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최고의 팝 25곡
2020년 구정 연휴와 함께 2010년대는 확실히 마무리가 됐습니다. 사건들로 꽉 찬 10년간 제 삶에 많은 추억과 감동, 위로를 주었던 2010년대 최고의 팝 넘버 25곡을 선정해봤습니다. 이 25곡들에 짧은 설명과 소회를 담아보려 합니다. 첫 글에 13곡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 나머지 12곡은 다음 글에 이어가려 합니다. 순위는 따로 없고, 아티스트 이름 기준 ABC 순서입니다.
1. Beyoncé - Drunk in Love
14곡의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수록된, 이른바 'Visual Album'인 <Beyoncé>의 수록곡이자 대표 싱글.
듣기만 해도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눈에 선한 곡을 만드는 Beyoncé라는 아티스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가창과 춤을 겸하는 뮤지션이라면 이데아로 삼을 최상위 레벨의 퍼포먼스. 느긋한 그루브로 시작해 점차 온도를 끌어올려 폭발하는, 이 수준의 가창과 농염한 춤을 Beyoncé가 아니면 누가 해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Beyoncé가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와, 이 앨범 이상은 앞으로 안 나오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가도, 그 이상의 앨범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 항상 놀라웠습니다. 이 노래로 더 오를 경지가 없던 것처럼 보였던 그녀는 멈추지 않고 이후 <Lemonade> 앨범으로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전진했습니다. 지난 10년 간도 최고의 뮤즈는 역시 Beyoncé 였습니다.
2. Billie Eilish - Bury a friend
시대의 마지막에 등장한 천재의 일격. 2018년에 발표했던 그녀의 싱글들도 좋았고 내한 공연도 좋았지만, 2019년의 시작과 함께 출시된 그녀의 첫 정규 앨범은 충격적으로 좋습니다. 앨범 통째로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네요. 밤마다 엄습하는 공포와 불면증, 내면의 감정을 모티브로 만든 이 앨범의 수록곡들은 각기 다른 특색을 지녔으면서, 묘하게 유기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어 한 번에 전체 앨범을 다 듣게 되는 마력이 있습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그녀의 히트곡 <Bad Boy> 등을 커버했지만, 매우 낮은 음역의 베이스라인과 미니멀하고 기괴한 사운드 구성, 나른하면서도 섬뜩한 감성으로 노래하는 <Bury a friend>는 다른 사람들은 따라 하지 못할 그녀만의 시그니쳐가 아닐까 합니다. '좋은 가창'이라는 개념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시대의 아이콘인 Billie 본인의 재능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녀의 친오빠이자 앨범의 프로듀서인 Finneas O'Connell의 감각과 사운드 구성 능력이 진짜 천재 수준이 아닐지.
3. The Black Keys - Tighten Up
큰 인기를 거두지 못해도 묵묵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본인의 사운드를 지켜나간 The Black Keys가 마침내 맞은 첫 성공이자 화양연화. The Black Keys의 사운드는 굉장히 오소독스 한 블루스이자 로큰롤이면서도 역설적으로 매우 현대적입니다. 흑인 래퍼, 보컬들과 찐득한 블랙 뮤직 밴드 Blackroc을 결성했던 두 사람의 연주는 블랙 뮤직과 거라지 락의 정서를 동시에 품고 있기도 합니다. <Tighten Up>은 이런 그들의 사운드 정체성이 온전히 담긴 한 곡입니다. 휘파람, 인상적인 리프, 그루비한 리듬, 끈적하고 허스키한 보컬, 그르렁 거리는 퍼즈 사운드... 아아, 어찌 이리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모조리 갖춘 노래를 만들었을까요. 미니멀하면서도 스케일이 큰 이 노래의 매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이 앨범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계속 그들의 길을 걸어갔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음악적 정체성이 확실한 두 사람이니까요.
