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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Dec 07. 2018

The show must go on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난 후의 여러 가지 생각들

* 본 글에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언급됩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영화를 보신 후에 읽어보시길 가장 권해드립니다.


 올해 10월에 개봉한 영국 밴드 퀸에 대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12월 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통계 기준 604만을 넘겨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 중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퀸의 '쿵 쿵 짝'의 힘이 <레 미제라블>, <라라 랜드>, <비긴 어게인>과 같이 큰 사랑을 받았던 음악 영화들의 흥행 성적을 넘겨버렸네요. 비단 음악이 소재인 영화로 한정 짓지 않고 외국 영화, 더 나아가 수많은 상업 영화 중에서도 손꼽힐 놀라운 흥행입니다.

 티켓 파워만이 다가 아닙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OST를 중심으로 퀸의 음악들이 음원 차트와 방송에서 종횡무진하고 있고, 유튜브와 인터넷, SNS에는 영화 감상 후기와 퀸의 후일담으로 가득합니다. MBC에서는 영화의 정점으로 다뤄진 1985년 Live Aid 공연 중 일부를 편집 방영했는데, 퀸의 무대 20분은 편집 없이 그대로 방영했지요. 공중파의 다른 채널에서 또 다른 다큐멘터리도 편성했다는 소식이 들리네요.


 제가 보고 싶어서, 같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과 같이 보고 싶어서,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같이 보기 위해서 전 <보헤미안 랩소디>를 4번을 보게 됐습니다. 저도 많이 본 축에 속하긴 하지만 다회차 관람이 40회를 넘긴 분들도 있더군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600만이 넘는 관객수와 모바일과 공중파를 가리지 않고 뜨거운 화제성, 여러 개의 싱어롱 관이 운영되는 상황을 보면 오랜 퀸의 팬이자 기타 키즈로서 감히 감개무량하기까지 합니다. 평생을 흠모해온 락 밴드의 음악과 그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모두에게 회자되고 사랑을 받다니... 사회적 현상의 하나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 같네요.


 이 영화를 몇 차례 보고 난 제 마음은 꽤 복잡합니다. 이 글을 약 3주 전부터 쓰겠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운을 떼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게으름이란 이유가 1번이긴 하나, 다회차 관람을 하며 꽤 여러 가지 생각과 입장이 제 속에서 오고 가며 이 영화에 대한 입장을 딱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여전히 정리하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공존하는 글의 길로 가기로 했습니다. 퀸의 <The Platinum Collection> 앨범도 수많은 명곡들이 두서없이 마구마구 담겨있지 않습니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티저 포스터


 위의 포스터가 공개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불꽃 흥행을 이어갈지 예상을 못했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퀸의 결성 초기부터 Live Aid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영화를 연출한다는 정보를 접한 작년부터 기대가 컸지만, 제작 과정에서 들리는 잡음에 대한 루머가 심상치 않았어요. 브라이언 싱어가 주연 배우인 라미 말렉과의 갈등이 심한 나머지 촬영장에서 물리적 마찰이 일어났다는 유쾌하지 않은 루머가 시작이었습니다. 이어 브라이언 싱어가 건강 상의 이유로 촬영지를 이탈했다며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에서 브라이언 싱어를 해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브라이언 싱어는 이에 반발하는 성명까지 냈습니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영화 제작이 뭔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죠.


 결국 20세기 폭스는 브라이언 싱어를 해고했고, 곧이어 브라이언 싱어는 강간 혐의로 소송에 휘말렸습니다.

퀸의 이야기가 영화화된다는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기도 했지만, <X MEN> 시리즈를 통해 사회 소수자와 정의에 대한 담론을 개성 있는 화법으로 담아냈던 브라이언 싱어가 퀸의 이야기를 연출한다니 기대가 컸는데 선장이 영화 완성 전에 하선을 해버렸으니... 영화가 제대로 개봉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솔직히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중간에 덱스터 플레처(영화 <에디 더 이글>의 감독)가 대타로 기용됐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덱스터 플레처의 실력이 의심되서가 아니라 브라이언 싱어가 찍어놓은 분량을 전부 다 버리지 못하는 이상 대타의 기용은 끔찍한 혼종을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 영화에 대해서 한동안 잊고 살았지요. 여담으로 브라이언 싱어의 퇴출 후에 구원 투수로 리들리 스콧이 거론되어 미팅이 진행된 바도 있다고 합니다.


