 '초등 입학생 엄마인 내가 그래도 되나'라는 고민에 붙잡혀 있었던 것 같다. 30분 뒤 학교에서 또다시 전화가 왔다. 혹시 휴직 계획이 있으면 빨리 알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전의 통화에서 했던 내 말에 무언가 다른 여지를 느꼈던 모양이다. 이번에 나는 분명히 말했다.
"네, 복직합니다~워크숍 기간에 뵐게요!"
이렇게 나의 복직이 결정되었다. 아니, 나는 복직을 결정했다.
1년 더 휴직할 계획이라는 내 말이 우습게 나는 복직을 할 것이고, NVC2 과정을 2월에 꼭 듣겠다는 다짐이 다이어리에 쓰여 있었지만 신청 후 취소했다. 그리고 보고 싶었던 뮤지컬 티켓을 두 장 예매했다. NVC2 강의 일정과 겹쳐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뮤지컬이었다.
'이 길 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며 앞만 보고 걷다가 그 길을 멈추고 주변을 보면 늘 새로운 길이 있다. 거기에 또 다른 기회가 있다. 다음 주에 오실 예정인 친정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엄마! NVC수강 신청 취소했어~ 대신 엄마랑 뮤지컬 데이트 할 거야. " 아마 엄마는"너 NVC 배운다고 애들 좀 봐주러 오라더니 무슨 소리고?" 이럴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지? "비폭력대화 공부도 중요한데, 엄마랑 더 좋은 시간 보내고 싶어!"
가끔 '인생이 이런 건가 봐... '느끼는 때가 있다. "별일 없이 잘 산다." "나쁘지 않아." 등이 가진 엄청난 힘을 안다. 특별히 좋은 일이 없어도 특별히 재미난 일이 없어도 제법 괜찮은 일상을 지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스러운 일인지,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할 일인지를 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괜찮지 않은 때를 지나와야 한다. 피할 수 없는, 피하고 싶은 순간들을 두 발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가 새로운 출구를 향해 걸어 나와야 비로소 보인다.
2019년, 업무 스트레스와 시댁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을 때 나를 멈춰 세우고 돌아보게 한 건 바로 갑상선에 생긴 작은 암덩이였다. 그 못된 덩어리 하나를 떼어내기 위해 갑상선수술분야의 세계 최고 교수를 찾아 지금 이곳에 왔다. 2020년 둘째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100일을 맞이할 즈음 내 목에 수술자국이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못된 덩어리가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인생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때론 폭탄이라고 여겨지는 것조차도 터지고 나서 시커먼 연기가 사라지고 나면 선물이 들어있었구나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의 교직생활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려운 순간이 와도 지금 이 순간 글을 써 내려가는 나의 마음을 기억한다면 담담히 한 걸음씩 힘 있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때론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계속해서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기를. 그 발걸음이 계속되기를.
---------------------------------------- 덧,
저녁으로 갈치를 굽고 있던 남편이 무심한 듯 말했다. "뮤지컬 공연 보고 싶으면 빨리 예매해~ 내가 지원해 줄게." 내가 이미 VIP티켓으로 예매까지 끝낸 것을 모르는 남편이 비폭력대화 수강신청을 취소했다는 말을 듣고 한 말.
P.S. 고마워! 나는 여전히 당신이 던지는 말이 아플 때가 많지만 내 마음속 VIP자리는 늘 자기 거야. 자기 이런 말 들으면 "오버하지마"라고 할 것같으니 글로만 쓸게. 그래도 나는 계속하고 싶어.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니까. 내 마음을 잘 표현하려고 비폭력대화를 배우는 거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자기의 뾰족한 말 뒤에 숨겨진 귀한 마음을 보고 싶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저 오글거리는 말을 직접 해 보고 싶어. 이 말도 같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