4. Bruno Mars - Gorilla
느린 노래, 빠른 노래, 디스코, 락, 댄스, 발라드 등 어떤 노래에도 어울리는 음색과 리듬감, 가창력을 모두 지닌 전천후 보컬 Bruno Mars. 너무 완벽했던 첫 앨범이 오히려 독이 되진 않을까-하는 것은 괜한 기우였습니다. 두 번째 정규 앨범의 수록곡이자 싱글인 <Gorilla>에서 그의 감성과 가창력은 그야말로 폭발해버립니다. 저와 같이 밴드를 하는 보컬은 Bruno Mars의 보컬을 "성대에 제한이 없는 목소리"라고 표현합니다. 팝 같기도 하고 프로그레시브 락 같기도 하고 심지어 뮤지컬 넘버 같기도 한, 어지간한 보컬이라면 소화하지 못할 묵직하고 박진감 넘치는 이 노래를 끝까지 끌고 가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후련하고 대견해서 매번 감탄할 뿐입니다. 음향 기술의 발전과 다양한 콘셉트 창법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대지만, 압도적인 힘으로 고음과 감정을 때리는 재능은 시대불문의 가치라는 걸 새삼 확인시켜주는 노래였습니다.
5. Coldplay -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
Coldplay가 세계 최정상급 밴드로 거듭남과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1기라고 칭한 2010년대. 1기 콜드플레이의 상징과도 같은 화려한 그라피티와 네온 컬러, 일렉트로닉과 어쿠스틱 사운드의 조화는 <Mylo Xyloto> 앨범에서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인 <Every Teardrop is a Waterfall>는 선명한 기타 리프, 경쾌하고 선동적인 리듬, 풍성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욱 채워주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까지 완벽하게 Coldplay의 인장이 찍힌 명곡입니다. '17년 4월 내한 공연에서 영롱하게 폭발하는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끼니 정말 행복했었지요. 사실 이 시기의 Coldplay의 노래들은 화려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때문에 아마추어 밴드가 커버하기 사실상 어려운, '듣기 좋은' 노래에 가깝긴 한데요. 묘하게 사람에 와 닿는 힘이 있는 Chris Martin의 목소리 때문인지, 합이 잘 맞는 밴드의 사운드 때문인지 Coldplay의 노래를 들으면 다시 악기를 잡고 합주를 하고 싶어 집니다.
6. David Bowie - Lazarus
2016년 David Bowie가 별세했습니다. 그의 유작 <Blackstar>가 나온 지 이틀 후였지요. 시도해 보지 않은 장르가 없던 변신과 부활의 총아, David Bowie는 그 스스로의 죽음도 소재로 삼아 마지막 노래를 남겼습니다. 부활한 나사로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은 듯한 <Lazarus>의 가사와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스스로의 죽음을 직시하고 기다리며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어두컴컴한 장롱 속으로 문을 닫고 사라지는 그의 마지막은 언제 봐도 말할 수 없는 감흥을 남기네요. 차갑고 무거운, 슬픈 이 노래의 콘셉트와 메시지는 최고의 연주로 인해 더욱 완벽해졌습니다. 재즈 색소포니스트 Donny McCaslin이 이끄는 리프에 더해지는 밴드의 사운드는 일렉트로닉과 재즈, 락의 경계에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던 Donny McCaslin은 전위적인 사운드의 <Blackstar> 앨범 작업에서 큰 영향을 받아 이후 팝과 락, 일렉트로닉이 결합된 명반 <Blow>를 발매합니다.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감과 기회를 줬던 Bowie의 에너지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빛을 발했습니다. 영원한 Tom 소령, Ziggy Dust, Starman은 그렇게 지구를 떠나 음악으로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7. Ed Sheeran - Shape of You
'17년 새해 초, 해외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공항버스에서 무슨 노래를 들을까 찾다 보니 반갑게도 Ed Sheeran의 새 싱글이 두 곡이나 나왔더군요. 한 해의 시작과 함께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Castle on the Hill>을 듣자니 마음이 한껏 설렜습니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었지요.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잠이 들려고 하는데 어떤 노래의 멜로디가 귀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잠에서 깨고, 하루가 지나고, 며칠이 지나도 그 노래의 멜로디는 계속 머물러있었습니다. 한 동안 듣지 않아도 멜로디와 리듬, 코러스 라인이 제 속에서 선명하게 살아나 울렸습니다. 그 노래는, 이제는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Shape of You>였습니다. 단 4개의 심플한 코드만으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1초도 지루한 순간이 없지요. 오로지 그의 기타와 루프스테이션, 목소리, 그리고 센스로만 쌓아 올린 이 짧은 노래를 오래오래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8. Foo Fighters - Walk