 올해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 정상적으로 개봉은 하는구나. 당연히 볼 거지만 기대는 안돼 헤헷"이 제 상태였습니다. 전술한 끔찍한 혼종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겠지요. 저는 음악을 소재로 하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런저런 기대감과 예상으로 행복 회로를 마구 돌리는 부류의 인간인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는 돌이켜보니 영화가 어떤 구도로 흘러갈 거라는 예상이나 기대 없이 관람을 했네요. 때문에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소감이 '기대에 어긋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이런 식의 팩션으로 만든 거야?! 왜?!"


 매번 영화관을 나오고 밥을 먹으면서,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음악을 틀면서 이런 생각이, 불만에 가까운 감정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담긴 밴드의 에피소드와 영상화된 이미지는 참 풍부합니다. 결성에서 시작해 제대로 된 레코드를 발표하는 과정, 메이저 밴드로 성장하며 대형 투어를 도는 여정, 새로운 곡을 쓰고 리코딩하는 과정, 매니지먼트와 친구, 가족들과의 갈등과 회복 등의 사건 들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또한 Live Aid의 백 스테이지에서 언급되는 멘트들부터 마이크 케이스에 담긴 술병, 무대 의상과 무대 위에서의 작은 모션들, 곡들이 쓰이는 과정과 프레디 머큐리의 파티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우면서도 디테일한 이미지들의 향연을 위해 제작진과 배우들이 쏟았을 노력이 눈에 선합니다.



다 됐고, 현실의 브라이언 메이와 영화의 브라이언 메이의 싱크로율이 모든 디테일을 다 이겼습니다. 두 사람은 대체...


  쉴 틈 없는 에피소드와 풍성한 이미지의 공급에도 영화의 서사는 밋밋합니다. 매 관람 회차 마다 평면적이거나 나열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다회차 관람의 미덕인 '이전 회차에서는 놓쳤던 서사 구조의 재발견'도 없었습니다. 그저 라미 말렉이 얼마나 프레디 머큐리의 작은 모션까지 모사하려 노력을 했을지 감탄하거나 무대 장치와 소품 디테일이 뛰어나 다는걸 기계적으로 칭찬하는데 그치게 되더군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이야기 구조는 제게는 와 닿지 않았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그려진 퀸의 시간들이 실제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은 당장 위키피디아나 유튜브만 검색해봐도 줄줄이 나옵니다.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극화된 상업 영화이니 팩션의 노선을 택한 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기 위해 실존 인물들과 밴드의 역사, 에피소드, 노래와 무대에 대한 이야기들에 살을 붙일 수 있지요. 베넷 밀러 감독의 <머니볼>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사실과 극화된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머니볼>은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많은 시상식에 Best Film 후보로 올라가고 AFI Award 등 많은 시상식에서 수상을 했고, 많은 관객들에게 좋은 영화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실제 사건과 극화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메시지가 명확하고 재미까지 있는 영화로서 좋은 평가와 사랑을 받게 된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화가 전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나열된 개별 에피소드가 매력적인지의 측면 모두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평소에 음악과 영화를 주제로 몇 시간씩 수다를 떠는 영문과 선생님께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상태로 "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뭐였어?"라는 질문을 툭 던지셨는데 대답에 애를 꽤 먹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보고 "퀸의 음악이 정말 좋다는 걸 새삼 확인한 것 같아요"라고, 더 오래 생각했더라도 같았을 답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본 지인들과의 이런저런 대화를 복기해보니 영화에서 표현된 서사와 에피소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바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난 Somebody to love를 예전부터 진짜 좋아했다', 'Live Aid에서는 Radio Ga Ga가 끝내줬다', '와, Love of my life 떼창 진짜 소름ㅠㅠ', '영화에 사용된 음원들은 원래 있는 거야 아니면 새로 녹음을 한 거야?' 등 퀸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음악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감상 후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함께 나눌만한 인상적인 서사가 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퀸의 음악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품이고 프레디 머큐리는 불세출의 보컬 영웅이지요. <보헤미안 랩소디>는 2001년에 락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 세계 인증 음반 판매고가 1억 장이 넘는(출처 : 위키피디아) 전설의 밴드가 위대하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TV CF나 라디오, 인터넷 등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들이 모두 퀸의 노래였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많고, 이로 인해 퀸의 음악이 더 사랑받게 되고 밴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영화가 밴드의 위대함을 부각하기 위해 택한 길은 밴드의 이력과는 다른 서사의 창조였습니다.

