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다르길래? 우선 내가 직접 살아보면서 느낀 건 육아로 인해 부모에게 생기는 물리적/정서적 제한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코펜하겐에 살다 보면 일상에서는 물론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시내 힙한 와인 바라든지,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찬 펍이라든지, 사무실 바닥에 서라든지, 어른들을 위한 공연장이라든지. 또 있다! 카페 앞에 주차된 유모차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신생아가 잠을 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덩그러니 밖에 세워두고도 맘 편히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 수 있는 나라. 그게 위험하지 않은 나라, 또 그게 아동학대가 아닌 나라. 무엇보다도 코펜하겐에서 살면서 나를 충격에 빠트린 팩트는 그 누구도 '아기 엄마' '여자'라는 이유로 참견하거나 옛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삶의 곳곳에서 아이를 만나게 되는 코펜하겐 photo by. DK sisters
아이와 함께 맥주 한잔 즐기러 나온 부부 Photo by DKsisters
아이 때문에 너를 포기하지 않아도 돼
여성과 남성의 평등함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이 나라에서는, 아이가 있는 엄마라도 늦은 저녁에 집을 나와 분위기 있는 바에서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친구들과 취미로 암벽등반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엄마가 외출해 있는 동안 남편 혹은 남친*이 아이를 대신 맡아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편과 번갈아 가면서 각자의 삶을 즐기는 게 그들의 문화다. *덴마크에서는 법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아도 가족으로 인정해 아이의 아빠가 남편이 아닌 '남친'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돌보고 있는 시간에도 즐길 거리는 많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무료로 유모차를 태울 수 있고, 언제나 널찍한 유모차 지정석이 준비되어 있다. 퇴근 시간 복잡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는 유모차를 보더라도 눈살 찌푸리는 사람이 없었다.
맥주 팩토리 기프트 샵에서 초콜릿을 맛보고 있는 아이 (왼), 미술관 카페리아에 자유롭게 세워둔 유모차 (오) Photo by DKsisters
육아러들을 위한 다양한 취향, 취미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BRUS라는 펍에서는 전업 육아 중인 엄마, 아빠를 초대해 그들을 만을 위한 홈브루잉 클래스도 열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경우 음료를 10% 할인해 주는 프로모션도 있다.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간혹 시끄러울 수는 있겠지만 출산휴가 중인 부모의 행복과 여유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배려해주는 문화가 참 덴마크스럽다. 그게 어쩌면 전 세대가 행복한 사이클을 만드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육아도 건강도 중요한 러너들을 위한 유모차 jogging stroller가 인기다 Phto by. DK sisters
부모들을 위해 BRUS라는 펍에서 열린 수제 맥주 클래스 Photo. BRUS instagram
덴마크 출산 휴가는 총 52주인데, 출산 예정일 기준 4주 전부터 출산 후 14주는 엄마, 출산 후 2주는 아빠가 써야 하지만, 남은 32주에 있어서는 엄마나 아빠가 선택적으로 쓸 수 있다. 기간만 보면 한국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전체 산모의 99%가 이 제도를 활용한다는 게 차이다. 주 근무시간도 38시간에 베이비시터 문화도 잘 정착되어 있다. 아이나 부모의 행복을 존중하면서도 육아와 삶의 밸런스를 장려하는 문화 속에 산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