밴드 키즈들에게 Dave Grohl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참 큽니다. Nirvana의 드러머였던 그는 이제 Foo Fighters의 프런트맨이지요. Nirvana가 락, 아니 팝 음악사에서도 손꼽히는 전설이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불타는 하드락의 화신들인 Foo Fighters 역시도 어마어마한 밴드지요. <Wasting Lights>는 디지털 리코딩 방식을 배제하고 Dave Grohl의 차고에서 아날로그 리코딩으로만 녹음된,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락 앨범입니다. Dave Grohl의 자전적인 이야기들을 가사로 담은 수록곡들 모두가 훌륭하지만, <Walk>야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사운드의 표상과도 같습니다. Foo Fighters 라이브를 3번을 봤는데, 대형 뮤지션들의 공연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조명이나 디스플레이도 없습니다. 오로지 선명한 멜로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묵직하게 내달리는 고출력 디스토션과 리듬, 절정으로 달려가며 터지는 샤우팅으로 관객의 귀와 마음을 때려 함께 뛰게 만들 뿐이지요. <Walk>는 그런 그들의 라이브 셋 리스트 중에서도 최고의 순간입니다.
9. Fourplay - Silverado
Fourplay의 앨범은 어떤 앨범을 들어도 품격과 대중성을 품고 있습니다. Smooth Jazz의 오랜 팬부터 초심자까지 폭넓게 만족시킬 수 있는 이름이지요. <Silver>는 밴드의 25주년 기념 앨범입니다. 안 그래도 연주의 명인들인데, 그런 그들이 작정하고 만들었겠지요? Fourplay의 전임 기타리스트들이자 세계 최정상 기타리스트들인 Lee Ritenour와 Larry Carlton이 게스트로 참가하여 빛나는 연주를 들려주는 가운데, <Silverado>는 단연 백미입니다. 부드럽고 산뜻한 리듬의 터치와 선명하면서도 유려한 멜로디가 하나가 되어 흘러갑니다. 여느 때의 그들의 연주처럼 누구 한 명, 어느 파트 하나 튀지 않고 여전히 완벽한 앙상블을 자랑하지요. 게스트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Larry Carlton과 Chuck Loeb이 주고받는 기타 릭은 팬들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선물과도 같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앨범 발매 당시 Bob James 등의 나이가 70세가 넘었음에도 빛나는 세련된 감각입니다. '17년 안타깝게 별세한 Chuck Loeb은 거대한 명성의 두 전임자들의 뒤를 이어 그들 못지 않은 폭넓은 포용력과 뜨거운 열정이 담긴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Chuck Loeb과 마지막으로 함께 한 명곡이라 더 큰 의미가 있네요.
10. Grimes - We Appreciate Power
2010년대 팝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장르의 경계 없이 복합된 사운드가 활약했다는 점인데, Grimes는 그런 측면에서 2010년대 팝 음악의 총아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모란봉 악단에서 힌트를 얻고 인더스트리얼, 일렉트로닉, 그런지를 뒤섞어 만든 <We appreciate power>는 정체를 알 수 없이 혼재된 세기말적 사운드가 매력적입니다. 하드한 디스토션과 하모닉스가 이끄는 인더스트리얼 사운드는 제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습니다. 다소 난해한 가사는 섹슈얼한 이미지와 노래, 춤으로 프로파간다 역할을 하는 AI 걸 그룹의 시각을 콘셉트로 썼다고 하네요. "Pledge allegiance to the world's most powerful computer. Simulation is the future.", "Neanderthal to human being. Evolution, kill the gene. Biology is superficial. Intelligence is artificial. Submit." 같은 가사는 AI 기술이 독자 지능을 갖춘다는 단초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현시점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힙니다. 광기의 사운드에 광기의 메시지, 잘 잊히지 않는 인상적인 노래입니다.