 "정체성과 변화, 사생활에 대한 언론의 집착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프레디 머큐리가 솔로 활동을 택하며 밴드와 멀어지고, 에이즈에 걸린 프레디 머큐리가 방황을 끝내고 밴드에게 용서를 빌고 극적으로 재결합하여 Live Aid에 오른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이기 쉬운 서사입니다. 갈등이 태어났고, 갈등이 심화됐고, 화해를 하며 갈등이 해소됐고, 그 원동력으로 최고의 무대를 만들었다. 확실한 영웅 신화네요.

 게다가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제작에 참여하면서 '본인 피셜'이라는 치트키를 확보했습니다. 전기 영화로서 본인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했으니 이보다 더 확실할 수는 없겠지요.

 현실의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활동으로 인해 갈등을 겪은 바도 없고, 때문에 Live Aid 이전에 극적으로 화해한 바도 없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는 Live Aid 이후에 에이즈 판정을 받게 되기 때문에 Live Aid가 생명을 건 일생일대의 무대가 아니었습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프레디 머큐리와 퀸은 부족함 없는 영웅인데, 신화의 MSG가 가미가 됐네요. 저는 이 부분이 참 불편합니다. 창조된 서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의도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재현된 퀸의 무대


 대중이 아티스트에 대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를 하는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저도 오인지의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어느 잡지의 퀸을 가룬 기사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존 디콘이 치과의사'라는 내용을 읽고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존 디콘을 '치과의사 베이시스트'로 알고 살았습니다. 정작 로저 테일러가 치대생이었다는 걸 안 건 얼마 안 됐는데, 제 개인이 밴드에 대해 갖는 감정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공부도 잘하는 베이시스트 양반이라고 생각했다가 실은 드러머가 공부를 잘했구나?! 정도일까요.

 <보헤미안 랩소디>의 극적 감동을 끌어올리기 위한 창작된 서사는 심지어 '본인 피셜'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등에 업고 펼쳐집니다. 퀸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 이 서사를 접하면 어떨까요? 실제 사실을 접했을 때 보다 더 큰 감흥을 느끼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요? 퀸을 해체의 갈등과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딛고 Live Aid에 올라 전설의 무대를 만든 팀으로 기억하게 되는 분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퀸에 대해 생각할 기준에 의도적인 감동 코드를 끼워 넣은 건 아닐까요. 극화된 서사의 계단에 올라 펼쳐지는 We are the champion의 감흥은 온전히 음악의 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CG를 입히지 않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Live Aid 촬영 셋 현장. 어쨌든 배우들과 제작진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많은 매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퀸의 전기 영화'로 언급합니다. 기우일지 모르겠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흥행에 성공한 음악 영화가 향후 아티스트 전기 영화에 '의도된 극화'라는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마트폰에서 검색어를 클릭하는 작은 노력만 기울여도 퀸의 일대기를 상세히 알 수 있는 시대에서 이 영화는 양과 질 모두 큰 폭의 극화를 택했습니다. 인터넷에서 퀸에 대해 검색을 하지 않고 정보가 전무한 상태로 관람하는 관객들도 많겠죠.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무시하고 그냥 사실과 다른 길로 제시했다는 느낌이 들어 불편합니다. 용비어천가처럼 느껴지네요. 동시대를 풍미했던 영국 출신의 대형 락 밴드들의 -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즈 - 역대급 기행과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퀸의 연대기는 무탈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극화를 통해 밴드의 커리어의 변곡점을 최대한 날카롭게 깎아낸 걸까요? 그렇게 얻은 극화를 통해 하고 영화가 주장하는 바가 '퀸의 음악은 위대하다'라면, 굳이 이런 극화를 택한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있는 사실과 차이가 없는 주장 아닌가요.

 

 현실의 퀸에게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프레디 머큐리의 투병과 별세까지의 시간이겠지요. 이 영화의 무게중심은 온통 프레디 머큐리에게 쏠려있습니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지금은 아무 말이 없는 프레디 머큐리.

