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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섬 Jul 21. 2023

영상 노출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으신가요?

27개월 아이에게 영상 노출로 교육을 시도해 본 짤막한 경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이제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영어습득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는다. 영어를 따로 가르치지는 않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두고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처음에는 밥 잘 먹고, 배변 잘 보고, 잠만 잘 자도 너무나 대견하게 느껴지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그렇게 감사했는데, 아이가 클수록 조금씩 욕심이 생긴다. 드라마에서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자신보다 더 큰 책가방에서 SAT에 나올 법한 영어단어집을 꺼내 외우는 아이가 나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저렇게 안 키워야지 다짐해도 여전히 구독, 팔로우하는 육아 SNS에 “바이링구얼로 키우기,” “처음 아이에게 노출하기 좋은 영어 영상,”은 눈에 들어온다. 글로벌 시대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조금은 더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욕심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듣기라도 익숙해지라는 마음으로 아이가 100일 정도 때부터 오전에는 어린이집 한글 동요, 오후에는 노부영 마더구스를 들려줬다. 우리 집엔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 이벤트로 받은 구글 홈미니가 있는데, 매일 ‘헤이 구글, 노부영 마더구스 들려줘’라고 말했다. 집으로 놀러 온 친구는 그 모습을 보더니 S(아이)가 제일 먼저 말하는 영어는 헤이 구글이겠다, 고 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이가 100일 때부터 2개 언어를 들려주며 욕심을 부리던 나는, 아이가 두 돌이 되면서 이제는 제대로 영상노출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까투리’, ‘호비’, ‘페파피그’, ‘핑구’ 등을 보여줬고, 그중 영어와 한국어가 모두 있는 페파피그가 그림체도,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와중 지인으로부터 페파피그 원서 시리즈를 선물 받았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감사하게도 어린 시절 해외에서 미국 국제학교를 다녀서 영어 원서를 읽고 번역해서 읽어주는 데에도 어려움이 없어서, 아이에게 편하게 원서를 읽어줬다. 영어로도 읽어줬지만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서 한국어로 더 많이 읽어줬고, 그렇게 아이는 페파피그를 책으로 먼저 친해졌다.

요즘 도서관에서도 페파피그 책을 빌려요


그다음 페파피그 영상을 본격적으로 보여줬는데, 아이는 역시 페파피그를 좋아했고, 페파피그는 나와 남편의 삶을 잠시나마 윤택하게 만들어준 선물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1화(5분 내외)만 노출하던 시간이 점차 시리즈(18분 내외)가 되고, 시리즈도 2개, 2개 반까지 보여주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처음엔 아침, 저녁을 만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원인이었다. 준비시간 동안만 보여주려 했는데 그 편함을 알게 되니, 나와 남편의 식사시간을 벌게 되고, 나중엔 집콕하게 되었을 때, 각자 주말에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S한테 페파피그 보여줘’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는 오히려 조금만 보여주니 더 보여달라고 떼를 쓰는 악영향이 있었는데 오히려 긴 시간을 보여주니 꺼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건 아주 안 좋은 신호의 시작이었다.


아이는 확실히 영상을 보면서 한국어 발화가 많이 늘었다. 그리고 중간에는 영어로 보겠다고 표현도 했다. 부모의 쉬는 시간도 벌고, 아이는 언어를 배우고, 이런 훌륭한 시스템이 어디 있나! 감탄했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영상노출이 아이의 뇌에 주는 자극에 대한 걱정을 하긴 했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발화하는 언어 중 부정어가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도 외국어를 배울 때 욕을 제일 먼저 배운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곤 할 정도로, 부정어 습득이 더 빠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영상 자체에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지 않았는데 왜 그럴까? 책을 읽어줘도 아이는 확실히 부정적인 순간, 예를 들어 다친 것, 잘못을 한 것 등을 더 많이 기억하고 보여주고 있었다. 다친 것으로도 부모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애정결핍, 불안한 애착형성을 보인다는 육아 서적을 읽고, 나는 우리 아이의 애착형성에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은 그다음 날부터 즉시 끊었다. 조금씩 줄이는 것보다는 아예 바로 중단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물론 그 대가는 고스란히 부모에게 오지만. 아이는 이틀 정도 페파피그를 보고 싶다고 아침저녁으로 울고 떼를 썼다. 남편은 아이에게 결국 보여주자는 이야기도 했지만, 내가 꽤나 강건하게 주장해서 남편도 나의 뜻을 따라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페파가 겨울나라로 여행을 갔대. 우리 겨울이 되면 다시 만나자고 하자. (아이 세돌이 겨울이라, 그 정도에서 나름 협의를 봤다.ㅋㅋ) 그리고 3일 차, 아이는 여전히 아침에 페파피그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 나는 출근준비를 하면서 계속 달래는 것에 지치기도 해서 아이에게 사실을 말해주기로 했다.


‘S아, S가 페파피그에서 안 좋은 말을 많이 배우는 것 같아. 엄마는 S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아. 더 크고 페파피그를 봤으면 좋겠어.’


아이는 울먹이더니, 이상하게도 수긍한 듯 울음을 그치고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본인이 영상을 보여주기 이전에 좋아하던 놀이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스스로 놀이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새로운 놀이도 만들어냈다. 블록을 쌓아 놀이터를 만들고 페파피그 피규어들을 가지고 와서 놀이터라며 역할놀이를 하면서 놀기도 하고, 퍼즐을 맞추고 더 어려운 퍼즐에 도전하려고 하고, 책을 사달라고도 하고, 책을 열심히 보며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아이는 책을 좋아하고, 엄마와 도서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다. 영어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론 영어는 살짝 뒷전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집에 있는 영어책을 가끔 읽어달라고 하고 ‘헬로’ ‘굿바이’ ‘굿모닝’ 정도는 꽤나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영어는 한국어를 더 많이 잘할 때, 그때 가르쳐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는 아이가 바이링구얼이 되는 것보다 올바르고 건강한 애착형성을 갖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주도적인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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