11. John Mayer - In the Blood
John Mayer는 2010년대 후반에 들어 이전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펜더 스트랫의 새로운 영웅으로 활약했던 2000년대를 지나, 이제는 PRS, 펜더, 길드, 심지어는 잭슨 기타까지 연주하며 저변을 넓혀가고 있지요. 또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은 더욱 선명해진 것 같습니다. 비즈빔과 캐피탈, 나이키를 입고 달콤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엣지가 살아있는 연주와 노래를 열정적으로 선보이는 그의 모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습니다. 컨트리, 블루스, 팝이 모두 녹아든 <In the Blood>는 그 스스로의 핏줄과 자신의 삶에 대한 속 깊은 잠언으로, John Mayer라는 뮤지션이 이제 연주와 작곡, 메시지 모두 어느 정점을 넘어선 아티스트의 반열에 올랐다는 확신을 주는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제가 평생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글로 풀어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참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12. Justin Timberlake - Mirrors
N Sync 시절부터 Justin Timeberlake를 좋아했는데, 단순 팬심을 떠나 그의 재능은 참 놀랍습니다. 일렉트로닉, 댄스, 힙합 등 각종 장르에서 노래는 물론 춤을 겸할 수 있는 완성형 뮤지션이면서, 코미디와 정극 연기에도 능한 연기자이기도 하지요. 무엇보다 JT는 꾸준하게 다양하고 좋은 음악을 발표해왔습니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를 히트곡으로만 쉴 틈 없이 채울 수 있는 이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솔로 아티스트이지요. <Mirrors>는 그런 그의 셋 리스트 중에서도 눈 부신 성취입니다. 풍성한 브라스와 코러스가 역주하는 이 정통 가스펠 팝 넘버에서 JT 특유의 음색과 감성은 빛납니다. 통상 이런 빅 밴드의 소울 풀한 팝 넘버는 육중한 파워 보컬들이 소화하는데, JT의 가볍고 산뜻한 보이스로 완성한 <Mirros>는 장르적으로도 신선한 기쁨이었습니다.
13. Kanye West - Runaway
이 전까지 Kanye West의 상황은 최악이었고, 하와이로 도피성 망명을 떠났었지요. 스스로에 대한 자성, 절치부심, 혹은 그 어떤 다른 감정과 계기가 있었는지는 본인만 알겠지만 Kanye West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앨범으로 완전히 재기에 성공합니다. 심연의 정서를 품고 온갖 장르를 포용하고 소비하는 그의 재능은 절정에 이르렀고, 아티스트들과 협연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의 비전을 이룬 그는 가히 21세기의 마일즈 데이비스 라 부를 만합니다. 이 앨범은 2010년대 가장 뛰어난 앨범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인 <Runaway>를 처음 들었을 때 "그래, 이게 Kanye West 지!" 하는 쾌감이 몰려왔는데, 들을수록 온갖 복잡한 감정이 드는 기묘한 곡입니다. 오래 들을수록 질리지 않고 음미하게 되는 마력을 지닌 노래지요. 이 노래는 힙합이기도 하고 팝이기도 하며, 일렉트로닉이기도, 클래식이기도 합니다. 신나면서도 쓸쓸하고, 차분하면서도 거친 이 노래는 Kanye West란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참 많이 닮았습니다. 짧은 길이의 싱글 버전도 좋지만, Kanye의 보코더와 스트링 섹션이 마무리하는 9분에 이르는 앨범 버전의 풀 버전의 감흥은 압도적입니다.이지 부스트를 디자인하고 선데이 서비스와 가스펠 앨범을 만드는 그는 진작에 특정 장르의 범주의 영역을 넘어선, 가장 자유로운 아티스트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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