 <보헤미안 랩소디> 이전에 사챠 바론 코헨을 주연으로 한 퀸의 영화가 기획된 적이 있었는데, 사챠 바론 코헨은 프레디 머큐리의 외설적이고 일그러진 이미지에 집중하고자 했으나 브라이언 메이가 결사반대했다고 합니다. 브라이언 메이는 한 인터뷰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영국의 The Sun과 같은 언론들이 프레디 머큐리의 외설적인 이미지와 사생활에 집착하고, 롤링 스톤은 퀸의 음악을 제대로 평가하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간 왜곡되어 있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미지를 다잡아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를 <보헤미안 랩소디>에 담았다고 하네요.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인간적인 면에 집중한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가족, 종교, 사랑, 커리어, 아픔 등 거의 모든 면에 카메라를 비춥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든 프레디 머큐리도 복잡하고 다층적인 면이 있는 사람이었겠지요. 단 두 시간 내에 한 사람의 가족, 종교, 사랑과 이력을 모두 다룰 수 있을까요? 다행히 이 영화는 이런 영역들을 하찮게 스쳐 지나가도록 소홀히 다루지는 않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정체성의 혼란과 변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에 대해 집중된 시선을 보내며 그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이입하기 쉽도록 서사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설계된 이야기 속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외로움과 회한에 공감하며 Live Aid 무대에 선 그의 당당한 모습을 보면 마음의 울림을 진정시키긴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들은 앞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에 표현된, 혹은 미화된 이야기가 프레디 머큐리와 퀸의 진실로 알고 살아가겠지요. 이 지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에피소드들이 기능적으로 나열되고 표면적이라는 느낌을 받아 딱히 명장면이라고 꼽을만한 에피소드를 찾기가 어렵네요. 다양한 사건들이 쉼 없이 계속 진행되긴 하는데요, 극 내에서는 갈등인 상황이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밴드가 큰 다툼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흘러나온 베이스 리프가 인상적인 나머지 "잠깐, 이건 정말 괜찮은데?"라며 갈등이 눈 녹듯 없어지고 합주를 진행하는 에피소드는 정말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간다는 표현이 딱입니다. 격정적인 나머지 예민하고 상처 받아 탈선하는 인간으로 프레디 머큐리를 조명해놓고, 그와 그의 동료들이 영혼을 걸고 연주하고 마찰을 일으키는 장면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화해 수준이라니요.

 메리 오스틴 역을 맡은 루시 보인튼이 영화 전반에 걸쳐 보여준 연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정작 메리 오스틴이 프레디 머큐리의 커밍 아웃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슬퍼하는 매우 중요한 장면의 감정선은 무미건조합니다. 그냥 오늘 저녁에 슬퍼해야 할 계획이니 눈물을 흘린다.. 정도로만 그쳐서 이 부분은 연기 디렉션이 문제인지 연기력이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흘러갑니다. 라미 말렉을 중심으로 한 배우들의 호연이 없었더라면 정말 무미건조하게 흘러가서 더 마음이 불편했을 것 같습니다.


Another one bites dust의 가사를 읽어나가는 장면의 라미 말렉의 연기는 일품입니다. (자네, 실제로 밴드 해본 경험 있지?!)


 만약 브라이언 싱어가 도중에 해고되지 않았더라도 이런 아쉬움은 남았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톤이나 편집의 맥이 바뀌거나 튄다는 느낌을 저는 받지 못했거든요. 특정 장면에서 부각된 아쉬움이 아니기 때문에 더 아쉽습니다. 다양한 군상들이 엮여 갈등에 이르고 다수와 소수의 쟁점을 개성 있게 연출했던 브라이언 싱어의 특별한 시각을 기대했는데, 브라이언 싱어와 제작진의 생각과 의도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길게 이 영화의 창조된 서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는 과정은 참 즐거웠습니다. 한없이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드는 영화를 4번이나 볼 수는 없죠. 즐거운 이유는 '나와 내 지인들에게 소환되는 퀸 음악의 매력' 때문인 것 같습니다. 2시간 내내 영화관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에서 퀸의 음악과 무대가 팡팡 터지는 기쁨. 영화를 보고 난 후, 각자가 갖고 있는 퀸의 노래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나누는 시간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퀸에 대해 몰랐던 많은 일들. 퀸의 음악을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이 노래도 퀸 노래였어?'라며 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뿌듯함.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런 기쁨들을 상기시켜줍니다.


