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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Nov 15. 2022

엄마의 비겁한 변명

아이가 알려준 아주 중요한 규칙 하나.

"보통 첫째들에게 둘째는 남편이 첩을 집에 들이는 정도의 스트레스라고 하잖아요. 첫째가 둘째 질투하지 않나요?" 

주변의 엄마들이 종종 물었다. 나는 첫째가 둘째를 질투한다고 생각이 들 만한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요, 아무래도 힘들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동생을 많이 예뻐하고 잘 놀아줘요. 오히려 동생이 엄마 말보다 오빠 말을 더 잘 듣기도 하고.."


나는 둘째 아이, 햇살이를 뱃속에 품을 때부터 첫째 아이, 태양이에게 이를테면 권한 같은 것을 많이 주었다.

"태양아, 네가 뱃속에 아가 소리를 더 잘 들으니까 햇살이가 뭐라고 하는지 듣고 엄마한테 말해줄래?"

떠올려보면 이런 식이 었다. 새로운 가족이 될 존재가 우리 사이에 끼어드는 게 아니라 우리를 더 연결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싶었다. 나름 내 육아 방식에 자부심을 가지며 건강하게 잘 자라는 두 아이를 열심히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 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나의 안일한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터졌다.


최근 2년 내내 재택근무로 집에 있던 남편이 독일로 출장을 떠난 지 3일째 되는 날 밤이었다.

"엄마는 내 말은 안 들어주고!! 햇살이 말은 바로 들어주고!! 엉엉엉~~ 이제 확실히 알겠어. 엄마는 햇살이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아빠아~~~ 엉엉엉"

3살 햇살이가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도록 앉혀 주는 동안 첫 째아이는 갑자기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소리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은 이러했다. 태양이는 의자로 장난을 치다가 다리가 의자 사이로 빠졌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의 도움을 요청한 터였다. 그때 나는 응가를 하겠다는 햇살이의 말에 아이를 안아 들고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만~ 햇살이 변기에 앉혀주고 도와줄게!"

도움을 청한 즉시 달려올 엄마를 기대한 태양이에게 나는 이미 자신을 동생보다 덜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버린 것.


나는 아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악을 쓰듯 이야기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달려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반항하며 몸을 뒤로 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본격적으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동안 참았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듯 꺼이꺼이 울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쉴 새 없이 쏟았다.

"그제 엄마가 햇살이 재우고 2층에 올라온다해놓고 안 왔지? 난 그때 알았어~~ 엉엉. 엄마는 나보다 햇살 이를 더 사랑하는 거야. 그리고 어제 잘 때도 엄마가 햇살이 쪽만 쳐다보고 나는 안 쳐다보고. 엉엉~~ 내가 다 보고 있었어! 모를 줄 알았지? 엉엉엉~~"  


평소 아이 둘이 2층 침대가 있는 방에서 자는데 보통 태양이가 잠들 때까지 아빠가 옆에 있어준다. 남편이 없던 첫날 나는 몇 번이고 위, 아래를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내 행동이 오히려 아이들이 잠이 드는데 방해가 되는 거 같아서 나는 태양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햇살이를 먼저 재우고 올라가겠다 약속을 했다. 햇살이가 잠든 후 2층에 누운 태양이가 잠이 든 거 같아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왔는데 그때 아이가 잠이 든 상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둘째 날은 2층 침대에 따로 재우길 포기하고 아이들의 침구를 모두 안방 침대로 가져와 셋이 나란히 누웠다. 나는 양쪽에 아이 둘을 끼고 누워 새삼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감격하며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같은 시간, 태양이의 마음속에는 동생 쪽으로 더 자주 몸을 돌린 엄마 때문에 서운함이 무겁게 내려앉았던 모양이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마음울도록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태양이의 악을 쓰듯 토해낸 말들이 잠잠해질 때쯤, 나는 깨달았다.

'아, 올게 왔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이렇게 표현을 다해줘서..'

나는 가슴에서 아이의 얼굴을 떼내어 눈을 보고 말했다.

"네가 그렇게 느꼈구나... 엄마는 태양이를 최고로 사랑하는데... 더 어린 동생이 엄마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엄마가 동생을 더 챙긴 거 같아. 태양이가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엄마가 앞으로 태양이 말에 더 귀 기울일게.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잘한 거야. 잘했어."


2주 뒤.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 아이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다 돌아오던 시간에 남편이 카톡을 보냈다.

[8시 30분 도착 예정. 태양이가 왜 항상 할머니 집에 갔다가 주차장에 도착할 때 엄마가 햇살이만 안아주냐고 따짐. 태양이부터 안아 줘. 크크]

귀여운 녀석. 떠올려보니 난 항상 먼저 손 흔들며 반갑다고 소리 지르는 햇살이에게 두 팔이 향했다. 늘 신발을 벗고 카시트에 앉아있는 햇살이를 안아 들었고 신발은 남편이 챙겼다.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춰 주차장에 차가 들어섰고 태양이가 탄 쪽을 확인한 후 빠르게 걸어갔다. 언제나 그랬듯 햇살이가 창문을 열고"엄마~~ 보고 싶었어~~" 인사했다. "안녕! 엄마도 보고 싶었어~"라고 말하고 태양이에게 다가가 몸을 숙여 아이를 안았다. 태양이는 쑥스러운 듯 몸을 뺐지만 나는 더 세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태양이~ 잘 갔다 왔어? 보고 싶었어~"  


집으로 들어와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데 태양이가 말했다.

"엄마는 왜 항상 할머니 집 갔다 오면 햇살이만 먼저 안아주고! 흥! 이제 확실히 알게 됐어. 엄마는 햇살이를 더 사랑하는 거야."

동생을 질투하는 태양이가 또 그 소리를 하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러게~ 엄마가 늘 주차장에서 햇살이만 안았구나.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햇살이가 늘 먼저 손 흔들고 소리치니까 엄마가 그쪽으로 먼저 가게 된 거 같아! 네 생각은 어때?"

내 말이 끝나자 태양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어른인데 왜 그렇게 규칙을 몰라? 우리 유치원에서는 얌전히 앉아있는 아이부터 간식 준단 말이야. 그러니까 조용히 기다린 나를 먼저 안아야지~~!"

나는 태양이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와 정말 그러네! 엄마가 그 규칙을 몰랐구나! 이제 확실히 알았으니까 다음부터는 항상 태양이 너부터 안아줄 거야. 고마워. 규칙 알려줘서."


늘 그렇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사랑해. 내 소중한 아이,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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