퀸+아담 램버트의 슈퍼소닉 타임테이블. 만 명도 안 되는 관객에 비까지 와서 크게 망했지만, 퀸의 무대를 앞두고 비가 그쳤고 퀸의 공연은 정말이지 끝내줬습니다.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씬은 영화가 모두 끝나고 흘러나오는 Don't Stop me Now의 뮤직비디오입니다. 소스도 좋지 못한 화질에다가 모르긴 몰라도 수십 번을 봤을 그 뮤직비디오를 보니 뭉클하더군요. 두 시간 동안 영화 속에서 퀸의 음악이 쌓이면서 찍힌 감흥의 방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20세기 폭스 로고가 뜰 때부터 퀸의 팬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톤으로 포문을 열어 20여 곡의 명곡들이 달려 나가고, Live Aid 무대의 완벽한 재연까지 경험하고 나면 퀸의 에너지가 귀와 가슴에 꽉 들어차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은 팬들이 20여 곡의 OST 선곡에 '내가 꼽는 최고의 퀸 노래인 ㅇㅇㅇ는 왜 빠졌냐!'라는 아쉬움을 토로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곡이 몇 곡 있거든요.) 그렇지만 OST의 선곡에 제작진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가 느껴지고, 영화가 Live Aid까지를 다뤄 이후 나오는 앨범의 곡들을 커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부족함 없는 퀸의 베스트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내내 음악적으로 꽤 치밀하게 구성되어있어 Live Aid 장면의 폭발력이 배가 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Don't Stop me Now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한국 개봉 환경에만 적용되는 조건으로 황석희 씨의 번역도 영화의 감동에 힘을 더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사는 물론이고 가사의 번역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 특히 Hammer to Fall, Another one bites dust은 '와, 정말 좋은 번역이다'라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좋은 번역이 영화 감상의 중요한 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브라이언 메이가 언급한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미지를 다잡고 세상에 알린다'는 목적은 달성된 것 같습니다. 평생 퀸을 흠모했던 이들은 다시금 그 사랑을 깨달았고, 퀸을 몰랐던 사람들도 그들의 팬이 됐으니까요. 영화 내에서 표현되는 동성애 장면에 대한 불편 논란이나 여론도 일부 있지만 퀸의 음악에 대한 애정이 그러한 담론 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얘기한 사챠 바론 코헨이 의도했던 일그러진 프레디 머큐리의 이미지에 집중한 영화가 나왔다면 더 흥미 있는 작품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제작진과 배우의 해석이 확실한 영화가 될 것이고,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계몽 운동적인 성향을 띄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흥행은, 퀸의 음악에 대한 붐은 일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역할과 영향력에 미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결국 퀸의 음악이 다 했다"라고 말한다면 제작진의 노력을 너무 평가절하하는 걸까요.


 영화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퀸 음악의 매력을 발산하기 위한 장을 마련한 <보헤미안 랩소디>를 미워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양가적인 감정이 들고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아, 브라이언 메이가 얼마나 독보적인 톤을 지닌 기타리스트이고 로저 테일러의 코러스 실력이 얼마나 엄청난지, 퀸 각 멤버들이 작곡한 곡들이 어떤 매력과 특징이 있는지도 더 알려지면 좋을 텐데... 결국엔 이런 생각에 이르고 퀸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더 계속되길 바랍니다. 더 많은 방송사들이 퀸의 음악과 다큐멘터리를 틀길 바랍니다. 더 많은 유튜버, 블로거들과 팬들이 퀸에 대한 진실과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길 바랍니다. 퀸과 동시대에 활동했거나 그 이전, 그 이후의 더 많은 밴드들의 음악이 조명받고 사랑받길 바랍니다. 퀸 못지않게 훌륭한 음악을 자랑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못한 아티스트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리고 더 욕심을 내자면 <보헤미안 랩소디>와는 다른 톤과 시각이 담긴 아티스트와 음악에 대한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눌 장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나누는 것은 너무 즐겁거든요.


 그렇게 세상의 모든 쇼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격정과 슬픔과 고통과 사랑을 담은 모든 아티스트들의 쇼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덧) <보헤미안 랩소디>의 스탭 롤에서 흘러나오는 The show must go on은 엘튼 존이 보컬로 참여한 라이브 버전이 정말 끝내줍니다. 프레디 머큐리 정도 되는 보컬의 곡을 부르는 건 손해 보는 장사인데 엘튼 존의 비장한 소화력은 원곡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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